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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녹로 11권
지은이 : 원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원, 2025
※ ISBN : 979-11-7408-456-9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8월 22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1권
그 순간, 천마의 입가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는 마치 예상 밖의 즐거운 반응을 본 듯,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흐… 하하하하!”
천마의 웃음소리는 낮고 깊었다.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조롱, 흥미, 그리고 어딘가 섬뜩한 광기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운조는 순간적으로 전신에 내달리는 압박감을 느꼈다.
‘위험하다.’
운조의 직감이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운조는 흔들리지 않고 천마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러자 천마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천마는 경박하게 웃지 않는다라…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천마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고, 마치 운조를 꿰뚫어 보듯 천천히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렇다면, 네가 알고 있는 천마가 어떤 놈인지… 나도 한 번 들어보지.”
그 말에 운조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천마의 태도는 분명 단순한 도발이 아니었다. 이 자는 자신이 진짜 천마인지, 아니면 아닌지를 시험하듯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네놈이 천마라고 하기엔…”
운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 태도가 지나치게 가벼워.”
그 말을 들은 천마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거칠게, 그리고 서늘하게.
“크흐흐… 그렇단 말이지?”
그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마치 흥미로운 놀이를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천마의 손끝에서 기운이 일렁였다.
“가볍지 않은 게 뭔지 손수 보여줘야겠구나.”
“…?”
운조는 천마의 압도적인 기운을 느끼며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위험하다.’
운조는 즉시 경공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수로채의 복잡한 지형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지금 상황에선 탈출이 최선이었기에.
‘천마답지 않은 저 웃음… 그리고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 상황은 단순히 천마가 정신을 잃었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두 가지 가능성.
하나는 혈마와의 혈전 이후 실종된 천마가 극심한 부상을 입고 정신이 나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저자가 천마가 아닐 가능성.’
운조의 이성이 강하게 거부했다. 천마의 모습, 기운, 분위기까지 완벽히 똑같은 존재가 천마가 아닐 가능성이라니?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억측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방금 전에 설휘결이 용왕 설단하의 몸을 빼앗아 사용하고 있던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천마도…?’
운조는 이를 악물었다.
설휘결처럼 천마의 육신을 차지한 또 다른 존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짜 천마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더욱 위험하다.
‘어느 쪽이든… 지금 상대하는 건 최악이다.’
운조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가 천마이든 아니든 천마의 육신을 한 그는 위험한 존재가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천마가 직접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 혼자였으면 몰라도 설백화를 품에 안고 있는 지금은 공격적으로 행동하기 위험했다.
“됐어. 저기까지만 빠져나가면…!”
운조는 장강의 물줄기를 넘기만 하면 도망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악!
등 뒤에서 엄청난 살기와 함께,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날아왔다.
‘큭?’
운조의 온몸이 본능적으로 경고를 보냈다.
죽는다.
이 공격을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운조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설백화를 장강을 향해 내던졌다.
순간적으로 설백화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성을 잃었다면 비명이라도 내질렀을 텐데, 설백화는 여전히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풍덩!
설백화의 몸이 장강 안으로 빠져든 그때.
콰과과과광!
운조의 뒤에서 천마의 공격이 그대로 터졌고, 운조의 몸이 무지막지한 충격에 의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운조는 허공에서 몸을 틀며 필사적으로 자세를 잡고는 자신의 손에 닿은 물기슭에 수(水)의 기운을 뿜어냈다.
운조의 손에서 뿜어진 기운이 강물에 빠진 설백화를 감쌌고, 운조는 수의 기운을 더 강하게 쏟아내 설백화가 장강의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게 했다.
“계집이 도망치게 둘 성싶으냐.”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천마가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설백화를 바라보며 손을 치켜들었다.
“어딜!”
천마의 손끝에서 강렬한 장력이 일렁이더니, 순간 거대한 붉은 기운이 장법으로 변해 설백화가 떠내려가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콰과광!
그 장법이 목표에 닿기도 전에, 운조가 순식간에 뛰어들어 장법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콰아앙!
두 힘이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했다. 강 위로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고, 주변의 얼음과 바위가 산산이 조각났다.
운조는 충격을 견디며 제자리로 내려섰고, 곧장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 끝에는 타오르는 빙염멸권(氷焰滅拳)으로 불길과 얼음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화르륵?!
운조의 공격이 연달아 쏟아졌다. 폭발적인 염화가 퍼지며 주변의 바위와 나무가 타올랐고, 얼음이 부서져 나갔다.
콰과과과광!
운조는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몸을 틀어 천마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불길과 냉기가 혼재된 주먹이 연거푸 터지며 천마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그야말로 초토화.
운조는 이 순간, 단 하나의 목적만을 생각했다.
천마를 막아 설백화를 쫓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혈교의 무리들까지도 설백화를 추적할 여력조차 남기지 않도록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
화염이 폭발하고, 얼음이 터지며 혈교의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마는 슬쩍 입꼬리를 비틀더니, 마치 흥미롭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그때도 봤지만 꽤나 재미있는 놈이란 말이야.”
운조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때…?’
운조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네놈, 대체 누구냐?”
그러자 천마는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신교에서 같이 그렇게 치고받고 싸웠는데 못 알아보니 아쉬운걸?”
그러고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난 음산우다.”
운조의 표정이 흔들렸다.
“음산우…”
운조는 그 이름을 되뇌며 입술을 옅게 떨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음산우.
그는 마교 내부에서 숨어 있던 혈교의 끄나풀이었으며, 운조 자신이 직접 거의 죽일 뻔했던 인물이었다.
‘그때 그놈이… 지금… 천마의 몸을 하고 있다?’
운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휘결은… 설 아저씨의 몸을 훔쳤고… 네놈은…”
운조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천마의 몸을 훔친 거냐?”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음산우는 허리를 젖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들으면 우리가 장물이나 훔치는 좀도둑이라도 되는 줄 알겠군.”
음산우의 눈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우린 말이야, 이 몸 저 몸 괜찮은 게 있으면 다 써볼 수 있지.”
음산우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다른 몸을 여럿 써봤지. 그런데 아무래도… 내게는 이 천마의 몸이 가장 잘 맞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운조는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하나만 묻겠다.”
운조는 깊은 숨을 내쉬며 낮게 말했다. 운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네놈들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들의 몸을 다시 되찾을 방법이 있나?”
음산우는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보자~”
그리고는 생각하는 척 손가락을 튕기더니, 갑자기 다시 껄껄 웃었다.
“당연히 그런 건 없지.”
그의 웃음소리는 마치 운조의 질문이 가소롭다는 듯 거칠게 번져나갔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 있으니 충돌은 당연지사 아니겠나.”
음산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펼쳐 보였다.
“무슨 수를 써도. 심지어 혈마님께서 직접 손을 쓰신다 해도. 이미 한 번 껍데기로 만든 몸의 영혼은 불러낼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운조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