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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1장


원유시추에 성공했지만, 뒤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모두 모인 선장실에서 켄너와 클락이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결과를 알고 지켜보던 나도 손이 떨렸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헤르가 파산 위기를 겪고 내 손에 넘어온 건 수십 차례의 시추 실패 때문이다.
회사의 주인이자 탐사 팀장인 켄너가 이곳에 석유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시추를 거듭한 결과였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고 해도 애가 타게 찾던 원유를 드디어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다.
흥분을 진정시키는 최고의 명약이 그들에게 쥐어졌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음으로 진행해야 할 일을 의논했다.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 다시 한번 검증을 받아야 하고 또 메이저와도 지분 매각 협상도 진행해야 합니다.”
“아마도 대상은 엑슨이 되겠죠.”

원유가 나오는 칸타렐 지역과 거리적으로 가까운 텍사스에 본사를 둔 엑슨이 힘을 쓰기 편했다. 추정매장량이 20억 배럴이지만 중요한 건 캐낼 수 있는 가채매장량이 얼마인지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평균 35%가 고작이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기술이 올라가서 절반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기술이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가진 기술력이라면 거의 모든 매장량을 뽑아 올리겠지만 아직 기술을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 더 많은 유전을 확보한 이후에 기술을 써먹어야지.

“가채매장량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네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가채매장량이 터무니없이 줄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지형적으로 원유가 한곳에 모여서 추가적인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네요.”
“해저 지하 지형에 원유가 묻힌 곳이 산재해 있다면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이건 한곳에 모여 있어서 추가적으로 유정을 뚫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원유 탐사전문가인 클락이 하는 말이라 안심이 되었는지 켄너 사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돈벼락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켄너가 월급 사장이라지만, 그가 가진 회사지분도 3%가 넘었다.
20억 배럴의 절반이 탐사와 시추 권한을 가진 헤르의 지분이다.

“엑슨 정도면 멕시코 정부의 압력을 막기에 좋은 방패지.”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해도 메이저 석유회사의 힘을 막강했다. 계약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발견한 원유를 노릴 것이 분명한 멕시코 정부와 힘을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아깝기는 하지만 이번 유전은 멕시코 정부와 한번 부딪혀야 해결될 문제니 어쩔 수 없지. 지분을 헐값에 넘기지는 않을 거야.”

”지분 매각 협상은 켄너 사장에게 믿고 맡기겠습니다. 중요한 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서해안 3광구 탐사 말이지요. 전에 듣기로는 시추 가능성이 낮다고 들었습니다. 전에도 여러 회사에서 찾아봤지만 쓸 만한 광구를 찾지 못했다고 말이죠.”

걱정이 앞서는 켄너 사장의 말에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보다 가능성이 클 겁니다. 이미 기초탐사를 진행했는데 석유가 나올만한 유망한 지역을 몇 개 점찍어 두었습니다.”
“유망한 지역이라면 석유가 나올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매장량이 얼마인지 확신이 안 서지만 나오기는 할 겁니다.”
“한국에서 유전개발이라니, 성공하면 새로운 기록을 쓰는 거로군요.”
“한국 정부에서도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발견하지 못했죠.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한국은 자원볼모지란 소리를 듣는 나라였다.
한반도에 자원매장량은 적지 않지만 전부 북부지역에 있다는 게 문제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한 쪽은 북쪽에 비해 지하자원 매장량이 현격하게 적었다.
이미 쓰임새가 사장되어가는 석탄을 제외하면 지하자원이라 할 게 나오지 않는 나라였다.
흥분이 가라앉고 냉정을 되찾은 켄너가 술병을 유심히 보았다.

“이건 무슨 술인데 맛이 끝내주네요. 성공의 맛이라서 그런가.”

내가 들고 온 마에흐르트를 마신 켄너가 감탄했다.

“내가 가진 주류회사에서 만드는 술입니다. 소수에게만 파는 귀한 술이죠.”
“맛이 너무 좋은데요? 이걸 내가 왜 몰랐을까요?”

나름 술을 좋아해서 여기저기서 비싼 술을 마셨지만 내가 준 술은 켄너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종류의 술이다.

“술값이 1만 달러에요. 그래도 공장도가가.”
“이게요?”
“생산량이 적어서 중국과 러시아에만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켄너 사장님이 이걸 마신 최초의 미국인이네요.”
“이게 그 술입니까?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이요?”
“1만 달러의 위스키라고, 러시아에서 마셔 본 사람이 하나같이 극찬을 했다고 말이죠.”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은 분위기를 바꾸는 힘을 가진 모양이다.
귀한 술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마시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시추에 성공하면 마시려고 세 병을 들고 왔는데 붙은 관세가 엄청났다.

“나머지는 두 분에게 드리죠. 성공보수라고 생각하세요.”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클락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술이라면 성공보수로 아주 값진 선물이네요.”
“물론 추가적인 보상도 나갈 겁니다.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지불해야죠.”

대대적인 포상을 약속하자 켄너와 클락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주가 짠돌이면 직원들도 흥을 내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큰손인지를 모르니 두 사람이 당연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지분을 가진 거랑 보너스를 받는 것은 기분이 다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추 성공의 기쁨을 삭히는데 클락이 물었다.

“3광구 말입니다.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되는 겁니까?”
“99%는 확실해요. 기초적인 조사에서 발견한 지역의 지하구조가 아주 좋다고 나왔거든요. 덮개암도 충실하고 지하 공간도 넓어서 모여 있는 석유의 양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답니다.”
“그래요? 기대가 되네요.”

처음에는 없으면 만들지 하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만든 탐사 도구로 진행된 기초조사에서 아주 희망적인 관측결과가 나온 것이다. 제대로 된 결과는 탐사선인 파이어니어호를 끌고 조사해 봐야 하지만 시작하기 전부터 조짐이 좋았다.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뜨거운 환대가 나를 기다렸다.
국내에서 실패하고 해외로 자원개발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내가 첫 번째 해외자원개발의 성공사례였다.
멕시코 정부의 간섭을 걱정해서 대외적으로 크게 떠들지는 않아도 자원개발의 성공이라고 내부적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귀빈실에서 마주한 오경제수석이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반갑네, 대통령께서 직접 맞이하겠다고 공항에 나오시고 싶어 하셨어. 정말 큰일을 했네. 자네가 외부적으로 떠들썩하게 행사를 벌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으면 가두행진이라도 하려고 했어.”

대표로 마중을 내온 경제수석이 대통령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침이 마르게 내뱉었다.

“그런데 어째서 원유개발에 성공한 걸 비밀로 하라고 하는 건가?”
“멕시코는 기본적으로 유전이 국유입니다. 법에 그렇게 적혀있죠.”
“끄응, 그러면 이번 유전이 불법이란 소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 자원탐사회사가 탐사권을 멕시코 정부에 돈을 주고 산 거니까요. 여러 가지로 복잡하단 소리죠. 우리가 시끄럽게 자원개발 성공을 떠들면 불편해할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자네 말이 이해가 되네만 정말 아쉽군.”

오경제수석은 정부의 치적 하나가 소리 없이 묻히는 걸 안타까워했다.

“그것보다는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서해안에서 석유탐사작업을 했는데 유징이 발견됐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추가적으로 정밀탐사를 해봐야 정확한 매장량을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석유가 나오는 건 확실합니다.”
“얼마나? 아니, 아니 정밀탐사를 해 봐야 한다고 했지. 내가 엄청난 말을 들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군.”
“여기 물부터 드시죠.”

너무 엄청난 말을 들은 충격 때문에 오수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물론 정확한 규모는 말하기 어렵지만 보통 큰 규모는 아니랍니다. 시추공을 박아 봐야겠지만 적어도 100억 배럴 이상 규모의 유전인 것 같답니다.”

내 말에 오수석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물을 거듭 들이켰다.

“미치겠군. 자네 말을 들으니까 가슴이 뛰어서 죽겠어.”

오수석이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서 정신을 수습했다.

“언제면 정확한 정보를 들을 수 있겠나?”
“한 달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나 걸린다고?”
“카리브해에 있는 자원 탐사선을 이곳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시추선도 빌려야 하는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서해까지 옮겨오고 또 탐사작업을 하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그 정도가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