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태자비 3권
가짜 태자비 3권
 
태자의 정성, 태자의 마음
 
 
 
“당신 변한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전보다 신중해지고 나한테도 잘해 주잖아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태자가 언짢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잘해 주는 게 싫소?”
“아니요! 그냥 나를 안 찾길 바라요!”
유옥요가 손등을 긁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왜 자꾸 밖에서 밥을 먹어요? 모기가 이리 많은데!”
“바깥 경치가 좋으니까!”
태자가 말을 하며 옆에 있던 궁인에게 눈짓을 했다.
“태자비에게 부채질을 해 주어라.”
“네.”
궁녀가 부채를 갖고 와서 그녀에게 모기가 달라붙지 않도록 부채질을 했다. 덕분에 유옥요는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식사할 때도 궁인들은 시중을 드느라 먹지도 못하고 보기만 하는데, 부채질까지 하라니…… 얼른 먹고 사라져 주는 것이 나을 듯했다.
유옥요가 빠르게 밥을 먹자 태자가 입을 열었다.
“천천히 드시오. 집에서 부모가 그리 가르쳤소?”
“나는 부모가 없어요.”
우물거리며 말했는데, 귀가 밝은 태자가 정확히 들었다.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유옥요가 당황해서 앞에 앉은 태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물끄러미 유옥요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마마, 아직까지 주인 나리를 원망하고 계십니까?”
정자 밖에서 농영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전하와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시니, 억지로 혼인을 시켰다고 주인 나리와 마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이제 접으세요.”
“당연히 화가 나지!”
유옥요가 농영의 연기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혼인은 황상께서 명한 일이라는 건 나도 안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겠지. 내가 지금 화가 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보러 궁에 안 오신다는 것이다. 이리 기다리는데도 안 오시면 정말 부모님은 없다 생각할 것이다.”
“주인 나리는 내궁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태자 전하가 계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앞으로 저희 부모님을 궁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유옥요가 태자를 보며 웃으며 부탁했다. 간절함을 담은 눈빛과 웃느라 벌어진 입술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알았소!”
태자도 활짝 웃으며, 음식을 집어 유옥요의 접시에 놓아 주었다.
“많이 드시오.”
“네. 고마워요. 전하도 드세요.”
어쨌든…… 이번 고비도 이렇게 넘어갔다.
태자도 웃는 것을 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유옥요는 태자의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식사가 끝나자, 안자가 찬합을 들고 들어와 웃으며 유옥요 앞에 내려놓았다.
“마마, 태자 전하께서 내리시는 것입니다.”
유옥요가 이상하다는 듯 태자에게 물었다.
“배불러서 전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요.”
태자가 턱으로 찬합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번 열어보시오.”
“뭔데요? 먹는 게 아니에요?”
“열어보면 알게 될 것을 무슨 말이 그리 많소?”
퉁명스런 태자의 말에 유옥요가 어쩔 수 없이 찬합 뚜껑을 열었다. 태자의 성격상 혹시 살아 있는 생물을 넣어 두고 자신을 놀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무서운 물건이 아니었다. 열자마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자세히 보니 각양각색의 단과자가 가지런히 가득 담겨 있었다.
나비모양의 바삭한 과자에 매화꽃 모양의 과자, 용의 수염처럼 생긴 용수엿, 우유로 만든 하얀 엿……. 아랫단에는 각종 과일절임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유옥요는 침을 꿀꺽 하며 멍하니 쳐다보다 마침내 깨달은 듯 소리쳤다.
“이건 밀원상의 단과자가 아닙니까?”
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사다 준다 하지 않았소. 오늘 출궁한 김에 사 왔는데 기분이 좋소?”
“전부 제 것입니까?”
유옥요가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으며 말했다. 입안에 달콤함이 가득 퍼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다 당신 것이오. 좋다면 밀원상을 통째로 사 주겠소.”
이때 유옥요는 당장이라도 이 밀원상 단과자 찬합을 현풍채로 갖고 가서 형제들과 함께 맛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성에 나올 때마다 겨우 한 봉지 사 갖고 가서 한 사람 당 하나씩만 먹을 수 있었는데…….
“정말 좋아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유옥요가 맑게 웃으며 과자를 하나 집어 태자 앞에 내밀었다.
“한번 먹어 봐요. 정말 맛있어요.”
태자가 그녀의 손을 보며 먹여 달라는 듯 입을 벌렸다. 기분이 좋은 유옥요는 얼른 과자를 태자의 입에 넣었다. 그런데 태자는 그녀가 손가락을 빼기도 전에 얼른 입을 다물어 하마터면 유옥요의 손가락을 깨물 뻔했다.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지만, 태자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겸연쩍게 하하 웃었다.
유옥요는 이 남자가 가끔 아이 같았다. 자신도 아이같이 단순하고 솔직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싸우고 부딪히는 일이 많지만 또 아이처럼 금방 잊고 웃었다.
 
*
 
농영이 과자가 든 찬합을 들고 뒤를 따르고, 태자와 태자비 두 사람이 앞서서 나란히 걸었다. 등불 때문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뒤로 길게 드리워졌다. 활짝 핀 청춘의 아름다운 나이에 맞게 쾌활하게 농담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어쩐 일인지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태자가 갑자기 손을 뻗더니 무언가를 잡더니 빙그레 웃었다.
“내가 무엇을 잡았는지 맞춰 보시오.”
“뭐라고요?”
발끝만 보고 걷고 있던 유옥요는 태자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벌레요.”
유옥요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태자에게 말했다.
“벌레나 잡으시고 심심하신가 봅니다.”
태자가 활짝 웃었다. 하얀 치아가 어둠속에서 유난히 빛나 보였다.
“무섭소?”
“벌레가 뭐가 무서워요. 저도 많이 봤어요.”
전에 산 속에 살 때, 매일 뱀과 쥐와 벌레들과 함께 살지 않았는가!
유옥요는 무서워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디 봐요, 대체 무슨 벌레인지!”
태자가 주먹을 열자 반짝이는 벌레가 천천히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잡지 못했는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아! 반딧불!”
유옥요가 활짝 웃으며 잡으러 손을 뻗으려다 얼른 다시 거둬들였다. 그 모습에 태자가 물었다.
“갖고 싶소?”
유옥요가 고개를 저었다.
“잡아서 방에 두면, 잠잘 때 반짝거릴 텐데 얼마나 좋겠소?”
“아니요. 싫어요…….”
“왜 싫소?”
유옥요가 이번에는 맘에 있는 말을 꺼냈다.
“잡아서 방 안에 가둬 두면 자유를 잃게 되니까요.”
자유를…… 잃는다…….
태자가 뒷짐을 지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앞에 서 있는 이 여인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여인이 맞는데 또 가장 낯선 여인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얼굴을 얼마나 더 감추고 있는지를. 얼마나 더 많은 말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품고 있는지를…….
태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옥요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안 가십니까? 얼른 가요. 모기가 많습니다.”
태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부채를 부쳐 주며 걸어갔다.
“궁 밖의 생활이 그리우면, 내일 본 태자가 당신을 데리고 나가 구경시켜 주겠소.”
“정말이요?”
유옥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쩌면 그 기회에 도망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농영이 뒤에서 그녀 팔에 무언가를 튕겼다.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를 아는 유옥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닙니다. 가고는 싶지만 요즘 전하께서 많이 바쁘신 듯하니, 나중에 한가해지면 가요!”
그녀가 웃자, 태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소. 그런데 알아 둘 것이 있소.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당신을 앞으로 더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요. 이 천하를 당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방금 이 반딧불처럼 아무런 구속 없이 맘껏 날아다닐 수 있소.”
태자 말의 깊은 뜻은 다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진심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작은 정원을 걸어 유옥요의 처소 앞으로 왔다. 태자가 그녀와 함께 들어가려는데, 유옥요가 막아섰다. 유옥요는 지난번 행궁에서, 태자와 함께 있는 것이 자신에게 여러모로 힘들다는 교훈을 얻었다.
“들어오지 마세요. 저는 잘 거예요. 전하도 처소로 돌아가세요.”
불쾌해진 태자가 한 손으로 문을 열더니 유옥요를 지나쳐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본 태자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아직 누구도 막아선 적이 없다.”
유옥요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방에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농영의 손에서 과자찬합을 받아 탁자 위에 놓았다. 탁자 옆에는 얼음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어제 호숫가에서 놀고 있을 때, 태자가 태자비에게 얼음을 갖다 주라 한 지시대로 안자가 발 빠르게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덕분에 유옥요의 방에는 궁중에서 가장 먼저 얼음항아리가 놓였다. 궁 안의 비빈들이 이 일을 두고 부러움과 질투의 말들을 보탰다.
유옥요가 과자찬합의 단과자 접시를 하나씩 꺼내 조심조심 얼음항아리 위에 올려놓았다. 더운 날씨에 설탕이 녹아 눅눅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부채를 접어들고 내실 안 의자에 앉아서 유옥요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태자가 말했다.
“여름에 얼음이 있으니 정말 좋소. 방에 들어오니 시원한 기운이 도는 군. 그래도 밤에 잘 때는 한기에 조심하시오.”
“저는 더위는 타도 추위는 안 타요.”
유옥요가 하던 일을 하며 대꾸했다. 그러다 농영이 태자에게 차를 올리자, 다급하게 물었다.
“이곳에서 차를 드시게요? 저는 이제 잘 것입니다.”
태자가 아무 말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밤, 본 태자는 이곳에서 머물 것이다.”
놀란 유옥요가 하마터면 단과자접시를 얼음항아리 안에 쏟을 뻔했다.
“그……, 그럼 제가 전하 처소로 가서 자겠습니다. 그게 좋을 듯합니다.”
“당신도 여기 있으시오. 어디 갈 생각은 하지 마시오.”
마지막 접시를 얼음에 올리고 나서, 유옥요가 갑자기 밖으로 뛰었다. 그 모습을 본 태자도 얼른 쫓아가, 그녀의 발이 막 문지방을 넘어가려는 때 팔을 잡았다.
울상이 된 유옥요가 고개를 돌리더니 멋쩍은 듯 웃었다.
“제 침대가 작습니다. 좁아요.”
“누가 그러느냐? 태자비의 침대가 작다면, 이 동궁에 큰 침대는 없다.”
태자가 말을 마치고, 손에 힘을 주어 유옥요를 품으로 당겨 허리를 감싸더니 안아 올렸다.
유옥요가 놀라 떨어질까 태자의 목에 팔을 감고,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태자가 침대에 그녀를 던지자, 유옥요는 이 일이 자신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태자가 그녀의 몸에 올라오더니, 그녀의 속눈썹에 아이처럼 바람을 불었다. 유옥요가 놀란 토끼처럼 몸을 움츠렸다.
태자가 유옥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저녁에 본 태자가 당신에게 들인 저런 정성들을 다 헛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오?”
가짜 태자비 3권
 
설마 정말 그리 생각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