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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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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
45장
41장


예기치 못하게 머리를 세차게 두드리는 말이었다.
하긴 나라고 해도 좋은 자리에 넣어주지 않을 것 같긴 했다. 내가 IT에 투자한 회사가 한두 곳이어야지.
애플을 장악하고 스티브를 잘라버리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내 악명이 턱없이 올라갔다.
사원을 뽑을 때도 애플은 일단 거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봐야 회사에는 타격이 없었고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똑똑하다고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을 모아놔 봐야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이리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라. 그 자식들은 그런 일이 있으면 말해야지. 너한테 하소연이나 하고.”
“형이 연락이 안 된다는데. 해봐도 없는 번호라고 뜨고. 그래서 형이 자기를 피하나 생각하는 거지.”
“…….”

하도 잡다한 곳에서 오는 연락이 많아서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꾸다 보니 생기는 일이었다.

“알았다 상기 번호가 어떻게 되냐? 내가 연락을 해 봐야겠네.”
“그래, 얼마 되지도 않은 사촌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그럼 그럼.”

동생 녀석에게 듣기에는 아니꼬운 말이었다.
그냥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형,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은 힘들 것 같지. 걔네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러기는 밴딩이 같은 놈들 속을 누가 알겠냐. 자기들이 피해 보지 않을 것 같은 곳들 위주로 수입을 막을 거 같긴 하다. 그중에 크기가 제일 큰 게 게임이지.”

영원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우리 회사 작년 매출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왔잖아.”
“그건 포기해야지. 아깝기는 하지만 어쩌겠냐. 회사 직원이 전부 몇이나 되냐?”
“글쎄, 정확하게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800명이 조금 넘을걸.”
“내가 넘길 때만 해도 100명이 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엄청나게도 많이 뽑았다.”
“중국에서 계속 잘나갈 줄 알았으니까 그렇지. 이럴 줄 알았나.”

전혀 몰랐다는 게 더 문제다 이 녀석아.

“전쟁이 터지면서 위기감 같은 걸 못 느꼈냐?”

비밀 유지 때문에 말해주지 못했지만, 위기 상황이면 대처방안도 만들어야지.

“위기감? 어떤 위기감? 남북한이 전쟁하는데 중국하고 무슨 상관이야? 회사 내부적으로도 불안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큰 대책 없이 넘어갔는데. 아버지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하고.”
“…….”

작은아버지나 사촌 동생이나 하나같이 경영 감각이 없었다.
전쟁이 터지면 어떤 후폭풍이 올지를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경영자로서의 올바른 자세 아닌가.
골치가 지끈거렸다.
이 맹탕들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만든 게임을 보니까 나름대로 개발 능력은 있지만
아무래도 경영 담당을 따로 하나 뽑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그나마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우리들 제분은 우리들 식품의 자회사였다가 할아버지가 작은아버지에게 넘겨준 회사다. 아무리 봐도 사업 감각이 없는 작은 아들에게 다른 회사를 물려줘 봐야 날려버릴 것 같아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들 식품이 중국 시장에서 날개를 달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500억이던 매출이 이젠 4,500억을 훌쩍 넘었다.
밀맥주라는 신시장도 개척하면서 매출 이익률도 올라갔다.
작은아버지를 대신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작은어머니 이영실 여사였다.
젊을 때부터 집안일보다는 회사 일을 더 좋아하는 성격이라 회사 경영을 잡음 없이 아주 잘했다.
거칠고 보수적인 제분 업계에서도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즉, 경영 전문가로 제격이라는 의미다.

“왔니?”

회사는 작고 아담했다.

“조용하네요.”
“제분 회사 일이 그렇지 뭐. 급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 너 온 김에 차나 한잔 같이 마시자.”

명절날 한복 입은 모습만 봐서 그런지 정장을 한 작은 어머니의 모습이 낯설었다.
작은어머니와 가볍게 차 한 잔을 같이했다.

“정연이는 항상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니. 집에도 연락 자주 하지 않는다면서 너희 엄마가 얼마나 네 연락을 기다리는데.”

여기 와서도 듣는 타박이었다.

“제가 조금 무심하죠.”
“조금이 아니라 아주 무심하지. 그나저나 웬일이나 여기까지 다 오고. 너 중학생 때 한번 오고는 처음인 거 아니?”
“그런가요?”
“그래, 아예 잊어버렸나 했다.”
“…….”

지분 조정이 끝난 회사를 관심 가져 봐야 뭐하겠나.

“그래도 이리엘 투자에서 때마다 연락이 와서 곡물 가격 예측을 듣고 있다. 아주 정확하더라. 큰 도움이 됐어.”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쩐 일이냐.”
“이번 전쟁 때문에 중국이 보복 중인 거는 아시죠?”
“나도 듣기는 했다. 문화 시장을 막는 중이라고.”
“한중 관계 때문에 아직 크게 보도가 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막힌 시장은 풀리지 않을 겁니다.”
“……어휴 어쩌니. 그러면 두꺼비도 문제가 생기는 거 아냐?”
“두꺼비는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

상해방이건 공청단이건 상관없이 지금도 물량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중이었다.
큰 덩어리들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상해방이지만.

“그건 함부로 손을 못 댑니다. 중국에서도 엄청나게 힘센 사람들이 이권을 쥐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우리 매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은근히 걱정했지 뭐냐.”
“문제가 터진다고 해도 다른 곳의 매출이 늘어나는 중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북미 지역의 매출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불안한 기색이던 작은 어머니의 얼굴이 밝아졌다.
말을 안 해도 내심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작은 아버지 회사는 어떤가요?”
“네 작은아버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제분 회사 있을 때는 죽은 눈이더니만 생기가 넘쳐, 요즘에는 걱정이 많은 것 같더니 며칠 사이는 아주 팔팔하던데. 집에도 안 들어오고 회사에서 살더라. 영원이도 만족하는 중이고. 사실 제분 회사는 답답하잖니.”
“그러면 아예 작은어머니가 게임 회사의 경영도 맡는 게 어떨까요? 제분 회사는 대주주로만 남고요.”

차를 마시던 작은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굳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게임사 경영을 맡으면서 좋아하는 작은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정확하게 게임사 경영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거죠.”

마시던 잔을 내려놓으면서 딸깍, 커피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작은어머니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윽고 여러 가지를 고민한 얼굴로 작은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물었거든. 그분이 아주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 남편하고 맺어줬다는 말은 들었지? 하여간 왜 그렇게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냐고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자기 작은아들이 많이 모자라는데 잘 보듬어 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셨었지. 그때는 내 조건이 참 많이 모자라서 웃어넘겼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참 맞는 말씀이었어.”

외관을 보면 차이가 크게 나는 결혼이었다.
아들은 미국 유명 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이었고 며느리 삼을 사람은 한국의 사립대학을 나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집안도 차이가 크게 나서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아내의 의견이 강해 그냥 따라주었다.

“할머니가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분, 아주 귀신이셨어. 네 할아버지한테도 그렇게 잘하셨고. 자식들에게도 아주 다정한 어머니셨지. 나한테는 친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단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분을 뵐 때면 너무 좋았거든.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 지금 너를 보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이럴 때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았다.

“하여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냐?”

그래서 내 생각을 풀어놓았다. 작은어머니가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