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연모하니 3권 (완결)
내가 너를 연모하니 3권 (완결)
내가 너를 연모하니 3권 (완결)
14.



정월은 사당패들과 함께 이원이 마련해 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당패의 식구들은 그런 정월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정월은 그저 애써 밝은 척 미소만 지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도울게요!”
“정말?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정월이 만큼 춤 잘추는 사람도 드물어.”
“하하. 정말요? 또 지방으로는 언제 내려가는 거예요? 저도 같이…!”

같이 내려가자는 말을 하려다 정월이 입을 다물었다. 언제 올지 모를 이원을 기다려야 했기에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다 다시금 생각난 이원의 얼굴에 정월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정월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사당패 식구들밖에 없었다. 그들이 살살 정월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다. 정월아.”
“네…. 그럼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리고 정월이 다다른 곳에 지어진 웅장한 가옥을 보며 정월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이렇게까지 큰 집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놀란 것은 사당패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월은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창고 한편에는 평생을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은 쌀이 한가득했다.

“우와, 폐하께서 너를 많이 총애하시긴 하셨나 보다.”
“하하, 그러게요….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고….”

그리고 정월이 별이를 마당에 내려 주고 자신이 앞으로 머물게 될 방의 문을 열었을 때에는 참았던 눈물을 그대로 쏟아내 버릴 수밖에 없었다. 황연궁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이렇게 준비를 한 것인지 작은 소품 하나부터 침구들 가구들까지 황연궁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았다. 변한 것은 오직 정월만 혼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아, 흐으윽. 폐하…. 폐하아….”

정월이 아이처럼 방바닥을 부여잡고 울자, 다른 이들이 정월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자 문을 살포시 닫아 주었다. 정월은 마치 황연궁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만 같았던 시간들과 정월이 받았던 다정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황궁 안에서 만났던 다정한 마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폐하아…. 폐하아….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흐으윽.”

정월이 황궁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정월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다른 단원들도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월은 황궁 밖에서도 이원을 기다릴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현실로 느끼게 되는 일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정월아, 잠깐 들어간다.”

그런 정월의 울음소리를 끊은 것은 천둥이었다. 천둥은 어딘가 비장한 표정을 하며 정월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고맙다. 어쨌든 우리가 수도에 들어오면 이렇게 잠시나마 머물 수 있게 해주어서….”
“흐으윽. 뭐얼 이 정도 가지구요….”
“그리고…. 사실 폐하께서 우리가 나가던 날 부탁한 것이 있어.”
“폐하께서요?”

천둥의 입에서 나온 이원의 부탁에 정월이 눈물을 훔치고 천둥을 바라봤다. 천둥은 그때를 회상하는 듯 잠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폐하를 풍자하는 공연은 하지 않는다.”
“예…?”
“폐하께서 그러시더군. 너를 지키고 싶으시다고. 너를 지키고 싶어서 강해져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게 무슨….”

정월이 천둥의 입을 통해 듣는 낯선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 기울였다.

“폐하께서는 백성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어야 황권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야.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역할이 필요했지.”
“아….”

그제야 이원의 의도를 알았다는 듯 정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이제 폐하를 칭송하는 공연을 펼친다. 물론 처음엔 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거절하려 했다. 백성들은 이 나라를 풍자하고 웃는 걸 좋아하지 그런 건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폐하께서 너를 위해 강해지고 싶으시다 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근데 어땠길래요…?”
“나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우리가 본 폐하는 너를 많이 아껴 주었고, 그 점을 살려 연애담으로 다시 구성하였더니 오히려 더 아녀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진 것 같더구나.”

그 말에 정월이 화색을 띠었다. 이제 이원이 자신을 욕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지방을 먼저 돌았던 것이야. 지방의 반응을 보고 수도로 왔어야 하니까.”
“그럼, 지금부터는 수도의 분위기가 달라지겠네요.”
“응… 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폐하를 존경하는 자들이 더 많아질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로 인기를 끄니 따라 하는 사당패들도 늘었고. 폐하의 뜻대로 된 것이지.”

정월은 왜 진즉에 자신이 먼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고는 앞으로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것만 같았다. 황궁 밖에서 이원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가… 제가 황궁에 대해서, 폐하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아요…!”
“그래, 그래서 마침 너에게 부탁하려 한 것이다.”
“제가… 폐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해주세요…!”

그 말에 천둥이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정월이 다짐했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당패 단원들에게 크게 외쳤다.

“이제 저와 같이 글공부를 하는 거예요!”
“뭐어?”

뜬금없는 소리에 놀란 사당패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월을 바라봤다.

“이제 제가 쓰는 이야기로 공연을 해주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선 글을 먼저 읽을 줄 알아야 하는걸요!”

그들은 여전히 걱정 어린 표정이었지만, 다시금 밝게 웃는 정월을 보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이원은 한참 동안을 텅 빈 안평궁에 앉아 있었다. 정월의 흔적은 마치 바람처럼 흩날려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안평궁을 뛰어다니던 흰색 강아지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원은 자신이 찰나의 꿈을 꾼 것인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되었다.

“귀비… 귀비를 불러오거라….”

이원의 힘없는 명령에 한 환관이 김소향을 찾으러 나갔다. 이원은 허망한 표정을 하며 앉아 김소향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김소향이 정월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

김소향을 처음 본 이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정월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멀리서 봤다면 정월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김판근이 어째서 자신만만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원은 김판근의 손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쳤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사오나, 앞으로 천천히 배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잘 배운 규수의 모습에 이원이 씁쓸한 얼굴을 했다. 만약 정월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또 이러한 후궁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일단 그 말투부터 고치는 게 좋겠군.”
“예…?”

김소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이원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감히 황제의 얼굴을 봤다는 것이 생각나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리고 그렇게 구는 것도 말이야.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그런 행동도 고치거라.”
“아…. 예… 폐하.”

이원은 그런 김소향을 보며 정월을 떠올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두 눈을 마주쳐 오고 싱그럽게 웃던 정월을. 황궁에서는 전혀 쓰지 않았던 말투를 쓰던 정월을.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곤 했던 모습들을 생각했다.

“후… 춤을 춰 보거라.”

한참을 또 멍하니 있던 이원이 힘없는 소리로 읊조렸다. 그 말에 김소향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춤이라니, 예전에 정월과 함께 잠시나마 맞춰 보던 것이 다였다.

“뭐 하느냐. 어서 추지 않고.”

어딘가 엄해진 이원에 말투에 결국 김소향이 일어났다. 김소향은 예전에 정월에게 배웠던 춤의 동작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러고는 어색한 몸짓으로 어기적어기적 움직였다. 이원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 닮았다더니… 이런 건 닮지 않았구나.”

그 말에 김소향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 김소향이 생각하기에는 정월이 자신을 따라 했어야 했다. 자신이 정월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김소향은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현실로 닥쳐오니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그럼 자장노래를 불러 보거라.”

이번에는 노래였다. 역시 김소향은 태어나 노래라는 것을 불러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자장노래라니. 아주 어린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전부였다. 그걸 지금에 와서 부르라니. 그리고 자신이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자… 자장… 자자… 장.”
“하….”

이원의 한숨 소리에 김소향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분명 다정하신 분이라고 들었으며, 실제로 짧은 순간이지만 김소향이 만났을 때만 해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소향의 앞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됐다. 나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