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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려 애썼다.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편히 있으세요. 아, 제가 바삐 오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군요.”
그녀는 부드럽게 손가락을 튕기며 바깥에 대기 중이던 남성을 불렀다.
“코코아 두 잔 좀 갖다 주세요.”
“예, 마더.”
남자의 대답에 그녀가 ‘마더’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주목하며 말을 꺼냈다.
“저는 김동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신동준 씨.”
일부러 성씨는 바꾸어서 소개했다.
괜히 이름 때문에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인사가 늦었군요. 민아린이에요. 물론 그 이름보다는 마더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있지만, 아무튼, 두 분 다 반가워요.”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그녀의 악수를 받으며 느꼈다.
이 여자, 간단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분명히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우리 둘과 악수한 뒤, 말을 이었다.
“오는 길에 대략적인 상황은 전해 들었어요. 괴물을 피해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예. 이곳이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이곳 외곽은 군인분들께서 신경을 써 주고 계셔서 괴물들이 출입하지 못하거든요.”
민아린이 말을 마치자마자, 남성이 돌아와 우리 둘에게 코코아를 건넸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세요.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리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입술에만 대고 마시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음료를 곧이곧대로 받아 마시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하지만 마동준은 거침없이 그것을 들이켰다.
“크, 맛있네.”
민아린은 그를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입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곧 그녀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각자 맡은 임무가 있어요. 듣기로는 두 분 다 괴물을 잡을 수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예.”
나와 마동준은 동시에 대답했다.
민아린은 이어서 말했다.
“오늘은 편히 쉬세요. 아, 그리고 여기에만 계시면 답답하니까, 돌아다니면서 얼마든지 구경하셔도 좋아요. 다만 금지 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곳은 출입 불가니까, 실수로라도 발을 들이지 마세요. 아마 내일부터 바빠질 거예요. 숙식이 제공되는 대신 일을 해야 하는데, 혹시 그게 불편하다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무언가를 공짜로 제공한다고 했다면 곧바로 의심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대가를 확실하게 원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냐.’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내부 조사인데, 겨우 이런 걸로 마음이 편해지다니.
잠시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리고 민아린은 반쯤 몸을 돌리며 말했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보초병들한테 말해서 저를 부르세요. 그럼, 저는 이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짧게 용무만 마치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는 마동준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이러고 앉아만 있지 말고 나가 볼까요.”
“그러시죠.”
마동준과 나는 지하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거리를 여전히 활기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은 제각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며 나는 블루에게 지시를 내렸다.
“민아린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와.”
“가아악.”
블루가 조용히 하늘로 솟구쳤다.
이후 나는 마동준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말했다.
“흩어져서 주변을 살펴보죠. 그리고 절대 의심을 살 행동은 하면 안 됩니다.”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데 그는 가다가 말고 돌아와 물었다.
“그런데 만약에라도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그땐, 절 찾을 생각하지 말고 혼자서 빠져나가세요. 전 알아서 빠져나가겠습니다.”
“네. 그럼, 무슨 일이 생기면 게시판으로 메시지를 보내놓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마동준이 다른 길로 사라지자, 나는 혼자 지하 도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시장 같은 이곳에서는 보호석을 이용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다양한 음식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곳곳에 병사들이 배치된 모습을 보며, 이곳의 경계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었다.
이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아이템을 파는 상점이었다.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상점 주인이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뭐가 있는지 둘러보러 왔습니다.”
그는 내 몸을 빠르게 훑더니 말을 이었다.
“보니까, 무기가 없으신 것 같은데. 최근에 들어온 매물들을 보여드릴게요. 이쪽으로.”
무기는 전부 인벤토리 가방에 집어넣어 둔 상태였다.
그러나 굳이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를 따라 무기 진열대로 이동했다.
“검, 도끼, 활, 너클, 없는 게 없습니다.”
“흐음…….”
진열된 무기들을 빠르게 살펴본 결과, 모두 쓸모 없는 품질들뿐이었다.
“유니크급 이상은 없나요?”
워낙 아이템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 보니 육안으로만 봐도 그 무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진열된 물건들은 전부 레어급에 불과하거나 아예 영무가 아닌 것도 존재했다.
내 질문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물건을 좀 볼 줄 아시는 분이군. 미안하지만 유니크급 이상은 안 팝니다. 아니, 못 판다고 볼 수 있죠.”
“못 판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무래도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유니크급 이상 아이템은 전부 마더에게로 귀속되게 되어 있습니다. 소유하고 있다가 걸리면 그날로 바로 추방입니다.”
“아예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고요?”
“마더가 직접 총관리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한마디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유니크급 이상은 소유할 수 없다고 봐야죠.”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놀랐다.
마더, 민아린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아이템을 통제하다니.
이내 상점 주인은 내게 가까이 붙어 말했다.
“만약에 유니크급 이상 아이템을 가지고 계시거든, 절대로 꺼내지 마쇼. 빼앗기기 싫으면.”
그는 경고의 한마디를 해 준 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장사를 이어 나갔다.
나는 상점을 나와, 그다음에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쓸만한 정보를 듣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구석에 있는 자리에 착석해, 대충 음식을 주문한 후 주변에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흔히 사람 사는 얘기들이 언급되었지만 쓸 만한 정보도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 말 들었어? 레빗님이 서울과 전쟁을 준비 중이래.”
“뭐? 인천을 차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지역과 전쟁을 해? 괜히 벌집을 쑤시는 거 아냐? 안 그래도 그쪽에는 유명한 네임드들이 자리를 잡고 있잖아.”
“계획이 있으니 그리 행동하는 거겠지.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잔챙이들이 할 수 있는 게 있나. 그냥 까라면 까야지.”
두 병사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보니, 본래 민아린은 인천을 지배하던 사람의 오른팔이었던 듯하다.
정확히는 인천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었다.
강미나도 차마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 것은 거주민들 사이에 민아린의 민심이 너무 좋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민아린과 강미나는 같은 공간에 공존하면서도 서로 적대하는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아린은 언제든지 그녀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당위성이 존재했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내부에서부터 무너트릴 수 있겠는데?’
하지만 민아린이 반역의 불씨를 피울 의지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아니지.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잖아.’
대외적으로 강미나가 민아린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또한 민아린도 강제로 패권을 쥔 강미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강미나가 민아린을 죽이면 거주민들의 반감이 그대로 자신을 향한 적개심으로 변해 큰 골칫덩이로 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미나가 민아린을 그냥 가만히 두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우선 강미나와 민아린의 관계에서 약점을 찾아내야 했다.
두 시간쯤 지나, 블루가 돌아왔다.
블루를 통해 마더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만 추리자면 마더는 강미나가 주도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
이유는 사람들의 죽음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떻게 할지 계획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단 게시판을 통해 강미나의 세력인 척하면서 마더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게 좋을 듯싶다.
물론 게시글 하나 정도로는 그대로 묻힐 테니, 남산타워의 거주민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새로 유입된 거주민들은 제외하고 기존에 있던 거주민들을 선별해 작업을 지시했다.
만약 내가 시켰다는 것이 바깥으로 새어 나간다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
게시판에서 마더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커질수록, 마더 측 세력도 위기감을 느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