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 밀리아
2. 성녀
3. 소집
4. 장벽 너머
5. 괴조
6. 폐허
7. 귀환
8. 녹색 형제단
9. 붉은 여왕파
10. 마검 티르빙
1. 밀리아


회장과의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당진웅과 함께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회는 바람과 같아서~ 잡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네~.”

당진웅이 비아냥거렸다.
나름 목소리를 깔고 하보크 회장을 성대모사한 것 같지만, 비슷하지는 않았다.

“그 너구리 같은 영감, 여전하군요. 인재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더니.”

하보크 회장의 별명은 인재 콜렉터.
마치 수집형 가챠 게임에서 캐릭터를 모으듯 돈을 들여 다양한 인재를 수집한다. 걔 중에는 명문가의 자제, 사회의 엘리트 계층, 유명 랭커들도 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뭐요? 아, 둘째 형하고 싶은 대로 하시죠. 제가 뭐 그쪽에 관해 아는 게 있겠습니까? 형님 하고 싶은 대로 하시죠.”

당진웅은 넉살 좋게 이쪽에 관해서 잘 모른다고 잡아뗐지만, 사실 이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름 사천당가에서 길드를 세우려고 사업을 추진했었다. 중간에 엎어졌지만.
결국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0년 전부터 매년 열리는 균열의 수가 급감하고 지금에 와서는 연간 손에 꼽을 정도로 균열의 수가 줄었으니까.

“으음….”
“걸리는 게 있습니까?”

당연히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회장이 직접 접선해 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둘째 형. 저기….”

당진웅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자연스레 당진웅과 시선이 겹쳤다.
그곳에는 웬 여자애가 서 있었다.
배꼽이 보이는 셔츠, 핫팬츠와 가죽 팔찌, 이런저런 귀걸이를 달아 펑크룩이 어울리는 이였다.

“오? 혹시나 해서 잠깐 기다려 봤는데 보람 있네.”

그리 말하는 이는 랭커 2위.
아슬란과 더불어 용호상박을 이루는 각성자, 밀리아 롯테였다.

“안녕~ 열차 협객. 만나서 반갑다.”

주차장에는 나와 당진웅 그리고 밀리아 밖에 없었다.

“설마 저를 기다린 겁니까?”
“어, 잠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여기 네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밀리아는 럭비공 같은 인간이라서 어디로 튈지 몰랐다. 그녀 쪽에서 나를 기다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설마 명성이 높아져서 밀리아와의 이벤트가 진행되는 건가…?’

밀리아의 별명은 기부 천사.
헌터 쪽 업계가 망해감에 따라 더 많은 각성자가 남길 바라며 실제로 그녀는 헌터 협회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단체에 매달 이런저런 기부금을 내고 있었다.

“뭐야, 별로 안 반가운가 봐?”
“아닙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만나서 영광입니다. 밀리아 님. 팬이었거든요.”

당진웅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밀리아의 팬이라지만, 아직 밀리아의 비밀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오? 사천당가의 아드님께서 내 팬일 줄은 몰랐는데?”
“뉴메르시아 사람이면 당연히 밀리아의 팬 아니겠습니까?”
“그래? 근데 그쪽은 뉴메르시아 사람이 아니지 않나?”
“시민권이 있습니다.”

그제야 밀리아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아아, 미안. 내가 또 차별적인 발언을 했네. 에이다가 알았으면 잔소리 들었겠는데?”
“비밀로 해드리죠.”
“하하, 고마워. 사천당가 청년. 팬이라더니 사인이라도 해 줄까?”

당진웅의 입이 이제는 귀에 걸릴 것만 같았다.

“사인보다는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팬이라면 내가 팬들하고 사진 안 찍는 거 알 텐데? 진짜 팬 맞아?”

당진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밀리아에 관해 아는 바를 읊었다.

“당연히 팬이죠. 밀리아 롯테. 생일 2월 16일, 웨스트 시티 출신, 팬덤명은 밀리언즈, 소속은 1인 길드 ‘마성’….”

생일은 나도 몰랐는데….
당진웅 생각보다 찐팬이었나.

“생일까지 기억해 주다니 영광인걸? 오케이, 합격. 사진 까짓거 찍지 뭐.”

당진웅은 밀리아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엔스타에 올릴 거면 태그 걸어~”

사진까지 찍고서야 당진웅은 만족한듯했다. 그건 그렇고….

“그러고 보니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인사 나누고 있었습니다.”
“맞네. 나에 관해서는 알 테고.”

밀리아가 윗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넸다.
아니, 건넸다는 표현은 살짝 잘못된 것 같다. 휙 하고 던진 명함이 자연스럽게 날아서 내 앞에 떠올랐다.

“내 개인적인 연락처야. 뭐 기왕이면 따로 먼저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쪽이 워낙 신비주의여야지. SNS도 안 보이더라.”

개인적인 연락처.
그러니까 길드에서 업무를 받는 연락처가 아닌 밀리아 개인 번호를 의미한다.
참고로 밀리아의 1인 길드 ‘마성’은 밀리아와 매니저를 맡은 비전투계열의 각성자인 에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둘이면서 1인 길드인 이유?
그건 1인 길드가 더 멋지다는 이유로 밀리아가 1인 길드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잘 받도록 하죠.”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라고.”
“명함을 주려고 기다리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일단 탈래? 가볍게 차나 한잔하지. 겸사겸사 비즈니스도.”

헛기침을 하던 당진웅이 끼어들었다.

“흠흠, 제가 잘 아는 찻집이 있는데….”
“미안, 오늘은 열차 협객이랑 얘기하려고 온 거라서.”
“아, 그러시군요.”

시무룩.
그 자신감 넘치던 대사천당가의 둘째 아들은 어디 가고 주눅 든 당진웅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