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16장


베네릭에서 만든 최신형 능동형 중계기를 달고 모든 부품들을 조립하고 나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연료를 주입하고 나니 태양광 패널이 눈에 거슬렸다. 패널의 효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해 충분한 전력을 위성에 전달하지 못했다.
이것까지 손을 댈까 하다가 참았다.

“대충 작업이 마무리가 된 것 같군.”
[이번에 궤도에 올리는 예비 위성들의 수명이 적어도 20년은 될 겁니다.]

“나중에 올릴 위성들도 미리미리 준비해야겠어. 특히 태양광 패널의 효율을 올리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겠어.”
[태양광 패널은 따로 회사를 차려도 될 만큼 시장성이 있습니다. 석유값이 올라가면 가장 막강한 대체에너지로 각광받을 테니까요.]

“네 말대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면 대체에너지를 찾느라 난리가 나겠지.”
조지아까지 날아와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사흘 동안이나 매달린 끝에 인공위성을 개조했다.
[이번에 해고한 안톤 대신에 인공위성 설계 엔지니어로 하버스의 라울 멜린을 추천합니다.]
인물 검색을 마친 아리엘이 내게 스카우트할 사람을 추천했다.
안톤 인버스도 나쁜 엔지니어는 아니다.
경력도 나쁘지 않았고 다만 타이밍을 잘못 만나 늘어져 있다가 내게 호된 꼴을 당한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태만한 꼴은 못 보는 사람이거든.

“추가로 올릴 위성들은 처음부터 다목적위성으로 설계해야겠어. 지금처럼 통신 위성을 개조한다고 해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무게가 많이 나갈 텐데요. 발사 비용이 올라갈 겁니다.]

“올라가더라도 할 수 없지.”
나사에서 발사하는 우주선은 실을 용량에 제한이 있어서 무게에 따라 요금을 받는다.
요금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올라갈 것 같지만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처음 목적대로라면 지금 올리는 예비 위성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농작물 지대 감시나 자원탐사 말고도 군사적인 목적도 있잖아.”
[군사적인 목적이라면 어딜 감시한다는 소립니까?]

“말할 필요가 뭐 있어. 중국하고 북한이지. 여기 미국 놈들도 믿을 수 없으니 감시를 게을리할 수 없지.”
[아예 전 세계를 감시한다고 하시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전 세계가 감시대상이지. 지금은 긴장이 완화되었다지만 예전에는 언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몰라서 두려움에 떨었다면서.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전에는 지구가 망하든 말든 이라면서요.]

“나도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텐데 지구가 망하면 곤란하지 않겠냐. 늙어 죽기 전에 여길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위험도를 낮추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죠. 전쟁위험이나 자연재난을 대비하는 장비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어떤 이유로 지구가 망하는 과정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여하튼 2,115년에 지구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인류가 멸종을 걱정할 정도로 줄어들었으니까 꽤 험악한 일이 벌어진단 소리다.

“정용인 사장이 한바탕 청소를 했다고?”
WD조선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의 수주 물량도 30억 달러는 넘어섰고 특수선박인 드릴쉽과 FPSO에도 독보적인 기술진보를 보였다.
인수전에 3조에 불과하던 매출이 7조를 넘어섰다.
풀가동 되는 와중에도 그전에 쌓여 있던 적폐를 청소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 자체감사결과 적발된 29명을 해고하고 횡령금액이 큰 5명은 형사 고발했습니다.]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미리 알아서 처리해 버렸네. 조선업계에서 경력을 오래 쌓아서인지 조선업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인데.”
[조선 경영에 그만한 인재를 찾기도 힘듭니다. 두꺼비 F&B에서 강남에 5개의 대형빌딩을 계약했고 지방 대도시의 빌딩 매매도 끝냈습니다. HCRE 명의로 계약을 했습니다.]
HCRE는 내가 LA에 설립한 부동산 회사다.

“그럼 거기에 이번에 인수한 그린 보틀을 집어넣으면 되겠군. 전부 몇 개지?”
[서울에 8개, 지방에 12개의 빌딩을 매입했습니다.]

“진짜로 봄이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사업체를 정비해야겠어.”
[급한 건 여깁니다. 마스터가 인공위성 개조한다고 여기 있는 동안 에드워드 사장이 엄청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울트라의 출시준비가 대강 마무리되었답니다.]

“겨울에 에너지 드링크를 내놔도 팔릴까?”
[여름에 매출이 급증하는 스포츠 드링크와는 다르게 일 년 내내 팔리는 상품입니다. 겨울이라고 팔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이번에는 솔직하게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맛을 구현해내지 못해서 자신이 없었다.
[마스터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다하는 겁니까. 망하면 어떻습니까. 시장 크기도 코딱지만 한 대요.]
힘이 되기는커녕 힘이 빠지는 소리만 하는 인공지능이었다.
내가 창고에서 나오자 연락을 듣고 밀턴 사장이 달려왔다.

“바쁘지 않아요?”
“이게 제일 급한 일입니다. 인공위성 개조작업은 이제 끝이 난 겁니까?”
“대충은요.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다는 것까지 확인해야 마무리가 된 거죠.”
이미 이상이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회사의 매뉴얼에 따라 검사과정을 거쳐야 했다.
내가 안톤을 자르고 난 뒤에 느슨하던 회사 분위기가 많이 팽팽해졌다.
그동안은 보잉이 대주주였지만 주인 없는 회사처럼 굴러갔었다.

“검사 장비는 충분하죠?”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시작합시다.”
대기하고 있던 엔지니어들이 검사 장비를 들고 들어와서 내가 개조한 인공위성을 검수했다.
이미 인공위성 설계도는 사내에 뿌려두었다.

“중계기 문제없이 작동합니다.”
“위치제어기도 정상입니다.

“태양광 패널 정상입니다.”
“…….”
“…….”
끝없이 부품들을 하나하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테스트했다.
마지막으로 극저온에서 인공위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기능 점검이 끝이 났다.

“모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류상으로는 1.5배의 성능이 개선되었다고 나오는군요.”
“부품을 최신형으로 갈기만 했는데도 그 정도가 나오는 겁니다. 아마 실제로 작동해 보면 서류상 수치보다 더 좋은 성능이 나올 겁니다.”
회사를 인수한 대주주가 직접 나서서 다른 엔지니어의 도움 없이 인공위성을 만드는 것은 다시 보기 힘든 일이었다.

“이거 언제까지 우주에 올릴 수 있어요?”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발사예정일이 내년 초에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나사와 계약을 체결하면 원하는 궤도 부근까지 배달을 해 줄 겁니다. 계약을 서둘러야겠네요. 최근 들어서 우주에 올리고 싶어 하는 물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위성이죠?”
“위성도 있고 우주정거장까지 배달해야 하는 물건도 양이 많습니다.”
장기간 우주정거장에 머무르는 이들을 위한 물품배달이 왕복선의 주 임무였다.
인공위성을 올리는 사업은 어디까지나 나사의 부업이었다.
계약을 위해서 일정을 잡았다. 미리 약속보다 빠르게 우주센터를 방문했다.
발사되기 전에 직접 우주왕복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이리듐 통신의 엔지니어로 왕복선 투어를 신청했다.
외부인에게 우주왕복선을 잘 공개하지 않지만 앞으로 발사할 인공위성이 이리듐 통신의 인공위성 담당이란 직책이 잘 먹혀들었다. 궤도선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만 본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투어에 들어갔다.
가이드와 함께 궤도선을 보관하는 곳까지 찾아가 직접 본 동체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가이드가 잠시 전화가 와서 자리를 비웠을 때 이리엘에게 물었다.

“저게 제대로 뜨기는 하냐? 발사하다가 터질 것 같은데? 동체에 피로가 누적돼서 충격받으면 외부 타일이 파손될 것 같아.”
우주왕복선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커다란 외부탱크와 두 개의 고체 로켓 부스터에 궤도선이 매달려 일정고도까지 올라가서 분리되는 지금의 발사 방식은 너무 위험했다.
[간단하고 원시적이지만 무려 28회의 우주 비행을 성공한 기체입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네. 저거 터져도 조만간에 터진다. 그 정도로 대기권진입을 했으면 타일을 새로 제작해서 붙여야지.”
[파손된 타일을 정비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미흡해 보이기는 하네요. 갈수록 우주 관련 예산이 줄어드니까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적당히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궤도선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 아주 좋지 않았다. 뱃속에 싸하면서 뒷골이 지끈거렸다.
발사 방식도 문제가 있지만, 선체를 구성하는 외벽도 아직 제대로 만들지 못한 상태.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우주선의 선체에 가해지는 고열에 충분히 버틸 특수강 기술이 없어서 타일을 덕지덕지 붙였다.
저런 방식은 외부에서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파손되기 일쑤다.
전화를 받고 돌아온 가이드에게 물었다.

“저기 배 부분에 붙어 있는 게 우주왕복선 내열 시스템인가요?”
“검은색인 고온 재사용 표면 단열재(High-temperature reusable surface insulation, HRSI)는 왕복선 하부에 2만 장이 붙어있습니다. 초고 2300도까지 버티게 해주는 하이테크 제품입니다. 상부에는 극저온을 견딜 수 있게 흰색 타일을 깔았습니다.”
입으로는 하이테크라고 자랑하지만 내가 볼 때는 로테크였다. 그것도 한참 로테크.
진입 각도에 따라 대기권에 들어올 때 최고 25,000도의 열이 가해진다. 대기권 진입 각도를 잘못 맞추면 왕복선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그냥 터진다는 소리다.

“진입 각도를 맞추지 못하면 문제가 있겠네요.”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주에서 돌아오면서 진입 각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장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