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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1장


‘지옥 탈출’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그 예전, 친구랑 놀기 위해 집에 전화를 돌리고 핸드폰은 오직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낭만의 시대.
놀이터에서 바닥에 떨어지면 탈락하는 걸로 규칙을 정한 뒤 친구들끼리 하던 일종의 술래잡기 놀이가 있었다.
그때 막 놀이터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못 내려와서 소방관 불러서 내려온 놈도 있고 막 그랬었다.
파쿠르랍시고 미끄럼틀 위를 뛰어다니다 팔 부러져서 깁스한 녀석도 있었고.
……아무튼.
딱 그 기분이었다.
모두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그런 무서운 느낌.
“일단 정신을…….”
틀렸군.
말을 안 듣는다.
그리고 또 몇 번이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살레니움 사가는 한국산 게임이다.
때문에, 아주 빡빡한 규제를 자랑하는 K-게임답게 살레니움 아카데미에서도 미성년자의 음주는 학칙 위반이다.
4학년 때 풀리지만, 1, 2, 3학년은 절대 마셔선 안 된다.
나의 죄다.
좀비처럼 움직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녀석들을 어떤 방식으로 물리쳐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서 답을 내렸다.
‘불가능.’
그래.
불가능하다.
완전히 외통수.
도망칠 각을 좁히며 다가오는 저 모습을 보면, 동네 형들이 끼워 준 다섯 살 깍두기도 두 손 들고 항복할 것이다…….
이 좀비들의 정신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라앉은 이성 정도를 밖으로 끌어낼 수는 있을 것 같다만.
그 정신으로 온전히 기숙사로 돌아가길 바라야지.
우선은 목을 가다듬고 스킬을 썼다.

[정신 차리도록, 뭣들 하고 있나.]

움찔.
다른 녀석들의 눈에 영혼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혈통의 위압.
아마 리제릴리아스에겐 씨알도 안 먹힐 테지만……. 그쪽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며칠 후면 어른인데 말이야. 그 정도는 해야지.
“윽…….”
“아…….”
“제가 무슨 짓을…….”
비틀거리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됐나.
“우선 정신을 차려라. 너희는 지금 술을 마신 거다.”
“윽……? 이게 술이었나요? 하지만 이 포장지에는 맛있는 포도 탄산 주스라고…….”
아나스타시아 황녀가 쳐 둔 장난이다.
아무튼, 이성을 찾은 녀석들을 다시 제자리에 앉혔고, 데워 둔 방이 따뜻해서 그런지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안 되겠군.”
“수플레, 일어나 있나? 너는 술이 익숙할 테니 체내의 주독을 정화해라.”
“응.”
고개를 끄덕인 녀석에게, 마력으로 밀리제를 띄울 수 있냐 물었고, 두둥실 떠오른 밀리제를 등에 업었다.
“다들 가만히 있도록, 어디 가거나 하지 말고 여기 있어라.”
뭘 어떻게 하겠어.
한 명씩 배달해야지.

* * *

수플레를 옆에 두고, 밀리제를 등에 업은 채 걸었다.
네로 녀석은 뭔 일을 하는지 나오지 않았다.
“선배.”
“말하도록.”
“……살레니아스와 접촉했어?”
“마력의 잔향이 좀 남았나?”
“음, 리제릴리아스 선배가 들고 있는 그건 용혈검이고…… 베가 님도 봤어. 인간형 모습은 처음이지만…….”
나는 인벤토리에서 금장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이건.”
“그가 내게 직접 넘겨 주었다. 내가 쥐니 모양이 변했더군.”
“으음……. 그렇구나. 우선은 그것보다…….”
수플레는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잠든 밀리제를 한 번 보고, 말했다.
“밀리제가 걱정 많이 했어. 선배.”
“…….”
“저 아이, 자기 마음을 잘 모르니까. 300살은 족히 넘은 나와는 다르게 아직 진짜로 어려.”
“그런가.”
“이번 기말고사도 선배를 위해 차석을 따냈다고 다짐했고…… 실제로도 따냈어. 그리고……. 뭐, 선배도 대충은 느끼고 있겠지.”
“안다.”
“대답은 정했어?”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거에 집중할 여유도 없고…….”
말하고도 스스로 쓰레기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밀리제는 믿을 수 있는 후배다.
내가 데리고 키우기로 했던 정령사다.
“내가 조금, 아니…… 최근에는 꽤 많이 소홀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응. 그러니까, 밀리제도 충분한 보상을 해 줘.”
“내가 뭘 해 줄 수 있지?”
“그냥……. 매우 간단한 거라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메린관 앞이었고, 나는 수플레에게 밀리제를 넘겼다.
“나는 여기서 다시 돌아가마. 밀리제를 방까지 잘 부탁하겠다.”
“응. 아, 선배, 그리고…….”
손짓하는 녀석에게 고개를 숙이자, 수플레는 내 귀에 몇 마디 말을 남겼다.
그리고선 밀리제를 둥둥 공중에 띄운 채 메린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가.”
흩어지는 입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헤일로 남작 부부에게 딸을 잘 맡겠다고 말한 주제에……. 정작 신경을 쓰지 못했나.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아지트로 돌아갔다.
“그럼, 아드리안, 나는 들어가 보겠다.”
렐브리안은 비교적 취하지 않았기에, 고맙게도 제정신을 유지한 채 돌아가 주었다.
리제릴리아스도 얼굴만 붉었지 정신은 말짱했던지라, 스스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정말, ……이번 일은 여러모로 고마웠다. 아드리안.”
“어차피 레이나 때의 빚을 갚은 거나 다름없고, 어차피 성탄절 때 또 모일 것 아닌가. 선배는 어서 돌아가서 여독이나 풀도록.”
“……알았다.”
그리하여, 아지트에 남은 것은 칼렌과 레이나 둘.
칼렌은 어차피 방이 같으니, 레이나부터 데려다주기로 했다.
“아드…… 리안.”
“일어나라.”
비틀거리는 녀석을 부축하고서, 아지트를 나섰다.
루브리엄관……. 끔찍하게도 먼 곳을 향해 우리는 걸었다.
“아드리안…… 으으음……. 좋아해요.”
입을 다물었다.
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선물 교환……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가.”
“네……. 저는 멋진 선물을 준비할 테니…….”
레이나 녀석은 서서 잠들어 버렸다.
“……이런.”
루브리엄관에 막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 등록된 사람이 아니면 막 자경단이 내쫓으러 온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추운 곳에 잠든 녀석을 오래 놔두면 감기에 걸린다.
사흘 후가 성탄절인데, 감기에 걸리게 둘 순 없지.
방 위치는 저번에 렐브리안과 테라스로 보았기에, 알고 있다. 문제는 거기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느냐겠지. 담벼락을 넘고 테라스로 단숨에 뛰어 올라간다?
그거 완전히 도둑 아니냐……?
그리 서성이던 무렵.
“……아드리안?”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니, 그 녀석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 무슨 일이에요? 그보다, 레이나 폰 볼프강은 왜 업고 있는 거죠?”
체육복을 입고, 검을 들고 있다.
몸에서 연기가 풀풀 나는 걸 보니, 이제 막 수련장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