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4권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4권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4
이성적으로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4권
차례
Chapter 01.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Chapter 02. 홈 스윗 홈
Chapter 03. 자기가 그런 부류의 재능을 타고난 게 아니라면
Chapter 04. 느낌
Chapter 05. 내가 왜 영어를 잘하게 됐냐면
Chapter 06. 이런 무드
Chapter 07. 로.어.강
Chapter 08. 이겨도, 져도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Chapter 09. 전환점이 되긴 한 것 같은데.
Chapter 10.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Chapter 11. 포식자
Chapter 12. 해소
Chapter 13. 팬 보이
Chapter 14. 맥스
Chapter 15. 그럼에도
Chapter 16. 라이벌리
Chapter 17. 빅 스텝
Chapter 18. 완벽해
Chapter 19. 자존심
Chapter 20. 전후 행정
Chapter 21. 안녕? 스펜서. 오랜만이야.
Chapter 22. 첨벙!
Chapter 23. 두 번째 올스타
Chapter 24. MILE HIGH ROCKER
Chapter 25. 치킨―맨
역대급 고인물이 메이저리그를 깨부숨 04권
Chapter 01.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라이브볼 시대 이후, 야구는 언제나 투수가 유리한 스포츠였다.
하다못해 대 약물 시대조차도.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야 경기가 진행되는 야구의 특성상, 투수는 무한히 선공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퍼어어엉!
“볼! 베이스 온 볼스!”
― 아. 그랜트 리. 3회 말에도 또다시 볼넷을 내주는군요.
― 애스트로스에 있을 때부터 제구력에 대해 의문부호가 늘 따라다니는 유망주였죠.
― 필리스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찾아온 무사 1루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탐욕이 넘치는 이 투수라는 종자들은 그 선공권에 만족하지 못하고 온갖 수작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예컨대, 기계심판의 눈이 광명정대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보우하기 전 심판의 눈을 속이며 존을 넓히기 위해 했던 온갖 짓들이라든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신구종, 그리고 치킨 레이스처럼 제 몸을 깎아대며 던져대는 강속구 같은.
자기들은 삼진을 잡은 뒤 환호하면서 타자들이 배트를 조금 ‘덜 조신’하게 내려놨다고 바로 몸에 공을 심어버리는 짓 같은 건 예시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로.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 불릴 수 있는 짓은….
퍼어어엉!
“FUCK!”
“노려보지 마. 경기 보면 몰라? 여기서 미쳤다고 맞추겠어?”
타자를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들이었다.
지금의 그랜트 리처럼.
물론, 놈도 일단은 프로인 만큼 상대의 선수 생활에 위협이 될 정도의 공은 던지지 않고 있었다.
패스트볼을 높고 깊게 넣고 있긴 하지만, 그건 이대로 흐름을 내주기 싫은 상대가 계속해서 홈플레이트에 붙어 서서 위협적으로 느껴질 뿐, 엄밀히 따지면 존에서 공 한 개 정도만 빠진 공일 뿐이고.
뻐어어어엉―
그리고.
‘몸쪽, 바깥쪽 정도는 가능하다는 거지? 그게 가능한데도 일부러 저러고 있던 거고?’
놈은 상대 타자가 물러서면 물러서는 대로 바깥쪽으로, 붙으면 붙는 대로 몸쪽 코스를 공략하며 이득을 보고 있었다.
“볼!”
그 제구력이 딱히 정밀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닌지라 목표한 결과를 얻는 경우가 드물긴 했지만. 어쨌든.
‘노력한다. 노력해.’
강속구를 던지는 재능은 타고났지만, 그 공을 마음대로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제구력은 타고나지 못했고, 게다가 변화구 습득 능력이 좋은 편도 아닌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이쪽이긴 했다.
어쨌든 이렇게 잔뜩 상대 타자를 골려놓고 나면….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젠장!”
아직 피칭 터널도, 제대로 된 컨트롤도 잡히지 않은 단순 무브먼트 원툴 슬라이더조차 랜디 존슨의 그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일 테니.
어쩌면 딱 30년만 일찍, 그러니까 저 구속이 최상위권일 시절에 태어났으면 시대를 압도하는 마무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100마일을 우습게 던져대는 괴물들이 즐비한 이 시대에 태어나 저렇게 고육지책까지 써야 한다니.
이래서 시대가 중요한 거다.
…뭐, 어떻게 보면 5이닝 3실점 정도가 기대치인 5선발 자리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재라고도 할 수 있긴 한데.
타자를 상대하는 불펜에서야 점수를 아예 내줄 수 없으니 그 장점이 부각되지 못했지만, 타선을 상대하는 선발 자리에서는 자기의 이점을 맘껏 발휘한 뒤에 타자들이 어느 정도 적응할 때쯤 투수 교체로 도망가면 그만이니.
뭐가 됐든.
“지독하네.”
“뭐?”
“아닙니다.”
상대 타자의 몸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을 심어 넣는 놈을 정상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따악―
― 유격수를 향해 힘없이 굴러가는 공. 크리스 도슨, 잡아서… 2루, 그리고 1루에.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시작을 했으나 병살로 이닝을 끝내는 그랜트 리입니다.
“굿 볼.”
“하하. 운이 좋았네요.”
도대체 단장의 눈에는 뭐가 달려있길래 이런 애들만 주워 오는지는 몰라도, 얘도 트래비스 못지않게 꽤 비틀려 있다는 소리지.
그걸 다루는 사람이 내가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이렇게 팀 내에서 내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는 건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닌데 말이지.
― 오. 이닝을 마친 그랜트 리가 보인 웃음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원정팀의 팬이 보이는군요.
― 하하하. 그럴 만한 웃음이에요. 마운드 위에서는 과격한 야생마 같은 투수가 내려오는 순간 천사가 되어버리는군요.
절대 놈이 잘생겼는데 성적까지 잘 뽑히면 배가 아플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고.
띠링―
[팀워크 하락]
[―0.0001]
아니라고.
* * *
[필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5―3 신승을 거둔 로키스.]
[5이닝 2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둔 그랜트 리, ‘모든 건 저를 응원해 준 제 가족과 팬들, 그리고 팀원 덕분.’]
그렇게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1차전은 피홈런 한 개와 함께 5이닝 2실점을 거둔 그랜트 리의 승리와 함께 끝이 났다.
“여심 패스트볼? 미친 사람들.”
“뭐? Yeo―sim fastball? 그게 뭔데? 새로운 구종이야?”
“아니. 있어. 너는 절대 못 던지는 공.”
“…뭔지는 몰라도. 넌 던질 수 있다는 거지?”
“아마. 꽤?”
겨우 5이닝 2실점이라는 기록으로 MLB.com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해 버린 누군가 덕분에 한미 양국의 인터넷이 한차례 소란스러워졌기도 했고.
…상품성은 중요한 요소지.
그래.
크흠.
[베론 엘딜레스, ‘그는 동업자 정신이 없는 투수였다. 다음에 만나면 결코 이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 것.’]
뭐, 아무튼.
오늘 시원하게 두 명을 맞춘 대가로 내일 경기가 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예정이기도 했고.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시리즈의 기세를 넘기지 않기 위해 위협구, 혹은 고의적인 사구 정도는 던져올 테니까.
“척.”
“왜?”
“지금 이 시간에는 축구 선수들이 차는 씬가드 같은 건 못 구하겠지?”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
그리고 그 대상은 아마 내가 될 가능성이 크고.
원래 보복은 상대가 가장 아프게 느낄만한 부위에 쑤셔 박는 게 정론이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그랜트 리가 선발 로테이션에 있는 게 위험부담이 있긴 한데.’
사실, 그랜트 리에게 ‘뉴클리어 리’의 영상을 보내준 건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비록 직접 뵙진 못했거니와, 일종의 ‘밈’처럼 제구가 안 좋은 좌완 파이어볼러 유망주가 나올 때마다 가끔 짤로만 봐왔던 분이시지만… 적어도 그분은 헤드헌팅을 하신 뒤 본인의 의사가 절대 아니었다는 걸 적극적으로 어필하실 줄 아는 분이셨으니까.
그러니 그랜트 리가 그분의 그런 스킬까지 얻어낸다면 꽤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다고.
그분도 결국 상대 타자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아, 저놈이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지에까지 올라가셨으니까.
온갖 꼰대질로 유명했던 그 시절 KBO에서도 그런 효과를 보였는데, 마초 중의 마초 집단인 이곳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럼 뭐.
저런 소리를 들을 이유 자체가 없는 거지.
나 같은 선량한 팀원이 피해를 볼 일도 없을 테고.
‘연기력도 훌륭하니.’
평소에도 숨 쉬듯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놈에게 그 정도 연기는 뭐.
“아, 그런데 초이.”
“왜?”
“오늘 그랜트에게 왜 자꾸 몸쪽 공을 요구한 거야?”
“그게 왜?”
“아니, 자꾸 아슬아슬한 공이 나오는데 굳이 일부러 몸쪽 공을 강요할 필요가 있나 해서.”
“…당연히 그편이 훨씬 이득이니까.”
“그런가?”
“그래.”
그 연기가 오죽 대단했으면 척조차 그런 공을 던지는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