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09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09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09
강성현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09권
차례
Chapter 01. 천년 나무
Chapter 02. 위시(Wish)
Chapter 03. 피를 마시는 잔
Chapter 04. 지원군
Chapter 05. 새로운 그림
Chapter 06. 망자의 열매
Chapter 07. 내 제자가 될래?
Chapter 08. 증명
Chapter 09. 콴루
Chapter 10. 죽은 척
Chapter 11. 예측
Chapter 12. 영체술
Chapter 13. 비밀
Chapter 14. 세계수의 씨앗
Chapter 15. 세 개의 굴
Chapter 16. 낙인 가루
Chapter 17. 대계(大計)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09권
Chapter 01. 천년 나무
“뭔 개소리야?”
나타샤가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난 당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요? 안 됩니까?”
“그러니까. 천년 나무를 조사할 때까지 곁에서 네놈 꼬봉짓이나 하라고?”
“안내를 부탁한 것이 왜 꼬봉짓이 됩니까?”
“귀찮아. 대가도 없고.”
“저 ‘인간’입니다만? 신목(神木)의 중심부까지 접근할 건데, 따로 감시는 안 할 겁니까? 숲을 지키는 오르타가?”
“장로님이 접근을 허락한 이유가 있겠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 네놈 뼈마디는 내가 모조리 부러트릴 거다.”
“부러트리든 말든, 그럼 저 혼자 갑니다? 부탁을 드렸는데 안내를 거절한 건 나타샤님이십니다? 그쵸?”
“…자, 잠깐!”
미련 없이 등을 돌리자, 그녀는 다급히 아서를 불러세웠다.
큰 이유는 없었다.
왠지 저 녀석의 부탁을 거절하면 자신이 잘못하는 분위기라 부른 것이다.
“안 갈 겁니까?”
“칫! 따라와.”
대화에 말린 듯한 기분이었는데, 무시하기엔 또 찝찝해서 결국 나타샤는 아서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실력을 확인해보려고 찾아왔더니 졸지에 안내자 역을 맡게 됐다.
나타샤는 챙모자를 눌러쓰곤 탄식을 내뱉었다.
“왜 조사를 인간인 너한테 부탁한 거지?”
“마녀의 시선이 아닌 제삼자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알고 싶었던 게 아니실까요?”
“그래서 도착하면 뭐부터 할 건데?”
“샅샅이 벗겨내야죠.”
“…벗겨?”
“아니, 당신 말고요. 천년 나무를 말하는 겁니다.”
“나무에 벗길 게 뭐가 있다고?”
“비밀이요. 장로님이 비밀을 꼭 벗겨달라고 부탁했거든요.”
“크흠, 나도 들어서 알아.”
알아?
근데 왜 로브로 가슴을 여미며 날 경계하는 건데?
멋대로 해석하고 오해하는 건 릴리와 똑 닮았다. 아니, 릴리가 그녀를 닮은 건가? 딱 봐도 두 사람의 죽이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로 밑밥은 깔았고.’
사실 천년 나무를 살펴보는 건 혼자 움직이는 게 더 편했다.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한 건 나타샤란 인물을 가까이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라 말이지.’
오르타의 존재는 천년 나무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기에 소설에서도 다룬 내용이 적었다.
하지만 나타샤의 ‘거인 영체 갑옷’에 대해선 확실한 정보가 있었다.
강력한 영혼을 자신의 육신에 영체화시켜 물리적으로 사용하는 초자연적 근접 전투 기술.
총 전력을 이끌고 나타난 뎀토어의 별들을 홀로 막아서며 맞짱을 외친 무대뽀 마녀가 떠올랐다.
[별사탕 새끼들, 아작아작 씹어서 모조리 삼켜주마!]
오르타 중 가장 임펙트 있는 인물로, 거인족 게레플람의 영체를 갑옷화하여 진군을 15분이나 막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려 십오 분이다.
오르타 넷이 막아선 삼십 분 중 무려 절반이나 해당했다.
레토를 거인족처럼 영체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나타샤의 특기인 영체술을 익혀야 했다.
‘대뜸 가르쳐 달라고 하면 주먹부터 날아오겠지?’
마녀가 아닌 이에게 주술을 사사하는 건, 폐쇄적인 마녀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는 건데, 틈을 파고들려면 그녀에 대한 정보 수집이 먼저였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곁에 두고 깊게 살펴보면 길이 보이리라 판단했다.
“이 길이 가장 빨라.”
나타샤의 안내를 따르며 빠르게 이동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두막들을 지나 무식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들 밑으로 도달하니, 천년 나무의 크기가 피부로 확 와닿았다.
“잎사귀 한번 더럽게 크네.”
압도적인 존재감.
천년이 아니라 만년 나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현대에 저런 나무가 존재했다면 전국 무당님들의 핫플레이스가 됐으리라 확신했다.
영험한 분위기가 팍팍 흘러나왔다.
난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형태가 익숙한 것이, 오두막 지붕을 이곳 잎사귀로 제작한 모양이네요?”
“지붕뿐 아니라 오두막 대부분을 천년 나무의 부산물로 제작했어. 잎사귀든 나뭇가지든 가까이 두면 수련에 도움이 되거든.”
“천년 나무 자체가 마녀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영력 성장에 도움이 돼.”
“영력에만 효과가 있는 겁니까?”
“반대로 마력엔 부정한 영향을 끼치는데, 다른 기운은 글쎄? 확인해본 적이 없어.”
그때, 레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밸런스가 무너진 공간이다.]
“무슨 뜻입니까? 밸런스라니.”
[마력이 티끌도 느껴지지 않는 대신, 타 기운의 농도가 압도적으로 충만하다.]
대기에 마력이 사라진 대신 다른 기운이 들어찼단 뜻 같았다.
그럼 영력 외에 오라도 충만하다는 뜻 아닐까.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나타샤가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레토와 대화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보통 혼잣말이 버릇이라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지만 가볍게 넘어간다. 실제로 혼잣말처럼 들리니 말이다.
“레토라고. 제 친구이자 스승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답은 달랐다.
영체술이란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녀 앞이기에 기대한 것도 있었다.
레토란 존재에 대해 자세히 파악할 절호의 기회.
반응을 살펴보고 싶었다.
“내 눈깔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내 곁에 네놈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나타샤님도 친구를 두지 않았습니까?”
“친구?”
“네. 거대한 친구요.”
내 말에 나타샤가 뚝 멈추곤 고개를 돌렸다.
날 바라보는 표정이 날카롭다.
“어떻게 알았지?”
“레토가 말해주더군요.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나타샤님 주변을 배회한다고.”
[저런 하찮은 존재를 나와 비교하다니. 무슨 수작이지?]
레토도 거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하찮은 존재라니, 오르타와 계약한 거인 게레플람은 상당한 격을 지닌 영체라고.
레토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 조용히 나타샤의 반응을 살폈는데, 그녀가 신기한 듯 날 살폈다.
“이상하네. 대부분은 게레플람의 존재만 느껴도 도망치기 바쁜데.”
“레토는 보통 영혼이 아니거든요.”
“…….”
날 응시하던 나타샤는 눈을 감곤 미간을 찡그리더니 잠시 후 살며시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계약자는 레토란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데? 주변에 맴도는 거 맞아?”
[하찮은 놈이니 당연하다.]
이 진지한 꼰대충은 또 이런 데에는 자존심을 세웠다.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심장을 가리켰다.
“안에 갇힌 존재라 느끼기 힘들 겁니다.”
“…심장에 영체를 가뒀다고?”
“아니, 제가 가둔 게 아니라 스스로 들어간 건가?”
“미친놈. 이성을 지닌 영혼과 일체화라니 영혼에게 잡아먹히고 싶나?”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당장 떼. 언제 네 몸을 차지할지 모른다고.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야 당연히…….”
뭔가 말하려던 그녀가 말끝을 흐리곤 볼을 긁적였다.
입맛을 다시고 한발 물러나는 것이 영체술과 관련된 지식이라 대답에 주저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