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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대한민국. 비밀정보국 가비.

차보라와 배은나 대령은 베트남과 플로리다에 나타난 마력 슈트의 뉴스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게이트를 들어갔다가 나오는 마력 슈트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영상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온종일 방송되고 있었다. 아마 전 세계인들이 한 번 이상은 뉴스로 접했을 것이다.

마력 슈트도 마력 슈트지만 게이트를 단번에 없애 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차보라는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결국,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그를 잡지 못했다.

거기에 마력 슈트는 코드록스 사에게 넘어가는 분위기.

한참을 침묵하던 차보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인은 어떻게 됐지?”
“푸옥꾸에 상급 게이트가 생긴 뒤로 연락 두절입니다만 추측으론 놈들을 따라 미국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차무석은?”
“아직 연락 두절입니다. 현재 캐나다 북부의 북극해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해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황상 놈의 마법에 당한 모양입니다.
“하……. 김일도는?”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쿵!

“김일도 이 개자식! 그놈이 꼬드긴 게 분명해!”

차보라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 보였다.

눈치를 살피던 배은나 대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장님. 서울 지부로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곳은 너무 노출됐습니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일대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간 몸을 숨겨 왔던 놈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이제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기에…….”

배은나 대령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차보라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가비가 있는 곳은 서울 외곽에 있는 숲속이다. 위치는 극비기에 지도상에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 서울 지부는 서울 중심의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하벙커 같은 개념이랄까?

그곳이라면 10서클 마법사라도 섣불리 마법을 날리지 못할 것이다. 서울 천만 인구가 방패막인 셈이다.

하지만 순순히 거점을 옮기기에는 차보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임상현을 준비시켜. 무산도 아이도 데리고 오고. 두 번째 계획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결심한 듯 말하자 배은나 대령의 미간이 좁아졌다.

“데스를 말입니까? 만약 그까지 실패한다면 오히려 놈을 도발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아직 남아 있어. 놈을 죽이고 마력 슈트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국장님!”

차보라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대선이 코앞이야. 그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성과를 거둬야 한다.”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를 뒤로하고 배은나 대령이 밖으로 나왔다.

“하…….”

그리곤 문에 기댄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배은나 대령은 차보라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해 처음부터 함께해 왔던 후임이었는데 점점 도를 넘어서며 변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과 회의감이 동시에 들었다.

배은나 대령은 이 모든 게 차보라가 김태식 방위부 장관과 결혼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정말 이대로 가다간 자멸 아니면 파멸이다.

이미 차무석도 실패한 마당에 임상현까지 실패한다면……. 그날로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지도상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미쳐버린 상관의 폭주를 막기 위해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

* * *

미국. 플로리다 주. 코드록스 본사.

처음 만났을 때 들떠 있었던 유람 코모스의 표정이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무실에는 그와 단둘이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에는 캡슐이 영상을 비춰 주고 있었다.

두 개의 행성. 연결된 게이트를 통한 우주 침공. 원리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도마뱀들의 월등한 과학 기술.

이 모든 게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이었다.

“정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었군.”

유람 코모스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회의 테이블 위에 놓인 펜던트와 캡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것들이 모두 그 융케마라는 종족의 과학 기술이오?”
“이름인지 종족명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맞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것을 얻을 수 있었소?”

유람 코모스는 핵심을 뚫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난 자연스레 푸옥꾸에서 맨 처음 게이트에 휩쓸려 들어갔던 게 떠올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전 슈트 없이도 게이트를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간 유람 코모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인류에게 있어서 게이트 안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서 쏟아부은 시간과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른다.

그런데 그런 곳을 맨몸으로 오간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그 어떤 것을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물론 예전부터 브래들리의 추측도 있었던 터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접근해 봐야 한다.

“이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소?”
“몇 안 됩니다. 핏독, 쉐도우를 포함해서 네 명.”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오?”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비밀이 잘 지켜져 왔고요.”

그제야 안도하는 유람 코모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사실은 당분간 비밀로 하는 게 좋겠소. 그리고 그 사람들도 모두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