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1장


숙소로 복귀한 나와 쉐도우는 곧장 4층 연구실로 올라갔다. 때마침 유람 코모스가 슈트를 열심히 연구 중이었다. 연구실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어수선했다.

“유람. 제가 돌아왔습니다.”
“오! 왔소? 대체 어제 어딜 갔다 온 거요.”

유람은 나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여전히 손은 공중을 바쁘게 누비고 있었다.

잠시 흐르는 정적.

정색을 하며 그를 바라보던 쉐도우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울이 사라진 지 벌써 삼일이 지났습니다, 유람.”
“뭣이?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단 말이오?”
“네.”

유람은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 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내가 어디 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 사람도 아니고.

“잠깐 멈추고 이것 좀 보시죠.”

난 융케마에서 받아온 캡슐을 그에게 내밀었다. 유람 코모스가 캡슐을 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이건 캡슐 아니오. 그런데 기존 것과는 조금 다른데? 이것도 게이트 안에서 주워온 거요?”
“아니요. 융케마 행성에 갔다가 켈이란 융케마인에에게 받은 겁니다.”
“아하. 그랬군.”

그는 캡슐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내 말이 이해가 된 모양이다.

“응? 방금 뭐라고 했소? 융케마 행성?”
“예. 3일 동안 그곳에 있다가 왔습니다.”

내가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유람 코모스가 학을 떼며 물었다.

“허! 대체 어떻게 그곳을 갔다 온 거요? 그곳의 문명은 어떻소? 융케마 종족들의 모습은? 환경은 지구와 흡사하오? 공기는? 중력은 어떻소? 과학기술은? 에너지원은?”

그는 나를 몰아세우며 쉬지 않고 연달아 물었다. 숨은 쉬면서 말하는 건가? 얼굴에 침이 한 바가지는 튄듯하다.

“진정하시고 하나씩 물어보시죠.”

내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난감한 듯 말하자 그제야 숨을 쉬며 진정하는 유람 코모스. 그는 테이블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빨리 처음부터 말해보시오.”

난 그에게 융케마 행성에 갔을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해 줬다. 유람코모스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더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랬군! 한번 봐 봅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서둘러 캡슐에 화이트 스톤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공중으로 알 수 없는 글씨들과 도면들이 가득 채워졌다.

“오! 이럴 수가! 이게 다 융케마인들의 지식이란 말인가?”

유람 코모스는 수백 개의 도면을 정신없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은 망설임 없이 익숙한 솜씨로 도면을 조작했다.

나와 쉐도우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에겐 그저 이상한 글씨들과 그림으로만 보일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면이 하나로 겹치면서 제법 그럴듯한 모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유람 코모스군.

모두 완성된 도면을 보며 유람 코모스는 턱을 어루만지며 살짝 거리를 두고 바라봤다.

“정말 아름답군. 구체에 정밀하게 새겨진 문양을 봐. 불규칙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규칙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소.”

전혀 모르겠다.

유람 코모스는 여전히 홀로그램에 눈을 떼지 못하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렐룬 호드’라는 구체를 만들어 내면 폭주하는 게이트의 숫자를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이오?”
“네. 융케마 행성에서 제가 직접 보고 왔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하자 유람 코모스는 턱에 무성하게 자란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걸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겠군.”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좋소. 과학자들을 대동해서라도 한번 연구해 보리다. 음…… 물리학자와 우주공학자 그리고 화학자도 필요하겠군. 아! 외계 언어를 해석하려면 암호학자와 언어학자도 필요하겠고…… 광물학자도 있어야겠군. 도면에 나온 물질이 타 행성의 물질이니 그를 대처할 만한 광물도 필요해. 이걸 제작하려면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설명하기 힘들 거야. 공상에 가까운 일이 되겠어. 그렇다면 접근 방식을 파다뮤 공식을 접목해서…….”

유람 코모스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 허공에 떠오른 도면을 쉴 새 없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대검도 연구해 달라고 부탁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그냥 저렇게 놔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검은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쉐도우.”

난 조용히 그녀를 부른 뒤 고갯짓으로 나가자는 뜻을 전했다.

2층으로 내려오자 핏독과 에밀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 발견하고는 황급히 TV를 껐다. 얼굴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래? 뭘 보고 있었기에.”
“하하! 그게…….”
“아, 별거 아니에요. 1층으로 내려가죠! 대검이 도착했대요.”

두 사람은 황급히 주제를 바꾸며 날 계단으로 밀었지만 난 염력으로 리모컨을 잡은 뒤 다시 TV를 틀었다.

“아!”
“라울, 안 보는 게…….”

뉴스에서는 한국에 대한 속보가 나오고 있었는데 한 단체가 흰색 두건을 쓰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들고 있는 피켓을 보니 ‘에일리맨은 살인마다’라는 붉은색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에일리맨을 한국인 10만 명을 죽인 범죄자라며 즉각적인 처벌을 원하고 있었다.

“저스티스라는 집단인데 한국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시위가 더 거세지고 있다고 하더군. 신경 쓸 필요 없어. 라울.”

핏독은 다시 TV를 끄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괜찮아. 대검이 도착했다고?”
“아! 으응. 내려가 보자고.”

난 애써 웃어 보였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없는 사실을 꾸며낸 건 아니었기에 뭐라고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심경을 눈치챘는지 쉐도우가 조용히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말 괜찮아. 쉐도우.”

1층으로 내려오자 모든 안전검사를 마친 대검이 도착해 있었다. 투명한 관에 들어 있었는데 핏독이 비밀 패턴을 입력하자 천천히 관이 열렸다.

“엄청나군.”
“진짜 크네요.”

핏독과 에밀리가 대검을 살펴보며 말했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한 대검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듯 놓여 있었는데 그냥 들기에는 무게가 상당했다. 난 슈트를 착용하고 익숙하게 대검을 꺼내 들었다. 융케마 행성에서 몇 번 사용해 봤기에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