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최대행운아
지상최대행운아 1권
지상최대행운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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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28년산 지상최대행운아
Ch 2. 27년산 지상최대불행아
Ch 3. 행운의 희소성
아이돌 서바이벌 생존기
Ch 1. 28년산 지상최대행운아
#프롤로그
엄마는 나를 배셨을 때 로또에 당첨되셨다. 임신 5개월, 생물학적 아버지가 우리를 버린 지 3개월 차였다.
“애가 금손을 타고 났구만.”
어머니는 그 길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셨다.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는 자신보다 한참 어릴 여자와 뱃속 아이를 보고 말했다.
“가락지 하나가 왼손 약지에 떡하니 있구만. 저것 때문이야.”
어디서 받아 온 건지, 참으로 단단한 반지가 내 손에 끼어 있다고.
“누가 본래 주인인 지는 모르겄지만 아주 대단한 놈이야.”
“혹시 나쁜 의미일까요?”
“나쁘긴. 저 반지는 이제 아가야. 갸 손이 닿는 족족 행운을 끌고 다닐 텐데.”
로또도 아기가 엄마 배를 열심히 만져서 된 거구.
어머니는 왜인지 모르게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고 하셨다. 왜, 큰 행운에는 불행이 따른다는 말이 있지 않나. 달콤한 행복에 취할수록 상실감이 커진다는 걸 스물네 살의 홀몸은 알고 있었다.
“저,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받은 만큼 돌려줘.”
“네?”
“아가씨가 받은 걸 아기한테든 누구한테든 돌려주라 이 말이야.”
돈을 벌면 베풀고, 물건이 생기면 나누고.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받은 것의 어느 정도는 떼어 내라는 말이었다.
“아기 이름은 지었나?”
“태명은 복덩이에요.”
“잘했어. 아기 이름이 이미 있거든.”
뱃속에서 5개월밖에 안 된 아이였다. 이름을 붙여 주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생각을 채 밖으로 내뱉기도 전, 무당은 이름값은 됐다는 말과 함께 내 이름을 불렀다.
“하제, 갸 이름은 하제야.”
내일.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내일이 되었다.
금손을 타고났다는 말 그대로, 나는 행운을 몰고 다녔다.
태어난 병원은 응급 환자였던 연예인을 살려 명성을 얻고, 신생아실에서 나를 돌본 간호사는 청혼을 받았다고.
무심코 잡은 과일은 맛이 무척 달지 않나, 한 번 잡은 꽃은 쉽게 죽지 않았다. 건드린 물건의 관련 주가가 대폭 상승했을 때, 어머니는 연고지 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천애 고아에 막 대학을 졸업하셨던 스물네 살의 어머니에게 나는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기에.
어머니는 그저 나를 잘 키울 수 있음에 기뻐하셨다. 굶주리지 않고, 작은 집에서 함께 무탈히 평생 살자. 보드라운 손수건으로 내 손을 감싸셨고 허투 물건을 잡게 하지도 않으셨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내가 돌이 되었을 적이다.
“어머, 하제가 이걸 왜 잡았대?”
“이고! 어마, 이고!!”
소박한 돌잔치였다.
부를 사람이 없어, 옆집 지인과 셋이서 떡 케이크와 복숭아만 단출하게 차린 상. 식순이라 할 것 없이 초를 불고 손뼉을 치다, 아이의 걸음마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나름 구색을 맞춰 보겠다 돌잡이 판을 꺼낸 순간, 손에서 수건을 풀어낸 나는 판에 없는 영 다른 물건을 잡았다.
“하제도 내가 만든 게 좋은 건지는 아나 보다, 얘.”
“조아?”
“응. 이모가 만든 향수, 좋지?”
향수 공방을 하던 옆집 지인은 종종 어머니께 향수 샘플을 선물하곤 했다. 그날은 내 첫 돌을 맞아 어머니의 선물로 새로운 향수를 가져왔고, 나는 그걸 덥석 잡은 것이다. 밧줄과 연필, 장난감 청진기까지. 돌잡이 판의 온갖 신기하고 재미난 물건을 뒤로하고, 내 손에는 무색의 네모난 향수병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것은 평화롭던 일상 속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언니. 저랑 사업할 생각 없어요?”
어머니는 내가 뱃속에 있을 적 당첨된 로또를 기본 자금으로 아낌없이 퍼부었다. 금손의 선택은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듯, 작은 향수 브랜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걸쳤다. 전례없는 성장세에 어머니가 놀라고, 옆집 지인이 놀라고, 한국이 놀라고, 세계가 놀랐다.
이것이 No.1 코스메틱 회사로 거듭난 수정그룹의 탄생 비화였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류수정 씨, 우리 어머니는 국내 최고 기부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이유는 빤했다. 전부 나 때문이었다.
“하제야, 엄마가 물건 손대면 안 된다 했지!”
“이잉.”
“아이고… 김비서, 이번엔 어디가 좋을까?”
“강원도 산골 마을에 도서관이 없다는군요.”
“거기로 하자.”
자아를 가지고 뛰어다니기 시작한 유아는 답답한 걸 싫어했다.
툭하면 장갑을 벗어 어머니의 사무실에 들어가 신제품을 톡톡 건드렸다고. 덕분에 런칭만 하면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건 효자 짓인가, 불효자 짓인가. 후에 어머니와 나 사이 재미있는 토론감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 어머니 심장에는 해로웠을 것으로 보아 불효자 짓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받은 만큼 베풀어라.’
본론으로 돌아와, 무당의 말을 고집스럽게 지키던 어머니는, 결국 전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기부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다 수정그룹 회장이 호구 잡기 좋다는 소문까지 퍼지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다.
“피아노 배울래?”
“그게 뭐야?”
“새하얀 도화지를 누르면, 예쁜 소리가 나는 악기야.”
곧 이사한 집에는 커다란 피아노가 있었다.
어린 아이의 손가락 무게를 못 견뎌 내려간 건반은 반갑다는 인사를 했고, 나는 이것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맨살에 느껴지는 매끄러움. 피부에 와닿는 진동.
“나 이거 마음에 들어!”
“다른 것도 있는데. 피아노가 제일 좋아?”
“응!”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기타 등등.
어머니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피아노를 꼽았다.
저 아래 음부터 가장 높은 음까지. 아이가 두 팔을 힘껏 벌려도 끝과 끝이 동시에 칠 수 없는 악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탐구 대상이 눈앞에 떨어졌다.
“피아노 칠 때만 장갑 벗는 거야, 알겠지?”
“응. 약속!”
내가 세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였다.
정신 사나운 아이를 서예 학원에 보내고, 소심한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갑갑했던 내 손에 피아노라는 탈출구를 만든 것이다.
금손 때문인지 본체 타고난 것인지.
곧잘 재능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진심이던, 수정그룹이라는 뒷배경을 노린 아첨이던. 나는 어느 곡이던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었고, 이는 꼭 누군가의 희로애락을 건드렸다. 울거나, 웃거나, 그 뒤에 따라붙는 감상은 내게도 기쁨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에도 행운이 붙은 건가 싶다.
“어쩜 하제는 자기만의 곡을 찾을까?”
“선생님이 골라 준 건데여.”
“그걸 네 걸로 만들었잖니.”
사업 확장에 이리저리 날아다니시는 어머니는 이따금 지인 몇 명을 모아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어린아이 재롱 잔치에 어른들은 침 마를 새 없이 칭찬을 퍼부었고, 나는 이때부터 야금야금 깨달았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 선택에 자의가 있었나?
어머니 뱃속에서 터진 로또도, 대박 난 향수 사업도, 피아노도. 덥석 잡은 것은 자신이었지만 딱히 의도를 품지는 않았다. 숨 쉬고 싶어서 호흡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제야, 저 옷은 어때? 엄마가 볼 때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우음. 나는 엄마가 좋으면 다 좋아.”
“착한 아들, 엄마도 하제가 좋으면 다 좋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말해 줘.
어머니는 이런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날이 갈수록 사랑을 속삭였다.
순수한 물욕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장난감 코너에 가거나, 맛있는 걸 떠먹이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보며 누군가는 착한 아이라 말했지만, 어머니는 실제로 걱정을 꽤나 하셨다고 한다. 칭얼거리는 것 하나 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아이가 어여쁘면서도 혹시나 속에 말을 꼭 꼭 담아 둔 것일까 봐.
하지만 어린 아이는 정말로 자의를 챙길 구간이 없었다. 이미 들어오는 행복만으로 차고 넘쳤던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로또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걸. 의도하지 않아도 멍하니 있으면 좋은 것들이 알아서 굴러 들어왔다. 내가 요구 사항이 적었던 데에는 필시 이러한 이유가 있었을 터.
지상 최대 행운아에게 선택은 불필요했다.
뭐 하러 선택을 해? 내 길이 곧 맞는 길이 될 텐데.
우연히 떨어지는 감만 잡으면 되는 거 아냐?
“하제 정말 대단하다! 벌써 악보 하나를 다 외웠네!”
“그게 대단한 거예요?”
“당연하지. 다음에는 어떤 곡 연주하고 싶어?”
“음… 아무거나 괜찮아요.”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내가 느끼는 파동이 진실이요, 담아낸 풍경이 법이니, 그려 낸 이상은 올바른 길이 되었다. 내 손이 닿은 검은색 피아노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졌고, 순탄한 음절이 흐르는 집 안은 더없이 행복했다.
그래! 행복하면 되는 거 아냐? 뭐가 더 필요해.
류하제는 자의를, 더 정확히는 욕심을 품지 않았다. 지상에 산책을 나온 순수한 천사처럼, 길에 떨어진 사과를 기념품이라도 되는 양 덥썩 주울 뿐. 지상 최대 행운아는 누구에게도 선택이라는 행운을 베풀지 않았다.
“엄마, 나 애랑 같이 살고 싶어.”
일곱 살에 만난 그 아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1
- 5월의 쾌청한 날이네요. 좋은 오후 보내고 계신가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수요일 오후 1시 30분. ‘유빈의 클래식 한 잔’이 흘러나올 시간이다.
나는 살짝 풀린 머리를 핀으로 정리하며 일어섰다. 슬슬 청소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 방금 들려드린 음악은 쇼팽 에튀드 Op. 25 No. 9 나비였습니다. 벌써 화사한 나비가 돌아오는 계절이네요.
독립 책방 토끼풀의 주인, 류하제는 라디오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이 책방 직원 모두가 그러하리라. 단 한 사람만 빼고. 바닥을 쓸고, 창을 닦고, 식기류를 정리하고, 오늘의 책에 작은 문구를 다는 와중에도 귀를 세워 가며 듣는 애청자가 있었다.
- 나비처럼 따스함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분이 계시는데요.
“태현아, 그만 라디오 끄자-.”
“놔둬요. 오늘 귓등으로도 안 들을걸요.”
시계는 벌써 1시 50분.
오픈인 오후 2시에 맞춰 가게 플레이리스트로 바꿀 시간이었다. 지칠 줄 모르고 떠드는 봄날의 라디오에 직원들 여럿이 제동을 걸려던 찰나.
-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피아니스트, 최라온 씨가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셨다고 해요.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에 책을 놓칠 뻔했다.
소리의 발원지로 눈길을 돌리자 덥수룩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남자, 독립 책방 토끼풀의 알바생 이태현이 있었다.
“뭐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안 들려? 최라온이 돌아왔다잖아!”
“오빠도 참 유난이다. 2주째 그 이야기인 건 알지?”
“다르다니까? 오늘, 아니 지금 한국 땅을 밟으셨다니까!”
“그만하고 라디오나 꺼!! 오픈 시간인 거 안 보여?”
음, 또 싸우는구나.
독립 책방 토끼풀의 두 막내이자 알바생, 이태현과 박아린의 충돌은 잦았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그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꽤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영 귀찮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말리지 않으면 정말 주먹다짐까지 번지니까. 그리고 그 ‘누군가’ 중 한 명이 바로 자신이었다.
“자, 그만하고 가게 문 열 준비 해야지.”
“사장님! 이태현이 또-!”
“그래그래, 태현이는 아린이 좀 그만 괴롭혀. 라디오도 끄고.”
“저 괴롭힌 거 아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