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0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0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0
강성현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0권
차례
Chapter 01. 반(反) 카멜 연합군
Chapter 02. 반갑다
Chapter 03. 선택
Chapter 04. 광기 인형 제작 기술자
Chapter 05. 위기
Chapter 06. 헌트다
Chapter 07. 토바른의 방패
Chapter 08. 망자의 단검
Chapter 09. 리옹 마트레인
Chapter 10. 공간 포탈
Chapter 11. 토바른의 주인
Chapter 12. 검은 나비 - 1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0권
Chapter 01. 반(反) 카멜 연합군
군주 도르네프의 긴급 지시가 베네타에 쫙 퍼졌다.
모든 성문이 이틀 안으로 폐쇄될 테니 떠날 이들은 떠나고 남을 이들은 남으라는 얘기였다.
이종족의 도시답게 베네타는 타 영지와 달리 이주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라 일부는 성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전쟁이 다시 벌어진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틀의 시간.
열린 성문으로 들어오려는 인파와 나가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엄청난 인파가 성문에 뒤섞였다.
성문 경비대는 혼란에 빠진 성문 질서를 유지하는데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검문은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거기 비켜!”
“빨리 지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성문을 통제하는 병사들 사이로 일련의 마차 무리가 성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다른 날이면 마차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검문을 시행하지만, 지금은 상단주의 신분만 확인하고 바로 통과되었다.
잠시 후, 상단 행렬이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이래서 오늘 안으로 진입하라고 한 건가?”
행렬 후미에서 따라오던 마차의 창가가 슬쩍 열리더니, 틈 사이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철의 기사, 하크만 올레브였다.
그는 마차에 탄 수하들을 바라봤다. 모두 마법 갑주를 걸친 완벽한 무장 상태였다.
이대로 그냥 통과해도 된다는 서신이 와서 의아했는데,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검문조차 할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
카멜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군.”
카멜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좀이 쑤셔서 혼났다. 손 닿을 거리에 아름다운 엘프들이 있으니 마음이 달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했다.
다행히 인내심이 끊기기 전에 카멜이 사람을 보내왔다.
그는 마부를 바라봤다.
잠시 후, 마부는 고삐를 움직여 자연스레 행렬에서 떨어져 나와 으슥한 골목으로 진입했다.
대낮인데도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골목이었다. 잠시 후,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마차가 멈춰 섰을 때, 그 앞에 로브로 얼굴을 가린 이가 마차를 마중 나왔다.
문이 열리고, 그는 하크만 앞에 고개를 숙였다.
“둥지의 사람입니다.”
하크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이 부리는 주술사 집단, 주술사들의 둥지에 대해서 언질을 받았던 터라, 그는 수하들과 함께 주술사가 안내하는 건물로 이동했다.
방에 도착하자 주술사는 하크만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정보를 살핀 하크만은 눈을 빛냈다.
“제법이군.”
그가 보고 있는 정보는 샤르바딘과 넬라의 위치, 행동반경, 그리고 호위 구성 목록이었다.
상인들을 통해 정보를 취합했는데 며칠 단위로 세세히 정보가 적혀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중 내 목표는?”
“샤르바딘, 베네타의 안주인입니다.”
“좋아. 나도 이 엘프가 마음에 들었거든.”
“대신 높은 확률로 도르네프와 부딪치게 될 겁니다.”
“흥, 그딴 드워프 따위가 내 상대가 되리라 생각하나? 헬 그라임에서 명성을 떨치는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알려주지.”
하크만은 넬라의 자료를 내려놓고 샤르바딘의 자료를 미소를 띤 채 바라봤다.
번들거리는 눈동자.
이미 그녀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가져오셨습니까?”
“아, 이거 말인가?”
하크만이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빼자 작은 상자가 거짓말처럼 잡혀 있었다.
상자 안을 살핀 주술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새하얀 구체.
베네타에게 절망을 선물할 광역 폭탄, 테레모어가 맞았다.
고개를 끄덕인 주술사는 폭탄을 하크만에게 다시 건넸다.
“작전은 사흘 뒤입니다.”
“장소는?”
“북문입니다. 신호가 떨어지면 북문에 폭탄을 터트리시면 됩니다.”
“그 이후엔?”
“사르바딘을 사냥하러 가십시오. 그 이후 일은…….”
주술사는 하크만 곁을 지키는 적기사에게 잠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 * *
유령의 숲 바깥과 이어진 작은 갈대숲.
멍―!
그 갈대숲 사이로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스윽― 스윽― 갈대들이 마찰을 일으키며 흔들리더니 틈 사이로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당히 가슴을 펴고 선두에서 나타난 귀여운 개 한 마리.
코를 킁킁거리며 갈대숲을 나오더니 이내 벌러덩 드러누웠다.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온 이들은 뒤바뀐 풍경을 둘러보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내 경우엔 불신과 놀람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뭐가 말도 안 돼. 떡하니 숲을 나왔구만.”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는 나타샤를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도르네프가 코르디의 안내로 숲을 나올 때 최대 속도로 이동해도 사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타샤가 하루 만에 숲을 주파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 때, 구라치지 말라고 큰소리를 땅땅 쳐놨는데, 정말 하루 만에 유령의 숲에서 벗어났다.
“파수꾼은 유령들이 우글거리는 장소를 가로지를 수 있거든.”
“그건 오르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파수꾼과 유령들은 먹이사슬 관계야. 파수꾼보다 뛰어날 순 없어. 어쨌든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거다?”
“빌어먹을.”
자유 대련권 다섯 장이 그녀의 이름으로 적립된 순간이었다.
그녀가 흐흐 웃더니 주먹을 주물럭거렸다.
“오늘부터 한 장씩 써볼까나?”
“주먹 좀 작작 푸시죠? 망할 주먹다짐, 질리지도 않습니까?”
“전력으로 때려도 살아있는 상대를 만나는 게 어디 쉬운지 알아?”
“어디 한 번 죽도록 맞아봐야 하는데.”
“해보든가.”
나타샤의 도발에 난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저 무식한 마녀에게 버티는 게 한계였기 때문이다. 아니, 버티는 게 아니라 내 맷집이 끝내주는 건가?
하여튼, 아주 좆같았다.
케로스가 헥헥헥 혀를 내밀고 다가와 물끄러미 날 올려다봤다. 포상을 원하는 눈빛. 그 모습에 난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 개눔이 시키가……!”
“머, 멍!”
“그런 뜻으로 고기를 준 게 아니잖아! 시간을 끌었어야지!”
신명의 저주를 받고 레토가 잠들어 버린 상태라 케로스와의 의사소통에 불협화음이 생겼다.
내 뜻을 반대로 이해한 케로스는 가장 최단 거리로 숲을 주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케로스의 두 볼을 쭉 땡기고 있으니 록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시간을 번 것이니 좋은 거 아닌가?”
“뭐, 그렇긴 하죠.”
“서두른다면 오늘 밤에 성곽에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그럴걸요?”
“서두르지.”
엘레토르 성곽에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까. 서둘러 움직이는 록터를 보며 난 주머니 안에서 고기를 꺼내 케로스에게 던졌다.
미움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내기에선 졌지만, 결과가 좋으니 아쉬운 대로 넘어가기로 했다.
대련 다섯 번이라, 숲을 나오면 저 주먹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당분간 괴로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저기야! 성곽이 콩알처럼 보여!”
하늘을 올려다보니 릴리가 빗자루를 탄 채 떠 있었다.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보니, 엘레토르 성곽이 보이는 모양인데, 콩알이라 표현했으니 까마득한 거리일 것이다.
일반인에겐 며칠이 걸리는 거리겠지만, 이곳에 평범한 이는 없었다.
릴리가 손을 흔들며 숲 위로 사라지자, 우리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려고 하는데 눈앞에 익숙한 실루엣에 잠시 멈춰 섰다.
“시체인가?”
“아뇨. 칼인데요?”
“이 대머리 새끼는 왜 여기 누워있어?”
“기절한 것 같네요.”
갈대숲 근처에 칼이 흙투성이가 된 채 기절해 있었다. 꼴이 마치 진흙이 비벼진 주꾸미를 닮았다.
하루 만에 유령의 숲을 벗어났더니, 숲에서 튕겨 나온 기절한 칼과 마주하게 됐다.
땅굴 이동의 후유증 같은데…….
설마, 사무엘도 이런 꼴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