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휴양지에서의 습격 (2)
2장 여름의 추억
3장 방문자
4장 마탑주의 교육
5장 합동 리그전 시작
6장 원리과 실습 종료
7장 주말의 소란
8장 턴 언데드
9장 사령의 그림자
10장 사령 대전 (1)
1장 휴양지에서의 습격 (2)


“치정 관계로 인한 불상사라며!”
치안 센터에서 우리를 데리고 나온 클라인이 소리를 빽 질렀다.
“에리올, 네가 여자애들하고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삼각관계 때문에 칼부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어.”
“사, 삼각관계라니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교수님.”
내 옆에 있던 세니아와 샤를로트가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범인은 어디 있지?”
“이쪽이요.”
나는 클라인을 근처에 있던 허름한 여관으로 데려갔다.
방으로 들어서자 루키드나를 감시하고 있던 케인이 휘파람을 불었다.
“와우, 클라인 교수님이 걸렸네.”
“케인, 역시 네가 아이디어를 낸 거군…….”
여름휴가 동안 베사치아에 놀러 온 아카데미 교수가 분명 있을 테니, 안내 방송을 활용해서 불러내면 된다는 것이 케인의 아이디어였다.
“교수님, 여름휴가라고 잔뜩 멋 내셨네요. 해수욕장에서 헌팅이라도 하실 생각이셨어요?”
“시, 시끄럽다. 어쨌든…….”
클라인이 꽁꽁 묶여 있는 루키드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흑요석 마탑 서열 10위. 루키드나로군.”
“윽…….”
“아르스 마그나 아카데미, 전승과 정교수인 클라인이다. 당신을 구속하여 아카데미로 데려가겠다.”
그 직후, 루키드나의 전신이 경직되었다.
클라인이 마법을 사용해 루키드나의 육체를 완전히 구속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여름휴가 중인데 저희가 방해를 해 버렸네요.”
“됐다, 에리올.”
클라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직접 잡은 건 아니지만, 마탑 간부를 아카데미로 무사히 데려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내 실적이 되지.”
“아…….”
“휴가를 자진 반납하게 생겼지만, 그것보다는 아카데미 일이 우선이지. 나도 나름 야망이 있는 마법사라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루드바우트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티르피가 전승과를 이어받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차기 학과장은 기존 교수들 중에서 선발할 거라고.
클라인도 차기 학과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던데, 실적을 쌓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에리올…….”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클라인이 말했다.
“정말로 큰 공을 세웠다. 마탑 서열 10위를 생포하다니, 이건 카이셀 교수도 못 했던 일이야.”
“그런가요?”
“그래, 카이셀 교수도 1학년 때 마탑 간부와 격돌했지만, 그냥 격퇴만 했을 뿐이지.”
마탑에서 카이셀에게 접근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간부하고도 싸웠던 건가.
“에리올,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너도 아카데미에 돌아오면 어떠냐?”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계속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 알겠다.”
클라인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탑도 지금 당장 높은 서열의 간부를 너한테 보내지는 않겠지. 한동안은 아카데미 쪽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아카데미 측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자세한 건 상층부에서 정하겠지만, 어쨌든 가만있지는 않을 거다. 지난번 개러스 트리거 사건에서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벌였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클라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다만 좀 애매한 부분도 있지. 학기 중에 아카데미 안에 숨어들어 너를 덮쳤다면 좀 더 강하게 나설 수 있겠지만…….”
“여름 방학에 아카데미에서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이니, 아카데미와 마탑 사이의 분쟁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얘기인가요?”
“그래, 하지만 결국 상층부 의지에 달렸지. 어쨌든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클라인의 눈빛이 살짝 무서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좀 화가 났고 말이다.”
“교수님…….”
“너희들은 아직 신입생이다. 여름 방학에 신입생들끼리 여행 중인데 간부를 보내서 납치하려고 들다니…… 아무리 아카데미와 마탑이 매번 공격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해도, 이건 매너 위반이지. 너희들의 지도 교수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클라인은 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
“어쨌든, 여기서부터는 우리 어른들이 처리하겠다. 너희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도록 해라.”

* * *

대륙 최대의 국가인 루블칸 제국.
그 중심지인 제도(帝都) 루블카니아에서는 주요 마법사 단체의 간부들이 모이는 ‘마도 대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명목상으로는 학술 교류를 위한 자리이지만, 실제로는 각 단체들이 정치적인 기 싸움을 벌이는 전장(戰場)이다.
아르스 마그나 아카데미, 흑요석 마탑, 호르스 마법학원, 성령 수도회 등…… 주요 단체의 마법사들이 다양한 안건에서 자기들 입장을 내세우며 싸움을 벌인다.

“내 의견에 동의해 줘서 고맙군. 정말로 고마워.”
낭랑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나이 지긋한 마도사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를 깔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서 그녀보다 노련한 마법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흑요석 마탑을 대표하여, 이 바르니아 바스톨이 제군들에게 감사를 표하지.”
바르니아 바스톨.
붉은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소녀.
겉으로 보기에는 10대 소녀지만, 실제 나이는 열 배 이상.
그녀가 바로 흑요석 마탑의 서열 1위 ‘마탑주’였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어. 정말 기쁘네.”
본래 그녀가 대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별로 없다.
평상시에는 좀 더 서열이 낮은 간부를 내보낸다.
이런 건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아르스 마그나 아카데미도 요스테라스 학장이 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니아가 이번 대회의에 참석한 것은, 최근 있었던 불상사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개러스 트리거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이 발각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마탑주가 직접 나서서 마탑의 위상이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안건은 오후 전체 표결 대상으로 삼자고.”
바르니아는 이미 대회의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대륙 10대 마도사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바르니아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없었다.
“다들 이의는 없겠지?”
아무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회의장을 둘러보면서, 바르니아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오전 회의가 끝난 뒤.
바르니아가 수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이셀?”
카이셀 발렌시아.
바르니아와 마찬가지로 대륙 10대 마도사의 일원인, 아르스 마그나 아카데미의 젊은 교수.
그가 평소처럼 우아하고 냉철한 모습으로 복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오전엔 조용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경계하는 부하들을 제지하면서 바르니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 오랜만에 같이 식사라도 할까? 제도식 스테이크를 아주 잘하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네 취향에도 맞을 거야. 거기서…….”
“마탑주.”
카이셀에게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탑 서열 10위 루키드나가 내 조카를 습격했다고 하더군.”
“흐음?”
바르니아가 걸음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나는 모르는 얘기인…….”
“시치미 떼지 마라, 마탑주.”
카이셀이 바르니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내 조카가 루키드나를 생포했다.”
“뭐라고?”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네 지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진술을 얻을 수 있겠지.”
“…….”
바르니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눈짓을 하자 부하 몇 명이 급히 자리를 떴다. 카이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 봐야 했기 때문이다.
“흐음, 그래서?”
바르니아는 다시 표정 관리를 하면서 물었다.
“나는 루키드나한테 에리올 발렌시아의 정보를 수집해 오라고 지시했을 뿐이야.”
“…….”
“너도 알잖아? 나는 구체적인 명령은 내리지 않아. 내가 루키드나에게 네 조카를 언제 어디로 데려오라고 하나하나 지시했을 것 같아? 네 조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납치해? 착각도 유분수지.”
“마탑주.”
그때 카이셀이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나는 루키드나가 내 조카를 납치하려 했다고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습격했다고만 했지.”
“…….”
“이걸로 네가 이번 일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
멈칫하는 바르니아를 노려보며, 카이셀이 말했다.
“적대 행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어리석은 마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