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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46장
47장
48장
49장
50장
46장


직접적인 위협이 없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할지 싶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유대인들이 애써 끼어들어 봐야 큰 타격이 없었다.
기껏해야 출시 시기를 미루는 정도의 영향밖에 주지 못한다.

[다음 달이면 통신사와 협의를 마무리하고 신제품을 내놓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건은 최대한 생산하는 중이겠지.”

이미 1,000만 대를 생산해 놓고 한국 공장들은 추가로 열심히 제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최종 목표는 2,500만 대였다.
물건이 남을 수도 있지만 남으면 폐기하면 된다.
제품명은 미리 정해진 대로 아이폰이었다.
잡스가 정해놓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생산 중인 기존 제품들의 이름들과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이름을 바꾸지 못했다.
한국 공장에서 조립된 아이폰들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운송되는 중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얼마나 팔릴까?

* * *

퇴근하려는 내게 정말 달갑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 만나자는 걸 거절했는데도 직접 찾아온 걸 보면 어지간히 끈질겼다.
찾아온 사람은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사무총장 잭 라빈이었다.
AIPAC는 1953년에 만들어진 로비 단체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2만 명이 넘는 핵심 지지자와 30만의 회원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힘을 가진 로비 단체였다.
미 하원 의원 선거구 435개에 모두 사무실을 마련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으로 미국을 막후에서 주무르는 단체였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쿠퍼티노의 사무실까지 찾아온 정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외모부터 기름기가 흐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근에 번거로운 일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하는 꼴이 가소로웠다.

“당신들 짓이잖소.”
“그럴 리가요. 통신 카르텔과 우리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잭은 통신 카르텔과 자신들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듯 뻔뻔한 얼굴을 내밀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내 대답도 차가워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겁 없는 모기 새끼들이 윙윙거려서 귀찮게 굴기는 했습니다. 그래, 크게 반기지도 않는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내 눈에 비친 이놈들은 즉, 이스라엘 관련자들은 하나같이 모기나 거머리였다.
덩치 큰 미국의 등에 빨대를 꽂고 거침없이 빨아대는.
옛날 국왕들이 유대인들을 탄압한 게 이해가 됐다.
이놈들에게 힘을 쥐여주면 히틀러보다 더한 짓도 서슴없이 할 놈들이었다.
자신들을 모기에 비유해서인지 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스터 조, 앞으로는 행동에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방문한 용건을 말하지요.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위한 학생연합(SJP)에 하는 자금 지원을 당장 중단하시오.”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위한 학생연합(SJP)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시작된 반전 단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멈추고 평화 협상을 체결하라 촉구하는 대표적인 반이스라엘 단체였다.
단체가 만들어지려면 돈이 필요하고 실제로 상당한 자금이 소모됐다. 그들을 지원하는 가장 큰 자금줄은 나였다. 드러나지 않게 조심했는데도 어떻게 알아냈는지 몰라도 역시 보통 놈들은 아니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가볍게 코웃음을 쳐주었다.

“내가 지원하고 싶은 단체가 있으면 자금 지원을 하는 거요. 그렇게 내 지원이 불만이면 나를 막아보던지.”
“정말 이럴 거요?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고도 미국에서 사업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소!”

핏대가 솟아오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유대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로비는 OK.
하지만 이놈들은 지금 도를 넘어섰다.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오히려 내가 나서면 당신들의 핵심 회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그쪽은 내가 아니라 IS나 아마스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말에 라빈이 주춤했다. 당면한 이스라엘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였다.
거기에 내 무지막지한 금전 공격에 AIPAC 회원들이 노출되는 건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라빈은 끝없이 나를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하려 했다.
반유대 단체에 대한 지원을 멈추면 투자 은행을 통해 지원을 해주겠다. 한국에 대한 군사 지원도 강화하겠다느니 온갖 사탕발림이 섞인 당근을 내밀었지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정계를 장악하고는 미군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용병처럼 부려 먹는 중이었다. 내가 그런 꼴은 절대 보지 못하지.
어느 곳에서나 극단주의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지원하는 단체들은 어디까지나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촉구하는 단체들이었다.
반이스라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전쟁에 미쳐가는 반이스라엘 정부라면 모를까.
이스라엘은 95년에 중동 평화 협상을 주도하던 라빈 총리가 극단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한 이후로 점점 극단주의자들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런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하레디들이 존재했다.
이스라엘 종파 가운데서도 최고의 극단주의자들인 하레디는 높은 출산율로 유명했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4만 정도로 추정되던 하레디의 인구수는 벌써 80만에 가까웠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수 때문에 벌써 이스라엘인 가운데 10%가 하레디였다.
투표권을 가진 하레디들은 똘똘 뭉쳐서 극단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건국 초와 다르게 이스라엘은 점점 세금도 내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는 하레디의 손에 좌우되는 나라로 바뀌었다.
침을 튀기며 내가 반유대단체에 지원을 멈추라는 설득하는 잭의 말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를 내며 싸우는 것도 아니라 그냥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하는 내 시큰둥한 반응에 지쳤는지 잭은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화가 난 얼굴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잭의 뒷모습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내가 지금 계획하는 걸 알면 뒤로 넘어가겠군.
다음 의원 선거에선 선거구마다 유대인의 개노릇을 하는 정치인들을 퇴출하라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참이었다.
친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싹 물갈이된 다음에도 지금처럼 큰소리를 칠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지원하는 단체는 학생 연합만 아니라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VP)란 온건주의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난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 단지 강경 극우 유대인들을 경멸하는 입장이었다.
유대인들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타인의 피로 얼룩진 권리는 존중해 줄 수가 없었다.
가진 건 돈밖에 없으니 극우 강경파에 대한 공격 실탄은 충분했다.
어디까지나 내 목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경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극우화를 막는 것이었다.

* * *

잭 라빈 같이 속이 시커먼 놈들을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더러웠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 찾아온 놈 때문에 쓸데없는 시간을 끌었다.
계획했던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 더 기분이 더러웠다.
본사를 나서자, 외부에서 대기하던 경호팀이 합류했다.
한국 경호팀은 충성심은 믿을만하지만 낯선 타국인 미국에서는 능력에 의문 부호가 붙었다. 여러 차례 훈련을 거듭한 결과 미국이나 영국에 머물 때는 새로운 경호팀이 필요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고용한 팀이 34인으로 구성된 프랭키 팀이 2교대로 번갈아 가며 근무 중이었다.
영국의 가장 정예 특수부대인 SAS(Special Airborne Service)에서 복무했으며 세계적인 보안 회사 G4S에서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한 최고 보안 책임자인 프랭크 월터(Frank Walter)였기에 믿을 만했다.
걱정했던 신분 문제도 이리엘이 검증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프랭키, 경호 일은 할 만해요?”
“하하, 여기 같은 곳이 또 어디 있습니까.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점점 능숙해질 겁니다.”

보기에 차갑고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프랭키는 노련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부자를 경호하는 일이라 조금 따분하기는 했지만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범죄자들을 경호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범죄자들을 경호하기 싫지만, 경호 회사의 업무란에 자기 마음대로 고객을 고를 수가 없다.

차를 타고 경호팀과 함께 퇴근길에 나섰다.
마침 시간이 맞아서인지 도로는 한적했다.
한동안 미국을 방문하지 않아 미국 지역의 경호 팀장 프랭키와 그동안 크게 친분을 쌓을 기회에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이용해 이야기를 해 볼 생각으로 길게 대화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가 보였다.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이리엘의 경고가 내렸다.

[마스터 공격입니다.]

경고와 동시에 적의 로켓이 날아들었다.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부근에서 로켓 공격이라니! 어지간히도 간이 큰 놈들이었다. 저 멀리 대형 트럭이 여러 대 대기하는 걸 보니 갑작스러운 공격이 아니라 미리 잘 준비된 암살 시도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내 표정을 보더니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프랭키도 얼굴이 변했다.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이게!”
“암살 시도. 프랭키 달리는 차의 속도를 줄여요.”
“아니, 속도를 높여야…….”

늦추면 표적이 될 뿐이라 최대한 빠르게 현장에서 벗어나는 게 기존 경호 매뉴얼이지만 WD의 경호 매뉴얼은 달랐다.
로켓이 날아온 방향을 보면 적들이 숲 사이에 숨어서 로켓으로 선제 공격을 날린 것이다.

“이리엘, 차량 멈춰.”

내 명령이 떨어지자, 차량 속도가 급하게 낮아지더니 차가 멈추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