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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김도환의 질문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대체 그 시기라는 게 뭡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혼란과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오동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고, 동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 보며, 앞으로 닥칠 재앙인 ‘영력 폭풍’에 대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나오는 사실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동혁의 말이 끝나자, 동료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윤미영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반복해 물었다.
“그럼, 보호석이 없으면 자신의 영역 내에 있어도 소용없다는 거죠?”
오동혁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용없습니다. 보호석이 없으면 죽는다고 봐야죠. 아마, 이번에 많이 죽어 나갈 겁니다.”
윤미영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장판석은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우리 거주민들만 신경 써도 바쁠 판에 남들까지 신경 쓴다고요? 그런 행동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자기만 선하게 보이고 싶어 위선을 부리는 게 아니고요?”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비판적이었다.
윤미영은 격분하여 일어서며 소리쳤다.
“위선이라뇨! 지금 말 다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찼다.
그때 오동혁이 조용히 나서며 중재했다.
“그만.”
그의 한 마디에 모두가 순간적으로 침묵했다.
“여러분들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만, 저는 거주민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의 말에 주변은 술렁였지만, 오동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거주민들을 안 챙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이 사실을 얘기해 혼란을 초래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들이 보호석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수 있게 도울 생각입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처분하고 얻은 보호석은 전쟁에 참여했던 거주민들에게 배포할 예정입니다.”
그가 물었다.
“이의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결정에 동의하는 듯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를 짓죠. 다들 피곤하셨을 텐데 고생 많았습니다. 아, 장판석 씨는 남아 주세요.”
회의는 막을 내렸고, 모두가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
오동혁은 홀로 남은 장판석에게 아이템 처분 문제를 맡겼다.
물론 보상으로 일정한 개수의 보호석을 약속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동혁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처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문제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 울프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지금 당장에 연합군이 패배해 물러나기는 했지만,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모른다.
거기다 이제 곧 다가올 폭풍까지.
장판석, 그자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신뢰해야 할 때였다.
오동혁 역시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와중, 걸음걸음마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 * *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해태가 내 얼굴을 핥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내 집이었다.
난장판이 된 거실.
어젯밤,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를 뒤지며 먹은 흔적들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먹고 바로 잠이 든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고,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 귀찮아.”
레드와 블루를 바라보며.
“좀 도와줄래?”
라고 말했지만, 레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악!”
오직 블루만이 움직여 청소를 시작했다.
“레드, 너도 좀 해!”
다시 소리쳐 보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무시했다.

[레드가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는 게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됐다, 됐어. 말을 말지.”
결국 나는 블루와 함께 청소를 마쳤다.
문득 청소를 끝내 놓으니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뭐 하지?”
곧 할 일이 떠올랐다.
“명상부터 하자.”
명상을 통해 영력을 쌓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한 시간가량의 명상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간만에 여유를 느끼며 산책을 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 어젯밤에 얻은 영역 포탈을 떠올렸다.
‘가만, 근데 어떻게 해야 포탈을 열 수 있는 거지?’
다른 기능들을 사용했을 때처럼 게임 캐릭터가 하듯이 손을 뻗고 포탈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코앞에 포탈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빨아들이는 듯한 포탈 앞에 서서, 나는 이동할 지역을 마음속으로 그려 냈다.
순간,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던 포탈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에 그려진 지역이 저 너머로 보였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포탈을 통과했을 때, 나는 순식간에 그 장소로 옮겨져 있었다.
내가 떠올린 곳은 영역 내에 유일하게 운영 중인 커피숍이었다.
어젯밤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멈출 것 같았지만, 커피숍의 문은 환영하는 듯 열려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의 문을 열자, 주인인 김나주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어제 전쟁터에 함께 있었고, 그 증거로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사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무엇을 드릴까요?”
김나주가 물었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한 활력이 묻어났다.
커피숍 안은 고요했다.
오늘은 커피숍이 문을 열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아니면 전날의 전투로 인해 모두 지쳐 있는 것인지, 손님은 나 혼자였다.
김나주는 따뜻한 커피를 내 앞에 놓으며 말을 건넸다.
“영주님, 어제는 고생 많으셨습니다. 영주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거예요. 어쩌면 저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죠. 베푸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진심 어린 고마움과 존경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해 오는 것은 처음이라, 낯섦과 어색함이 공존했다.
결국에는 내가 한 일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으나,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인 일이다.
한 땅의 영주가 되었다면 민심도 돌봐야 하는 법이니까.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오늘은 쉬어도 될 텐데, 하루쯤 쉰다고 해서 나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만 들어가서 쉬세요.”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좋아하는 일이라도 몸부터 챙겨야 오래 갑니다. 명령이니 이만 문 닫고 들어가서 쉬십시오. 어차피 저 말곤 손님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제야 그녀는 알겠다고 답하며 물러갔다.
나는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몸에 카페인이 들어가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새롭게 떠올렸다.
다시 영역 포탈을 열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내 발이 닿은 곳은 어두컴컴한 사무실이었다.
정확히는 오승현과 장나희. 그리고 그녀의 동료들이 갇혀 있는 장소이다.
나머지 연합군들은 전부 풀어 줬지만, 이 일을 주도한 자들은 아직 풀어 주지 않은 상태였다.
밧줄로 묶여 있는 그들 주위에는 까마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까마귀들을 보며 말했다.
“수고가 많아.”
“가아악!”
까마귀가 울부짖는 소리에, 잠에 빠져들었던 그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무심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장나희의 눈빛이 번뜩이며, 그녀는 내게 죽일 듯이 말했다.
“죽이려거든 빨리 죽여! 꾸물거리지 말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반면 오승현은 침착한 태도를 일관했다. 아니, 마치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 앞에 앉아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죽여 달라고? 진짜 죽을 생각이었으면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지 않았겠지.”
“이 개새끼가…….”
“내가 왜 너희들을 살려 둔 줄 알아?”
“그딴 이유 알 게 뭐야!”
장나희는 적의를 강하게 드러냈다.
“한 번만 더 소리를 질러 대면 기회는 없는 줄 알아.”
“기회? 무슨 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