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6권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6권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6
이성적으로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6권
차례
Chapter 01. 라이브러리
Chapter 02. LA 갈비
Chapter 03. 회복 탄력성
Chapter 04. 긴장
Chapter 05. 마운드와 배트
Chapter 06. 와일드카드 시리즈
Chapter 07. 직업의식
Chapter 08.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지만.
Chapter 09. 사랑을 받는
Chapter 10. 승부수
Chapter 11. 호불호현
Chapter 12. 절실, 열광
Chapter 13. 권선징악이자 착한….
Chapter 14. 산 위 범부들이 어째서 이렇게….
Chapter 15. 희망의 불씨
Chapter 16. 상대는?
Chapter 17. 대관식
Chapter 18. 때론 다른 요소가.
Chapter 19. 이겨야지
Chapter 20. 65
Chapter 21. 가을
Chapter 22. 팬들은 재미있지
Chapter 23. 압도
Chapter 24. 호사다마
Chapter 25. 일단, 한방.
Chapter 26. 헤리티지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6권
Chapter 01. 라이브러리
[LAD 0 ― 1 COL]
1점.
아직 경기 중반이 이제 막 시작되는 4회 초인 데다 경기가 기울었다기엔 너무나 작은 점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득점은 절대 아니었다.
말했듯 이렇게 팽팽한 경기일수록 작은 균열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거든.
퍼어엉!
“베이스 온 볼스!”
― 아, 카이저 블레인에게 볼넷을 내주는 매튜 클라크.
― 대런 필립스가 잠시 타임을 요청한 뒤 마운드를 향하네요. 적절한 타이밍에 잘 끊어줬어요.
물론 상대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닌지, 급하게 어떻게든 그 균열을 때워보려고 노력하고 있긴 했다.
“급한가 본데?”
“그렇겠지. 거기 장비 좀.”
“여기. 어? 라이언은 왜 갑자기 돌아와?”
치이익―
“초이!”
“왜?”
“나 급해. 뭘 노릴까?”
“뭐?”
“빨리!”
“…그걸 내가 어떻게, 후. 대런이라면 슬라이더. 매튜 클라크라면 바깥쪽 패스트볼. 누가 싸인을 내는지는 직접 확인하고.”
“오케이. 슬라이더, 패스트볼. 슬라이더, 패스트볼.”
이쪽 역시 그 균열을 벌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라이언 월터스가 덕아웃까지 돌아와 연기까지 하면서 내게 구종을 물어보고 갔을까.
그리고.
따아아아악!
― 라이언 월터스가 초구 바깥쪽 패스트볼을 밀어 때립니다! 1―2루 간을 꿰뚫는 타구!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로! 그리고… 세잎! 초이의 솔로 홈런 뒤 바로 1사 1,3루 기회를 잡는 로키스입니다!
‘이게 이렇게 되네.’
라이언 월터스는 하도 급해 보이길래 반쯤은 장난식으로 찍어준 공을 그대로 쳐내며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버렸다.
‘나도.’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대기 타석에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타이론 벨크의 고개가 날 향해 돌아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체인지업. 결정구.’
‘확인.’
어차피 내 말을 듣고 안타를 치든, 삼진을 먹든 본인들의 스탯이니 상관은 없는데.
제발 경기가 끝난 뒤에 이상한 소리만 안 나왔으면 좋겠네.
정말로.
* * *
조금 우스운 말이긴 하지만, 야구는 늘 이런 순간을 만들어내곤 했다.
9회 말, 2아웃. 3점 차이.
다저스는 2번 타자인 스티븐 곤잘레스를 믿고 대타를 세우지 않고 있었고, 나는 포수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피어스 밀튼을 바라보며 피치컴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공도 공이지만, 평소 무던한 성격으로 인해 꽤 와일드한 상황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이런 압박감이 있는 무대는 이제부터인데, 아직은 더 익어야겠네.’
뭐, 저런 모습을 보여줘도 끝까지 자기 페이스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였기에 별걱정은 안 됐지만.
여담이지만, 다저스타디움은 이제 거의 고요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가 되었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열광적으로 다저스를 응원하던 함성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고, 아예 몇몇 관중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가고 있기도 했으니.
그들의 뒷모습은 선수인 내가 보기에도 꽤 무거웠고, 또 조용했다.
― 패스트볼.
그리고, 그런 김에.
나는 무릎을 낮춰 몸을 잔뜩 땅에 웅크린 채 포수 미트를 내밀었다.
몸쪽, 깊고 낮은 코스.
휘둘러 주면 좋고, 아니어도 상대에게 잡생각 하나쯤은 심어줄 수 있는 곳에.
혹은 더 큰 무대에서 더 위기상황에 등판할지 모르는 우리의 마무리 투수가 얼마나 ‘깡’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도 해볼 겸.
그리고.
퍼어어어어엉!
“볼!”
다행히도, 피어스 밀튼은 자신이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냈다.
내가 내민 미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틀어박히는 97마일짜리 패스트볼을 통해.
“젠장.”
스티븐 곤잘레스가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초구에 볼을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욕을 지껄일 정도로 예리하게.
“….”
그리고, 여전히 관중들이 고요했기에 그 한마디의 욕은 그 어느 순간보다 커다랗게 들렸고.
솔직히 말해서, 언제나 그랬듯 그건 꽤 재미있는 풍경이긴 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분노와 야유로 가득 차 있었고, 특히 내가 홈런을 날렸을 땐 몇몇 다저스 팬들은 나를 죽일 듯 꽤 험한 욕을 날리기도 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실망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이 큰 스타디움을 조용히 만드는 장면이 어떻게 재미있지 않겠어.
어쩌면, 그 괴로운 시계열의 나열 속에서 날 아직도 살아있게 만드는 이유 중 가장 큰 비율일 수도 있고.
* * *
몇 분 뒤.
“스트라이크!”
― 아, 몸쪽으로 기가 막히게 휘어들어 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가져가는 스티븐 곤잘레스. 이제 카운트는 2―2입니다.
초구에 던진 몸쪽과 2구째 바깥쪽 패스트볼을 잘 골라내던 스티븐 곤잘레스는 이어진 높은 패스트볼에 파울, 몸쪽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하며 스스로 극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윽―
초조한 듯, 배팅 장갑을 다시 동여맨 뒤 배트를 쥐는 상대.
그 움직임이 평소보다 다소 빠른 걸 보니, 그 역시 긴장감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 체인지업. 몸쪽 낮게.
3번째 구종이라고 하기에는 퀄리티가 썩 좋지 않아 평소에는 잘 던지지 않던 공이지만, 이런 타이밍에까지 참을 필요는 없겠지.
끄덕―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투구자세를 잡는 피어스 밀튼.
“흡!”
그의 팔은 곧 빠르게 휘둘러졌고, 여전히 밋밋한 체인지업은 몸쪽이 아닌 가운데 아래를 향해 다가왔다.
‘아.’
따아아악!
― 이 타구는! 아. 파울이군요.
…그래. 뭐.
안 맞았으면 되는 거지.
일단 3번째 구종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한번 다시 확인해 보는 걸로.
“좋아! 스티븐!”
“거의 넘어갔었는데!”
“부숴! 부숴버리라고!”
그렇게 스티븐 곤잘레스가 다시 홈플레이트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잠시 마스크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들자 그제서야 들려오는 소리들.
이제는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관중들은 스티븐 곤잘레스의 타구에 감명을 받았던 건지, 그제서야 침묵을 깨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 슬라이더.
평소 굉장히 사고가 유연하고 임기응변에 강하며, 사리 분별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나는 즉시 스스로 내린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음 공을 요구했다.
“흐읍!”
바깥쪽, 백도어로 꺾여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그리고.
따아악!
스티븐 곤잘레스는 기다렸다는 듯 그 공에 스윙을 했지만.
― 유격수를 향해 다가가는 타구! 크리스 도슨, 신중하게 공을 잡습니다. 그리고… 아웃!
체인지업을 던진 뒤 심기일전을 한 건지, 평소보다 더 격하게 움직인 피어스 밀튼의 슬라이더는 기어코 땅볼을 유도해 내는 데 성공했다.
“훅, 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