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강미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정말로,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그녀는 이곳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을 테지만, 그녀도 모르는 새로운 전략이 등장하자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사실 이 방법은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이니, 나만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그녀는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듯이 다시 나에게 방법을 물어보았다.
이 전략은 다시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방금은 비약을 사용해 학교에 부족한 음기를 채운 겁니다.”
“그, 그게 진짜로 가능하다고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뭐, 누가 학교에서 비약을 사용해서 음기를 채울 생각을 하겠어요.”
“대체…… 설마, 동혁 씨가 처음으로 알아낸 거예요?”
“네.”
물론, 이 방법을 알게 된 것은 비약을 실수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지만,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김도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프로게이머라서 그런가. 다르네.”
그는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강미나를 돌아보았다.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이 종을 치기 전에 서두르죠.”
이미 준비한 밥상을 남들에게 뺏기는 일은 없어야 했다.
강미나와 김도환도 내 말에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선두에 서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막힘없이 올라간 옥상 중앙에는 오래되고 낡은 큰 종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직접 다가가 손끝으로 그 큰 종을 건드렸다.
대앵!
장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앵!
한 번 더 손끝으로 건드리자 주변에서 음산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
그리고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이 사막처럼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세 번 종을 치자 공기가 무겁게 변하며 운동장 쪽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오오오오!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여든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그 안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해일처럼 밀려온 파장이 우리를 덮쳤다.
“크윽!”
강한 파장 때문에 고개를 틀었다가 다시 앞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소용돌이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굉장한 크기의 영혼의 집합체가 하늘을 가리며 우뚝 서 있었다.
지주의 몸체는 수많은 해골의 머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중앙의 해골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것이 지주의 심장.
“그웨에에에에……!”
지주는 온몸에서 붉은 불빛을 발하며 우리를 향해 저주 같은 소리를 내뿜었다. 그것은 듣기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저…… 저게 우리가 상대할 놈이라고?”
김도환은 지주를 처음 봤는지, 사색이 된 얼굴로 서 있었다.
게임으로 지주의 모습을 보았던 나도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느낌이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 살벌하네.’
강미나도 지주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이내 해골들의 눈이 붉게 빛나며 학교 주변으로 검붉은색의 결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자연스레 포탈로 향하는 길이 결계에 막혀 버렸다. 이젠 지주를 처치하기 전까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주를 처치하지 않고 결계를 부수려고 시도하는 건 부질없는 행위였다.
결계는 매우 강력해, 모두가 힘을 합쳐도 부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계가 다 완성되는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봉인되어 있는 지주를 깨우는 데 성공합니다.]
[이벤트 기여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좋았어.’
나는 넋을 놓고 서 있는 강미나와 김도환을 불러 주목시킨 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얘기했다.
“일단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대기하다가 녀석이 다가오면 그때 공격을 개시할 거야. 미나 씨, 녀석을 상대하는 방법,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어요.”
김도환이 손을 번쩍 들어 물었다.
“난 저놈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모르는데…….”
“넌 버프만 주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아니지. 버프를 준 후에는 우리가 들어온 문 보이지?”
“어, 어.”
“다른 놈들이 옥상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그것만 해 줘도 그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이었다.
“알았어.”
김도환은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어서 입을 뗐다.
“그리고 미나 씨는 저랑 지주의 심장을 노릴 겁니다.”
강미나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금, 저희가 저기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녀가 가리킨 곳은 수많은 해골 머리가 있었다.
머리들 사이로 썩은 살들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그곳에 발을 디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주를 상대하는 방법은 심장을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다른 곳을 노려 봐야 금세 회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력을 이용한 스킬도 통하지 않아 직접 칼로 찔러야만 한다.
나는 지주의 몸체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있나. 녀석을 처리하려면 싫어도 해야지.”
강미나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옥상 난관을 향해 걸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르며 그녀 옆에 나란히 섰다.
쿠구구구구!
마치 섬이 이동하는 것처럼 지주가 학교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변을 같이 살폈다.
뒤늦게 지주의 출현을 알아채고,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쯧쯧.”
나는 그들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내가 내려가지 않고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지주의 공격 능력 때문이었다.
그들이 지주에게 접근하자, 수많은 해골 머리들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고정했다.
이후, 해골들의 눈에서 붉은 레이저가 뻗어 나왔다.
수백여 개가 넘는 레이저가, 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으아악!”
“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이어지다 금방 그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짧은 찰나 모두가 죽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있던 곳에는 시체 하나 나지 않고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해골들의 눈을 피하려면 반드시 사각지대에 서 있어야 했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해골 머리보다 높게 서 있으면 안전하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윽고, 학교 코앞까지 접근한 지주.
나는 강미나를 힐끗 쳐다보곤 이어서 김도환을 향해 소리쳤다.
“도환아! 버프 걸어!”
그 순간, 내 몸 주위로 두 개의 빛이 생겨나며 나선형으로 회전했다.

[버프를 받았습니다!]
[일시적으로 힘과 민첩이 상승합니다!]

버프를 받자마자, 나는 크게 호흡을 내쉬며 밑으로 뛰어내렸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건 생전 처음이었지만 게임 동기화 덕분인지 망설임 따위 없었다.
한편 함께 뛰어내려야 할 강미나는 반 박자 늦게 뛰어내렸다.
이내 나는 떨어질 위치를 바라보며 자세를 취했다. 지주의 몸체 중심으로 떨어지자,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애써 악취를 무시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비켜! 비켜! 비켜!”
내가 떨어진 위치로 강미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악!”
대응할 틈도 없이 강미나와 부딪힌 나는 그 충격에 뒷목을 붙잡으며 일어섰다.
“아, 아파. 씨.”
“그러게, 비키라니까요.”
강미나는 무안한 듯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금방 정신을 차린 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이곳은 해골 머리 위에 있는 드넓은 구덩이였다.
이 구덩이 밑으로 내려가야 지주의 심장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산을 하산하듯 완만한 곡선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당연히 그냥 두지 않겠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무수히 많은 스켈레톤들이 나타났다.
길을 가로막혀 갈 곳이 없어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강미나에게 말을 건넸다.
“우측이 비었으니, 저쪽으로.”
말을 듣자마자 강미나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손에서 펜이 빛나더니, 그 빛은 실로 변하며 채찍처럼 유연하게 스켈레톤들을 공격했다.
나는 손에 쥔 화도로 좌측에서 다가오는 스켈레톤의 몸통을 대충 베고 지나갔다.
이 녀석들을 상대해 봐야 영혼석도 주지 않을뿐더러, 체력만 소비할 뿐이었다.
그때, 강미나의 등 뒤로 스켈레톤 하나가 그녀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백범일서로 문책강타를 사용하여 방패병을 소환했다.
팅!
뒤늦게 스켈레톤을 발견한 강미나는 곧장 녀석에게 다가가 활을 빼앗고 실을 휘감아 무참히 박살 내 버렸다.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믿고, 서로를 보호하며 앞으로 헤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