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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올 시즌 대전 팔콘스의 구강혁은…….
명실상부 KBO 최고의 투수.
구속이 더욱 올라온 지금, 전매특허인 뱀직구만 던지더라도 어지간한 타자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포심 패스트볼만 던지느냐?
그렇지도 않고, 그래서 더 문제다.
속구 계열로는 포심과 너무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지만, 홈플레이트 직전에 가라앉으며 헛스윙까지 유도해 내는 투심 패스트볼.
사이드암보다 살짝 높은 팔 각도에서 나오는, 포심과 완전히 반대되는 움직임을 가진 슬라이더는 우타자에게는 지옥행 티켓과도 같다.
또 구태성에게 배운 팜볼성 체인지업까지.
이제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구강혁은 KBO의 수준을 넘어선 선수라는 것을.
그런 만큼 시즌 내내 김도현도 압도해 왔다.
그럼에도 구강혁이 김도현을 매번 까다롭게 생각하고 공략에 힘을 쓰는 것은…….
언제 어떻게 한 번을 때려내도 이상하지 않은, 현 시점 리그 최고의 실력과 재능을 갖춘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이탄스의 황기준이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집념으로 구강혁에게 맞섰다면?
‘내 성장이 여기서 정체된다면.’
김도현은 그 재능으로 구강혁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른 레퍼토리를 추가하거나, 구속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시즌에라도 김도현은 나를 공략해 내기 시작하겠지.’
직전의 2구도 그랬다.
‘심지어 방금도 조금만 타이밍이 빨랐다면 어렵잖게 담장을 넘겼을 수도 있는 타구야.’
슈욱!
3구.
부우웅!
또 한 번 김도현의 배트가 돌았다.
재능을 그림으로 그려 낸 것만 같은…….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스윙.
그러나.
퍼어어엉!
‘하지만 아직은 안 돼.’
구강혁의 공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 찰나가 지금은 너무도 큰 차이다.’
몸쪽 낮은 존 보더라인을 뚫어 내는…….
154km/h의 투심 패스트볼.
[……헛스윙, 삼구삼진! 이렇게 물러날 수밖에 없는 김도현! 구강혁이 오늘 경기 첫 탈삼진을 재규어스의 중심, 기둥! 김도현을 상대로 얻어 냅니다!]
삼진.
구강혁이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보였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파울홈런 뒤에는 삼진이지!”
관중석에서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 * *

1회말, 팔콘스의 첫 공격.
1번 타자 황현민이 타석으로 향했다.
“후우.”
숨에 긴장감을 담아 내뱉으면서.
타격감은 누구보다 타자 본인이 잘 안다.
황현민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로이스를 상대로 유격수 키를 넘기를 안타를 만들어 냈지만…….
득점으로 연결된 출루는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해내야 한다.’
이후로도 시리즈 내내 1번이라는 중요한 타순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3차전에서 희생번트로 타점의 발판을 놓기는 했지만, 결국 경기는 역전패하고 말았고.
정규시즌에야 이를 악물고 활약하며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감독 추천 선발이었어도 첫 올스타전 무대까지 밟았지만…….
포스트시즌은 완전히 다른 무대였다.
당장 이번 시리즈의 타격감이 문제.
다른 선배 타자들의 좋지 않은 흐름마저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제는 정말 감독님을 따로 뵙고 타순 조정이든, 선발 제외든 요청을 드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을 정도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감독님께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믿어 주셨다.’
그럼에도 김용문 감독은, 오늘도 변함없이.
1번 타순에 황현민의 이름 석 자를 적어넣었다.
믿음의 야구.
황현민이 가볍게 자세를 고치고는……..
마운드를 노려보며 배트를 세차게 휘둘렀다.
부우웅!
또 한 번 관중석이 달아올랐다.
“스윙 뭔데!”
“홈런 함 가자, 간만에!”
“그려, 못 칠 건 또 뭐여!”
“1점만 내면 이기는 게임이여!”
승리를 향한 갈망.
5차전을 원하는 목소리였다.
황현민이 타석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상대는 좌투수 김연수.
좌타자인 황현민에게 반가운 상대는 아니었다.
로이스나 알버트에 비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후반기 재규어스의 4선발로 활약한 투수다.
‘역시 강혁 선배는 강혁 선배다. 휴식이 부족하고, 엘리미네이션 게임인 데다, 상대 타선의 흐름이 제대로 올라왔는데도 1회초를 압도했어.’
결코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다.
‘관중 분들 말씀대로…….’
황현민이 눈에 힘을 주었다.
‘한 방이면 정말 쉽게 풀리겠지.’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네오 팔콘스 파크의 담장을 넘기고 싶은 사람은…….
바로 황현민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지.’
김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은 다른 동료들이 해 주면 돼.’
초구.
‘경기 전에도 서로 믿기로 했잖아…… 지금은 누구보다 강하게 믿어 보는 거다.’
슈욱!
‘감독님께서 믿어 주신 나를.’
다음 순간.
황현민이 배트를 눕히며 달려 나갔다.
틱!
[……황현민의 기습번트!]
[아, 이거 뭔가요!]
기습적인 번트 시도.
타구는 왼쪽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3루수의 대쉬, 그러나 잡을 수 없고!]
3루수의 글러브를 스치듯 빨려 나가…….
유격수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간 황현민이 몸을 날렸다.
[유격수가 잡아냅니다, 잡아내서 그대로 송구! 황현민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살았나요!]
1루심의 양손이 시원하게 벌어졌다.
“세이프!”
[……세, 세이프! 세이프 판정이 나옵니다! 기습적인 시도를 빠른 발로 성공시키는 황현민, 1회부터 선두타자가 1루에 나가는 대전 팔콘스!]
김연수가 1루수 변우성에게 물었다.
“……판독?”
변우성이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판독 신청도 없습니다!]
[이야, 황현민 타자가 정말 빨랐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사실 부상 위험이 워낙 커요. 타자 주자가 슬라이딩 보호구를 착용할 수도 없으니까…… 타이밍이 어긋나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까지 하고요.]
[어쨌든 판정은 세이프가 됐습니다만, 다시 볼까요.]
[지금은……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는 그런 주루였어요. 물론 매번 이런 허슬 플레이를 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은 솔직히 황현민 선수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엉거주춤 일어난 황현민이, 잔뜩 지저분해진 유니폼을 툭툭 털어 내고는…….
“흐.”
더그아웃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구강혁이 누구보다 높이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갓현민!”
다음은 한유민의 타석.
[……김연수 투수는 당황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어제 윤상철 투수가 경험이나 연차에 비해 좋은 피칭을 선보이기는 했습니다만, 김연수 투수도 이런 무게감 있는 경기에서의 선발 등판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요.]
[그렇죠. 상황은 팔콘스가 조급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올라온 도전자 포지션이기도 하고요. 황현민의 이런 기습번트가 득점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재규어스로서는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겁니다.]
[한유민이 타석으로 들어옵니다. 포스트시즌 타격감이 좋은 편이었고, 안타로 이어지지 않은 타구의 질도 좋은 편이었던 한유민. 여기서 팔콘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좌투수에 포수인 한준구도 워낙 도루 억제력이 있는 포수라 황현민에게만 맡기기는 쉽지 않아요. 더그아웃이 바쁘게 움직이네요.]
[일단은 배트를 눕히는 한유민.]
[기습번트에 이은 보내기 번트인가요? 그런 것치고는 아랫손 위치가 살짝 애매합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투수로서는 타자가 작정하고 배트를 짧게 잡는지, 아니면 슬래시까지 염두에 둔 그립인지를 잘 파악해야 해요.]
[곧바로 강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위원님께서는 그렇게 보시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