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2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2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2
퇴직연금술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2권
차례
Chapter 01. 에스코트 퀘스트 - 2
Chapter 02. 플로렌
Chapter 03. 호수마을 라이칼
Chapter 04. 브라이던과 라이칼
Chapter 05. 추수 시즌
Chapter 06. 그린스킨 침공
Chapter 07. 자유항구도시 - 1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2권
Chapter 01. 에스코트 퀘스트 - 2
‘땅 마법사 하길 잘했어.’
루시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땅의 저주를 없애는 마법은 지금 시점에서 핵심 능력이다.
그 영향력이 가늠 안 될 정도.
현재 땅의 저주 영향을 안 받는 지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랭스브룩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곳도 전체적인 식자재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너무 유명해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긴 한데….’
이사벨라에 의하면 대지마법은 다른 원소에 비해 숫자가 적다고 했다. 아카데미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고, 은거 현자의 제자들에게 비전 전승으로만 이어진다고 했다.
그 말은 땅의 저주를 치유할 수 있는 마법사는 루시안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
섣불리 퓨어 랜드 주문을 내보였다가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에 빨려 들어갈 게 뻔하다. 루시안의 의지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된다.
‘적토마도 여포나 관우가 타야 칭송받지, 황건적 A가 가지고 있으면 그냥 전리품이 된다.’
아무리 루시안이 개인 마법 능력을 레벨업하고, 휘하 사병들이 훈련 잘된 정예라지만, 진짜 가문의 힘을 축적한 귀족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즉,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우기 전에는 당분간 이 치트키 마법을 공개 안 하는 게 좋다.
‘게다가 랭스브룩에 있는 곰 세 마리도 지금 잘되고 있단 말이지….’
사냥꾼 마을 랭스브룩은 땅의 저주로 곡물이 사라지자 반사이익을 얻은 곳이다.
다른 곳의 식량 생산이 멈춘 것이 랭스브룩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
각지에서 상인들이 랭스브룩으로 몰려들고 있고, 그 덕분에 마을에는 돈이 쏟아진다.
가장 핵심 상권에 있는 루시안의 여관, 곰 세 마리도 연일 매상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땅의 저주를 푸는 것이 루시안에게는 악재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정상화는 해야겠지. 다만, 조금씩 풀어서 이득을 최대한 빨아먹고.’
루시안은 냉철하게 퓨어 랜드 마법을 봉인하기로 했다.
고통받는 인류 전체를 보면 재앙을 없애는 게 옳다.
하지만, 루시안은 성인이 아니었다. 루시안 개인의 입장에서는 제한해두고 조금씩 그의 입맛에 맞게 퓨어 랜드를 쓰는 게 이득이었다.
루시안은 최대한 빨리 프리실라를 플로렌의 로워리 백작가로 귀환시키기로 했다.
백작에게 돈이든, 땅이든, 병력이든 받아낼 수 있는 최대를 받아 세력을 키우고, 퓨어 랜드로 스노우볼을 굴릴 계획이다.
빠른 여행에 필수는 좋은 말이다.
최근 마차 없이 산길로 걸었던 힘든 기억을 떠올린 루시안은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루시안은 실버포니 상회에서 목장을 언급한 것을 기억했다.
상인 배런이 원하는 말 말 한 필을 제공하겠다고 건넨 보증서 스크롤이 떠올랐다.
‘브림우드 성 근처라고 했지?’
루시안은 매버릭과 로이만 데리고 실버포니 목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말을 보러 오셨나요?”
야무지게 생긴 미녀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상단 책임자인 배런에게 받은 보증서입니다.”
루시안은 스크롤을 건넸다.
목장 관리인은 보증서를 읽더니 웃으며 그를 안내했다.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신 마법사님이라고 되어있군요. 천천히 말들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좋지요.”
루시안과 일행은 그녀의 안내를 따라 말들이 뛰노는 곳으로 향했다.
20여 마리의 말들이 울타리가 쳐진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말들이 전부 훌륭하군요.”
루시안이 감탄했다.
평범한 짐말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귀족들이 탈 법한 기품이 있는 말들이었다.
“저희 들은 엄격한 혈통관리로 우수한 품종만 데리고 있지요. 시골 짐말과는 아예 다릅니다.”
“대단하군요.”
루시안은 실버포니 목장의 말에게 홀려버렸다.
그중 말 한 마리가 유독 루시안의 눈에 띄었다.
골든 크림 빛깔에 은백색 갈기.
얼굴과 발목에 포인트로 마킹된 흰색 털.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근육.
정말 아름다운 말이었다.
루시안은 그 녀석이 탐이 났다.
“쟤는 누구죠?”
“골든휘슬 (Golden Whistle)이에요. 정통 팔로미노라고 할 수 있죠. 저희 목장의 얼굴마담이랍니다. 지금은 주인이 없지만 다들 탐내고 있어요.”
“와… 진짜 멋진 녀석이네요.”
“골든휘슬은 짐말이 아닌 승용마 (Palfrey)입니다. 귀족분들이 타는 말이죠. 장거리 여정에 최적화된 탁월한 체력과 단거리 질주파워를 겸비한 만능마예요. 저 녀석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루시안은 골든 휘슬을 타고 바람을 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기품 넘치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다.
“골든휘슬로 하겠… 음? 저건 또 뭡니까?”
루시안은 결정을 내리려다가 새로운 말 한 마리에 시선을 강탈당했다.
압도적 존재감 그 자체였다.
강철을 연상시키는 잿빛 바디.
골든휘슬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당당한 덩치.
억세고 단단한 전신 근육.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힘이 느껴졌다.
초식 동물이라고 믿기 어려운 카리스마였다.
루시안은 그 말을 보면서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가 연상되었다.
“정말 당당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저도 저 녀석을 볼 때마다 경외감이 듭니다. 저 말의 이름은 애쉬윈드 (Ash Wind)입니다. 기사의 전투마(destrier) 인데 사실 저희 목장 출신이 아닙니다.”
“그런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원래 브림우드의 루퍼트 남작가 첫째 공자님의 말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애쉬윈드를 상속받으셨는데 아무래도 전투마는 사료로 곡식도 챙겨야 하고 키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저희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제 보증서로 저 전투마를 선택해도 됩니까?”
“말 보는 눈이 정확하시네요!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재판매를 하지 않고 직접 길러주시는 조건으로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루시안은 입이 싱글벙글 귀에 걸렸다.
어차피 그는 말을 직접 소유할 생각이었다.
재판매 금지 조건은 루시안에게 의미 없는 제한이다.
전투마는 원래 구할 수 없는 품종이다.
10골드부터 시작하는 어마무시한 가격은 둘째치더라도, 신분 제한이 걸려있어 귀족이 아니면 거래가 불가능하다.
판금 갑옷처럼 귀족 기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탓이다.
애쉬윈드 정도 되는 말이면 실버포니 상단에서 최소 15골드는 치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런이 작성해 준 보증서를 군말 없이 적용해 준 것을 보면 이들이 돈보다 신뢰를 우선한다는 게 확실했다.
루시안은 실버포니 상단이 마음에 들었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사업 수완도 좋아 보이고 조직과 사람들의 내실이 단단해 보였다.
“이제부터 너 이름은 헤라클레스다.”
루시안은 자신의 것이 된 잿빛 전투마를 보며 말했다.
“이름이 멋지네요. 그러면 바로 말을 데려가시겠습니까?”
“혹시 여기서 잠시 말을 지내게 해도 될까요? 제가 저 녀석을 제대로 탈 수 있을 때까지 맡기고 싶은데요. 물론 비용은 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혹시, 승마도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루시안의 질문에 목장 관리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제 전문이죠”
* * *
루시안은 덜컥 전투마를 골랐지만, 말을 아예 탈 줄 모르는 초보였다.
비유를 하자면 운전면허도 없는데 스포츠카부터 질러버린 상황이다. 아니, 전투마 헤라클레스는 스포츠카가 아니라 8기통 추레라 트럭이 더 잘 어울리겠다.
아무튼 루시안은 초보자이기 때문에 힘이 감당 안 되는 헤라클레스를 타고 레슨을 시작할 순 없었다.
그 때문에 일단 실버포니 목장의 작은 조랑말로 승마 연습을 했다.
점점 익숙해지면 승용마와 전투마로 단계를 올릴 생각이다.
“확실히 많이 느셨네요. 그 정도면 속보는 어느 정도 하실 줄 아시는 것 같으니 구보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아요.”
목장 관리인이 웃으며 말했다.
루시안은 슬쩍 운을 띄워보았다.
“이제는 말의 체급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요?”
“좋아요. 전에 타보고 싶어 하시던 골든휘슬을 한번 시승해 보실래요?”
“그래도 됩니까?”
신난 루시안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사실 저도 그 녀석을 종종 탑니다. 귀하다고 사람과의 접촉을 멀리하면 승마용으로 상품성이 떨어지게 되죠.”
“그럼, 사양 않고 타보겠습니다.”
루시안은 골든휘슬의 말 등에 올랐다.
우아한 녀석은 생긴 것처럼 성격도 젠틀했다.
루시안의 리드에 맞춰 완벽하게 평보와 속도를 해냈다.
심지어 처음 달리는 구보도 문제없었다.
오죽 좋았으면 루시안은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냥 무식한 전투마 말고, 골든휘슬을 고를 걸 그랬나…?’
전투마의 희귀성과 가치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고민이었지만, 그만큼 골든 휘슬은 완벽한 승용마였다.
실버포니 상단에서 승마를 배운지 일주일째가 되자, 루시안은 슬슬 브림우드를 떠날 생각을 했다.
이제는 헤라클레스의 위에도 곧잘 올라타는 루시안이었다.
녀석의 넘치는 힘을 아직 완벽하게 컨트롤 못 해 전력 질주는 불가능하지만, 그럭저럭 말 등을 타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프리실라를 플로렌 성에 데려가는 게 목표였지만, 말에 빠져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