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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21장


이리엘과 함께 여러 가지 변수를 두고 장기적인 미래를 예측해 보니 지금처럼 가다가는 한국의 앞날이 캄캄했다.
내가 해양유전을 대규모로 개발하면서 미래가 많이 밝아졌지만, 아직도 주변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국방력을 강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한국 정부에서도 해마다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지만, 육군의 비율이 턱없이 높았다. 해군과 공군의 전력 강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전함과 항모, 전차와 자주포 전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하지만, 이걸 지켜낼 정치적인 힘이 필요했다.
국방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던져 주면 얼마나 기밀을 오래 지킬 수 있을까.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주변의 나라에 새어나갈 거라고 장담한다.

“신기술을 한국 정부에 넘기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밀이 유지될 거라고 보십니까? 제가 볼 때 반년 안에 미국으로 흘러가고 일 년 안에 일본과 중국으로 넘어갑니다.”

내 말에 부인할 수가 없는지 한참을 고민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힘이 없으니 네 말이 맞을 것 같구나.”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겁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썩은 물로 변한 기득권세력을 한바탕 걸러내야만 했다.
적당히 맑은 물을 만들어 줘야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강도와 사기꾼이 판치는 나라가 되면 다시 한번 망국으로 간다.
내 조국이 세계에 큰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는 못될망정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려면 내 목소리에 따라 움직일 정치세력을 키워야 했다.

“…….”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저를 좀 도와주세요. 이건 제 욕심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긍정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마.”

할아버지가 반쯤 넘어온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 * *

두꺼비 본사 사무실에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던 건물에 들어가려니까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들어가다가 건물 외관을 다시 한번 살폈다.
비어 있던 사장실에 들어가자 그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일간 신문을 읽었다.
소식을 들었는지 박성규 본부장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사장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보자마자 45도로 인사를 하는 박성규였다.

“뭘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그래요. 박 본부장 잘 지냈지요. 본사에는 문제가 없지요?”
“예,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도 본부장까지 M&A일로 바빠서 본사는 박 본부장이 혼자 지키고 있네요.”

영업본부를 담당하는 박 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사장 노릇을 하느라 바빴는지 얼굴이 홀쭉해졌다.

“조금만 더 수고해 줘요. 직제를 개편하면 일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가을에 대대적인 인사를 할 계획이었다.
직제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에 승진을 시켜 줘야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소주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직원 숫자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하, 사람들이 가을의 정기 인사이동 명령을 많이 기다립니다.”
“승진 예정자가 많으니 그럴 만하지요. 이번에 해외지사도 많이 늘린다면서요? 보고서를 보니까 해외지사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면서요.”
“해외 매출이 급등하면서 대응할 지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추가적으로 중국에 두 개, 러시아에 하나, 북미에 하나를 둘 계획입니다.”
“지금처럼 부장급이 아니라 원래 계획대로 이사급을 내보내세요. 기존에 나가 있는 지사장들도 직급을 올리도록 하고요.”
“그러면 너무 승진이 빠른 사람이 나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러시아 지사장처럼 말이죠. 그 사람 고참 과장으로 있다가 진급해서 나간 케이스죠?”
“그렇습니다. 부장으로 진급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또 진급시키기가 그렇습니다.”
“그럼 박 본부장은요? 인수전에 부장으로 있다가 벌써 전무급 본부장인데 진급이 빠르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귀에 안 들리던가요?”
“…….”

말문이 막혔는지 박 본부장이 입을 다물었다. 개구리가 올챙잇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잔소리 말고 이번에 대상자들 모두 진급시켜요. 박 본부장도 이번에 부사장 자리에 올라야죠.”

내 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나오자 박성규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도 이번에 진급합니까?”
“사실 하는 일을 보면 벌써 올려 줬어야 하는 데 그러면 더 이상 올라갈 데가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도 본부장은 어떻게 됩니까?”
“부시맥주를 인수하면 그쪽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곳으로 갈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메릴린치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겁니까?”
“골드만하고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먼저 뒤통수를 때렸으니 좋을 수가 없지요. 메릴린치를 빼면 남는 게 베어스턴스와 리먼 아닙니까. 이왕이면 아는 쪽과 거래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비용을 더 내고 덜 내고의 차이 정도였다.
4대 투자은행이라면 부시맥주 정도의 M&A는 혼자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이번 인수를 마치면 우리가 세계 제1의 주류기업이 되는 겁니까?”
“밀러맥주를 만드는 SAB, 인베브하고 경쟁을 해야 하지만 이쪽이 매출 규모가 더 클 겁니다.”
“필립 모리스가 작년에 SAB에 밀러를 팔았지요?”
“SAB가 자금이 부족해서 부시까지는 탐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인베브도 마찬가지고요. 박 본부장도 들어서 알겠지만, 부시 인수는 두꺼비가 북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입니다. 부시맥주의 기존판매망을 이용해서 북미에 두꺼비 소주를 판매할 거니까요. 또 세인트루이스 맥주 공장을 확장하고 인근 지역에 소주 공장을 지을 겁니다. 국내 소주 시장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잖아요. 해외를 공략해야죠.”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내수시장의 매출이나 수익은 이미 정체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영업조직에서 추가로 매출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북미시장의 공략에 성공하면 두꺼비 소주 매출이 전부 100억 달러를 넘습니다. 이익이 무려 80억 달러입니다.”
“전년도 부시맥주 매출이 115억 달러에 이익은 14억 달러였습니다. 내년부터는 매출은 둘이 서로 비슷해지는 거죠.”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골치 아픈 건 주류 관련 세금이었다.
두꺼비의 수익성이 월등한 건 중국과 러시아에 수출하면서 도매가격에 간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꺼비 소주의 소비자가격은 수출가보다 한참 높았다.
미국공장에서 만드는 두꺼비 생산량은 미국 조세의 영향을 받아 수익성이 많이 떨어진다.
20억 병짜리 미국 소주 공장을 만든 이후 추가되는 생산량은 국내공장에서 만들 계획이었다.

“소주 공장을 세인트루이스 짓는 건 부시맥주 합병을 허가받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미국 정부 내에서도 부시맥주가 우리 손에 넘어오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으니까요.”

밀러가 남아프리카에 본사를 둔 SAB에 넘어가고 남은 미국 맥주의 대명사인 부시마저 외국으로 넘어가는 걸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었다.
반대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부시맥주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소주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치안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도 치안이 개판이랍니다. 철강 도시였다가 몰락한 디트로이트보다도 엉망일걸요. 다행히 소주 공장을 지을 땅 부근은 그렇지 않다더군요. 도시를 먹여 살릴 산업이 없다 보니까 계속 몰락했지만, 우리가 들어가면 좋아지겠죠. 포트만 의원이 왜 힘을 쓰겠습니까.”

세인트루이스는 한때 철도와 수운의 중심지로 미국 4대 도시였지만 쇠락을 거듭해 도시 인구수가 30만까지 줄어들었다.
이번 M&A에 미주리 상원의원 해리 포트만이 정치적인 생명을 걸고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것은 몰락하는 도시를 되살릴 터닝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흑자기업인 두꺼비 소주 공장이 들어가면 최소 1,000명이 직접적으로 채용된다.
포트만 의원은 내가 부시맥주를 인수하고 추가로 다른 제조업 공장이 세인트루이스에 들어서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가진 기업 중에 세인트루이스에 공장을 지을만한 기업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해리 상원의원이 인수하기를 추천한 기업이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였다.
미국의 세 번째 자동차 기업이었던 크라이슬러는 다임러 벤츠와 잘못된 합병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는 중이었다.
이런 것까지 박본부장에게 말해 줄 수는 없고 그쪽은 홀딩스에서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벤츠 쪽에서 들어간 본전 생각이 나는지 높은 가격을 불러서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를 않았다.
급한 게 없어서 시간을 두고 논의할 생각이었다.
정 협상이 진척되지 않으면 국내 자동차 기업인 쌍용차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생산 공장의 규모가 작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차피 모두 다 뜯어고쳐야 해서 공장을 신설하면 그만이었다.

박 본부장이 나가자마자 이리엘과 자동차 회사인수를 의논했다.

“아무리 봐도 크라이슬러보다는 쌍용인수가 어째 더 나아 보인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미국 자동차회사를 인수해 봐야 노사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아예 작은 회사를 인수해서 공장을 짓는 게 낫다니까요.]
“모르겠다. 쌍용은 너무 규모가 작잖아.”
[새로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덤벼드는 게 편합니다.]
“끄응, 어째 네가 원하는 기업에 억지로 진출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는 건 필연입니다. 필연.]
“어째서? 그게 필연이라는 거냐?”
[현재로서는 자동차산업이 산업의 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반도체 기업도 좋지만, 연관 산업을 생각하면 자동차회사를 키우는 게 답입니다.]
“네 말은 제조업 인구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동차산업을 키워야 고용을 늘릴 수가 있습니다.]
“부품회사를 키우는 일도 만만치가 않잖아.”
[하나하나 키워 나가야죠. 부품회사를 키우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