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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붉은 머리의 사냥꾼 (2)
2. 오르비스
3. 괴물 신입
4. 식물학 붐은 온다
5. 접선
6. 개미굴
7. 실험실
8. 피에스타
9. 탈로스
1. 붉은 머리의 사냥꾼 (2)


“후우…, 에드. 귀찮은 일을 맡기셨네요.”

메이릴은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마기를 발산하던 마검이 지면을 향해 늘어져 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소녀의 그림자에 이어져 있던 바포메트는 사라졌다.

“에드, 소녀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메이릴이 중얼거렸다.
쓰러진 엘리아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쩌저적―
허공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몇 줄기로 이어졌다. 잠든 이가 일어나니 세계도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다.

드드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세계가 흔들렸다.
황무지가 흙먼지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메이릴은 엘리아의 옷자락을 잡았다. 딛고 있던 지면이 내려앉았다.

메이릴은 날개를 펴고 펄럭였다.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이 황무지를 집어삼키고, 갈라진 대지 사이로 땅이 꺼지고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계곡으로 세계가 무너졌다. 이윽고 주변에 어둠이 들어찼다.

팟!
세계가 한순간 밝아져 있었다.
착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메이릴은 상체를 일으켰다.

어느새 자신은 침대 끝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메이릴에게 다가왔다. 네로우였다.

“끝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죠?”

그 물음에 답은 없었다.
네로우의 여동생이 눈을 떴으니까.

“오빠…. 여기는…?”
“엘리아….”

실성한 이처럼 네로우는 비틀비틀 엘리아에게 향했다. 이내 그는 부드럽게 동생을 껴안았다.

‘음, 쿨한 저는 떠나 주도록 하죠.’

메이릴은 자매를 보다가 뒤돌아섰다.
문밖으로 나서자 소파에 앉아 있는 에드가 보였다. 느긋한 표정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다음부턴 이런 거 시키지 말아요.”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타인의 꿈이나 의식에 개입하는 것은 몽마 여왕의 권능이었다.

“며칠이나 지났죠?”

의식의 세계와 현실은 다르다.
따라서 시간 개념 자체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에드는 한차례 시간을 확인했다.

“2시간하고도 24분 지났네.”
“하아…, 분명 꿈에서는 이틀이나 헤맸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어.”
“그걸 말이라고…!”

에드는 방 쪽을 살폈다.
방에는 오랜만에 동생과 만나 감격에 젖은 네로우가 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선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상책이었다.

“밥이나 먹을까?”
“좋아요. 그쪽이 사시죠. 누구 덕에 고생 좀 했으니까요.”
“그래. 그 정도야. 뭐.”
“할로우, 잠시 여기 좀 지켜 주겠어요?”
“예, 얼마든지요.”

메이릴의 물음에 할로우가 대답했다.
할로우를 제외하고 둘이 식사하자.

둘이서만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 * *

센트럴 시티의 레스토랑.
룸형식의 레스토랑이었다. 내가 사겠다고 하니, 메이릴은 신이 나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얼마지 않아 철판 스테이크가 나왔다. 메이릴이 우아하게 고기를 한 점 썰어 입어 넣었다.

“역시 노동 뒤에 먹는 고기 한 점은 맛있네요. 이럴 땐 와인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와인도 시킬래?”
“그쪽이 마신다면 저도 마시고요.”
“난 됐어.”

메이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도 됐어요.”
“본론이 뭐야? 둘이서만 보자는 건 둘이서 할 말이 있단 거잖아.”
“아, 사일런스 마법 좀 걸어 주시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다. 어차피 룸형식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까 그 네로우란 인간…, 예상했던 대로였어요.”
“예상했던 대로라면….”
“그 여동생한테 마왕이 숨어 있었단 거죠.”
“마왕이라….”

나는 의아해했다.
아니, 그런 척 연기했다.
역시 빙의자는 아는 내용도 연기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저도 처음에는 의아했죠. 꿈속에서 바포메트를 만나고서야 확신했어요.”

나는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네로우란 인간은…. 마왕의 권능을 이어받았어요.”
“권능을 이어받았다….”
“바포메트를 봉인했었죠?”
“…그래.”

애써 부정할 필요 없었다.
천 년 전, 에드 일행이 바포메트를 봉인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바포메트를 처리한다면 처리한 당사자가 ‘엔드리스 드림’에 걸렸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에드 일행은 바포메트를 봉인했었다. 봉인 장소는 그와 결전이 있었던 던전의 최하층.

“바포메트는 자력으로 봉인을 풀 방법이 없었고 결국 네로우란 인간에게 자신의 권능을 넘겼죠.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인데…, 바포메트는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