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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녹로 9권
지은이 : 원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원, 2025
※ ISBN : 979-11-7408-454-5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8월 22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9권
푹-!
혼참도의 도신이 운조의 팔에 깊숙이 박혔다.
살을 깊게 파고든 칼날이 빠져나올 때, 붉은 피가 샘솟듯이 뿜어져 나왔다.
핏물이 순식간에 운조의 팔을 타고 흘러내리며 땅바닥에 고여갔다.
“크흡.”
운조는 고통을 억누르며 재빨리 상처를 눌러 지혈을 시도했다.
그리고 곧이어 만류초염공의 염화를 손에 담아 상처 부위에 가져갔다.
염화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팔을 덮었고, 피가 멈추는가 싶더니 상처 부위가 빠르게 아물어 갔다.
“…네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연강의 눈이 크게 놀라 번뜩였다.
“지금 그 불로… 상처를 회복시킨 것이냐?”
한연강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엔 혼란과 경악이 뒤섞인 감정이 드러났다.
“이놈. 내가 묻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안 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군.”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한데 이거… 보면 볼수록 광의 그 미친 인간과 닮은 것 같은데. 정말 광의와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
한연강의 눈빛에는 궁금증과 경계가 서려 있었다.
광의는 한연강뿐만 아니라 천마신교 내의 모든 마인들의 기억 속에 깊이 박힌 존재였기에.
“광의가 아니라 분명 의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그 정도로 머리가 나쁜 건가?”
운조는 한연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노려보면서 손에 염화를 집중시켜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 했다.
그런 운조의 모습에 한연강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게서 그 미친 인간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궁금증이 늘어날 수밖에 없구나.”
“…….”
“내가 알기로 분명 광의는 머저리 같은 제자 놈 하나밖에 없는 거로 아는데 말이야.”
한연강은 비릿한 미소를 띠며 다시 혼참도를 움켜쥐었다.
“팔다리부터 하나씩 잘라낼까 했는데, 양다리부터 잘라내는 게 낫겠구나.”
한연강의 손에는 여전히 도신이 보이지 않는 혼참도가 들려 있었다.
훙-!
마치 허공을 휘젓는 것처럼 팔을 움직였지만, 매번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거친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주변의 바위와 나무, 지면이 산산이 부서졌다.
운조는 긴장감 속에서 한연강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혼참도는 도신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무기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콰과광! 콰광! 콰과광!
실제로 그 도신은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하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빠져나가면….’
쾅! 쾅! 쾅! 쾅! 쾅!
어느덧 주변은 공명세가의 경계를 넘어서 있었다. 이제는 만류초염공을 사용해도 별다른 제약은 없을 듯했다.
화륵-
하지만 운조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손끝에는 여전히 염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사용해 한연강에게 공격을 가한다면 자칫 자신이 의선의 제자라는 사실이 노출될 수 있었다.
심지어 한연강은 의선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의선과 운조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이 공자 한연강은 절대 운조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천마신교 내에서 의선의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운조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의선을 싫어하는 인물로 유명했던 것이 바로 이 공자 한연강이었다.
‘진퇴양난이로군.’
운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가늠했다.
독마세가에서 흡수한 독기로 인해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한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아물긴 했어도, 독기를 몸속에 흡수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몸이 온전한 상태로도 한연강을 상대하기엔 벅찰 정도로 한연강은 고수였다.
그렇기에 지금 상태에서 한연강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패배일 게 분명했다.
쾅! 콰지직! 콰광! 쾅! 쾅!
한연강은 멈추지 않고 무자비하게 혼참도를 휘둘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신이 허공을 갈라내며 운조에게 닿으려 했고, 운조는 그걸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한연강의 공격은 점점 더 격렬해졌고, 운조는 끊임없이 그 공격을 피하느라 몸을 날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지면이 퍽퍽 갈라졌고 주변의 풍경은 점점 초토화되어 갔다.
피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피하면서 퇴로를 확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었다.
운조는 자신을 향해 거세게 몰려오는 한연강의 도신을 피해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리자.’
운조는 속으로 결단을 내리며 숨을 고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 파공음이 울려 퍼졌고.
서걱-
운조가 몸을 피해 있던 바위가 통째로 갈라졌다.
“허. 대단하군. 보통 이 정도면 다리 한쪽 정도는 잘려야 정상일 텐데.”
한연강은 운조가 핏물로 가득 적셔진 다리를 끌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모습만 보더라도 이제 운조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여겨서일까.
현연강은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운조를 향해 다가갔다.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향해 마수를 뻗듯이.
‘더는 안 되겠군.’
운조는 천마의 치료를 진행하고 스승님의 죽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하여 천마신교에 찾아온 거였다.
하지만 죽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화륵-
운조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만류초염공을 써서 퇴로를 만들기로 했다.
“오, 그래. 아까는 보여주는 시늉만 하던 걸 이제 보여주기는 하는구나.”
한연강은 운조가 손에 든 대낫에 만류초염공의 염화가 깃드는 것을 보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화르륵-
한연강이 말을 채 다 잇기도 전에 주변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화염이 화살처럼 한연강을 향해 쏘아졌다.
다만 순식간에 주변을 잿더미로 만든 그 염화를 쏘아낸 건 운조가 아니었다.
“멈추세요.”
그 순간,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한마디가 거대한 염화의 파도를 멈춘 듯했다.
불길은 더 이상 타오르지 않고, 염화는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한연강과 운조는 동시에 놀라서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그곳을 바라본 한연강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불쾌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저벅-
그리고 한연강과 운조가 시선을 돌린 그곳엔 새하얀 백의를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 역시 백의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홀로 새하얀 면사로 가려져 있었다.
‘……?’
운조 역시 그녀를 알아보았다.
면사 사이로 힐끗 드러난 여성의 눈빛은 서늘하면서도 신비로웠다.
그녀의 백의는 깨끗하고 고결했으며, 마치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순백의 자태였다.
저벅저벅-
주위는 순간 고요해졌다. 바람조차 멈춘 듯했고, 시간마저 멎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직 그녀와 백의인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주위를 울렸다.
우뚝-
“오랜만이군요 이 공자.”
“…….”
그녀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녀가 서 있는 그곳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로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백의의 여인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우아하게 선 채로 한연강을 바라보았고, 한연강 역시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송이의 흰 꽃처럼 청아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 주위로 감도는 기운은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비장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운조와 한연강은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한 순간, 그들의 표정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천마신교에서 백의를 입을 수 있는 이는 오직 신전에 속한 자들뿐이었기에.
“신전에 계셔야 할 분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나오셨소?”
그중에서도 얼굴을 새하얀 면사로 완전히 가리고 다니는 건 신전에서도 오직 단 한 명뿐.
그녀를 바라본 운조의 눈빛 또한 휘둥그레졌다.
‘…신녀가 이곳엔 어떻게?’
그녀의 정체는 천마신교 내에 단 한 명뿐인 존재, 신녀였다.
신녀는 천마신교 내에서 신성한 존재로, 신전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신녀가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요 이 공자. 이 공자가 왜 자기 가문도 아닌 공명세가에 와 있는 거죠?”
신녀의 말에 한연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연강은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긴장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교 내에서 제가 가지 못할 곳은 신녀께서 계신 신전과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알고 있소만.”
한연강의 말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