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닥터 이진우 02권
일타 닥터 이진우 02권
일타 닥터 이진우
02
걸리버W
일타 닥터 이진우 02권
차례
Chapter 01. 본격 시작 - 2
Chapter 02. 응급의학과 인턴
Chapter 03. 유명세
Chapter 04. 떡잎부터 파랗다면 영입해야지
Chapter 05. 변화가 필요해
Chapter 06. 부모님도 무조건 살린다
Chapter 07. 춘계 학회
Chapter 08. 외과 주치의
일타 닥터 이진우 02권
Chapter 01. 본격 시작 - 2
삐뽀, 삐뽀, 삐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응급의료센터 앞을 가득 메웠고, 옆에 보이는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본원에 비해 낙후된 시설이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수도 있겠지만,
벽면의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시설이 오래된 병원일수록 의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법이지. 아무도 안 오려고 하니까.]
“인턴들! 빨리 환자 파악해서 분류해! 다들 인계 잘 받았지?!”
“네, 선배님!”
담배 필 때는 흐리멍텅했던 김태의 눈빛이 바뀌었다.
지금부터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들어오는 환자를 응급한 순서로 분류했다.
“구급대원 선생님! 환자들 KTAS(응급 환자 분류 점수)실로 들여보내주세요!”
서재원이 본원에서 했던 방식대로 했지만, 곧바로 김태의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다중 추돌 사고는 바로 침대로 옮겨야 돼! 인계 안 받았어?!”
“죄, 죄송합니다.”
초응급상황에서는 선후배의 정도 없는 법이었다.
잘못했다간 김태의의 목이 날아가는 수도 있었으니까.
마침 왕사범 교수도 출근을 완료하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채 환자들을 응대하는 게 보였다.
응급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응급의료센터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각자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눈빛 교환만으로도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여기로, 여기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스트레처카에 태워서 들여놓는 동안 빠르게 교통정리를 하는 왕사범 교수다.
고속도로 추돌 사고로 각 병원에 분산 수용된 건이었는데,
상당수가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환자는 심폐소생술 방으로! 저 환자는 음압실로!”
“네, 교수님!”
“멘탈 체인지(의식 변화) 있는 사람들은 뇌 CT부터 찍어!”
응급실을 통과해 그대로 영상의학과 검사실로 옮겨지는 환자들.
심폐소생술 방에서 가슴압박을 하고 있는 윤하정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흰 가운 마저 땀 범벅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보원이 다가가 교대해주었다.
응급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진우도 응급구조사 한 명과 함께 구급대원이 이송해 온 환자에게 달려갔다.
카디악 탐폰 환자가 있다가 소리친 그 응급구조사와 함께였다.
“28세 임산부로 응급실 이니셜 바이탈은 혈압 90/55, 맥박 110회입니다!”
“임산부라구요?! 사고 경위는요?”
평소 침착함을 유지하던 진우였지만, 눈동자가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심낭에 물이 차는 카디악 탐폰만으로도 초응급인데, 임산부라니.
설상가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젊은 연령이었다.
어릴 수록 침습적인 술기에도 잘 버티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잠시 안전 벨트를 푼 상황에서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크흠…… 그럼 심장뿐 아니라 복부 손상도 살펴봐야될 거 같은데요? 일단 외상 초음파부터 보겠습니다!”
진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산모의 목과 가슴부위를 관찰했다.
응급실 조명만으로도 환자의 파랗게 튀어나온 목정맥 확장이 관찰되었다.
심장 기능 상실로 정맥의 혈액이 저류되어 부풀어 오른 것이다.
[만약 태아에게 손상이 발생했다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
‘치명타겠죠.’
노상범의 신중한 분석에 진우도 동의했다.
게다가 지금 혈압이 떨어지고 있는 원인이 복부 쪽 때문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선생님! 여깄습니다!”
응급구조사가 빠르게 외상 초음파를 갖다주었다.
[CT부터 안 보려고?]
‘네, 지금 영상의학과 검사실도 밀려있을거에요. 일단 심장이랑 복부 쪽 감별부터 할게요.’
진우가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초음파 프로브를 환자의 좌심실에 갖다대었다.
좌심실 주변부 심장막 공간에 하얗게 보이는 음영이 보였다.
[제길! 심낭압전이 맞아!]
다행히 현장에 의사가 있었어서 심낭압전을 유추한 모양이었는데, 사실 노상범은 마음속으로 틀리길 바랐다.
심낭 압전은 심장 눌림증으로 심장내과 영역의 초응급 질환이었으니까.
날카로운 바늘로 심장을 누르고 있는 심낭의 혈액을 빼내주어야만 한다.
진우는 지체하지 않고 초음파 프로브를 산모의 복부 쪽에 갖다 대었다.
그 순간 한 남성의 우레와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허허흐흐흑…… 선생님! 우리 아내 괜찮은건가요? 뱃 속에 제 딸도……흐흐흑…….”
남편으로 보이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환자였다.
다행히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탓에 크게 타친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보호자분, 이분 임신 몇 주차이신가요?”
“36주차입니다! 다음 주에 입원해서 출산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런 사달이…… 흐흐흑. 제발 우리 아내랑 딸 살려주세요, 제발요! 선생님!”
머리에 동여맨 붕대는 빨갛게 물들었지만, 남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복강 내 출혈이 보이긴하지만, 저명한 태아 손상까지는 안 보입니다. 심낭 압전 치료부터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산모와 아이 모두 지켜내겠습니다.”
진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일단 메타버스 시스템 안으로!]
파파팟―
[초음파 영상을 봤으면 카디악 탐폰 즉 심낭압전 진단과 위치 파악은 끝났다고 보면 돼. 술기의 핵심은 정확한 위치 선장과 깊이야.]
노상범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론적인 부분은 진우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흉부, 더 정확히는 심장에 날카로운 바늘을 꽂는 건 보통 담력이 있어서는 안된다.
자칫 깊이 조절을 잘못해 심장을 찔러 심정지 상태로 만드는 사례도 왕왕 보고 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곧바로 교도소 담장 안으로 들어가게 될 터였다.
‘떨어지는 혈압과 확장된 목정맥 소견 모두 심낭 압전을 가리키고 있죠.’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8게이지 바늘 주사기를 잡아 공기를 뺀 후, 테이블 위에 누워있는 환자의 흉부를 소독했다.
[검상하 접근법(subxiphoid process)으로 진행해. 아까 초음파 소견 상 그쪽이었어.]
‘이쪽으로요?’
[거기서 더 밑으로 가면 우심방 천공될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흉골연 찌르면 흉곽내 손상 받을수도 있어.]
노상범이 꼼꼼하게 실전 팁을 전수해주었다.
‘알겠습니다.’
진우는 입술을 깨물고, 온 신경을 환자의 심장 부위에 집중했다.
메타버스 시스템 안이긴 하지만,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있는 환자가 실제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툭.
진우는 지체하지 않고 긴 바늘로 피부를 뚫었다.
진피층 밑으로 피하지방층, 근육층, 흉막까지 여러 층의 막을 차례로 뚫는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바늘 끝에 노란 농과 투명한 장액이 맺힌 순간 진우는 주사기를 이용해 빨아들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상당량의 혈액이 흘러나왔고, 환자의 안색과 호흡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메타버스 시스템 안이라도 한번에 성공하다니, 소질이 있는데? 내과 갔으면 아까운 재능을 날릴 뻔했어.]
노상범이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이 멈춰있는 메타버스 시스템 안이었기에 가능한 여유였다.
‘바로 환자에게 가겠습니다!’
파파팟―
진우는 메타버스 시스템 안에서 연습한 응급 심낭천자 술기를 곧바로 시행했다.
“와…… 이거 레지던트 선생님한테 노티 안 해도 돼요?”
가만히 지켜보던 응급구조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환자가 있어서 바쁩니다. 새로 이 환자 파악하려면 시간 걸리고요.”
진우는 응급실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터였다.
“그, 그렇군요.”
“응급구조사 선생님은 옆에서 혈압 좀 재주세요!”
실전에서 심낭천자의 성공 여부는 혈압이 원상태로 돌아오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메타버스 시스템 안에서 미리 연습해봤지만, 눈 앞에 누워있는 건 산모였기에 긴장되는 건 여전했다.
[진우, 넌 할 수 있다. 차분하게 너의 손 끝 감각을 믿어라.]
‘네.’
진우는 망설임 없이 주사 바늘을 환자의 흉부에 꽂았고, 능숙하게 심낭액을 빨아들였다.
“허…….”
응급 심낭천자술은 레지던트도 아닌 심장내과 펠로우 정도는 되어야 성공해볼 수 있는 술기가 아니던가.
물론, 초고난이도 술기는 아니었지만, 매우 치명적인 위치에 가하는 것이기에 노상범 같은 숙련자가 옆에서 봐주어야 했다.
곧, 환자의 호흡과 맥박, 혈압이 정상 범위내로 들어왔다.
[잘했다.]
노상범은 제 몸이 성했다면 수제자를 향해 엄지라도 치켜세우고 싶은 목소리었다.
“서, 선생님! 우리 아내 괜찮은 건가요??”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복부 출혈과 관련해서는 응급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진우는 노상범과 함께 상의했던 환자 경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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