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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1장


수플레의 기억을 처치하고 열린 보스룸에서 꽤 유용한 아이템들을 파밍한 뒤 곧장 살레니움으로 복귀했다.
돌아오니, 레이나가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며 갑작스레 전원을 소집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가 보니…….
“우후후후후…….”
“바다, 바다에요.”
“바다, 가장 원초적인 자연…….”
이 녀석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좀 이상하다.
“레이나.”
“네?”
“왜 다들 이러는 거지?”
“그야, 바다잖아요?”
……음.
너무 축약된 것 같지만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군. 그렇구나, 그나저나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왜 그러나요? 아드리안? 아드리안이 가자고 했잖아요?”
……내가요?
……언제요?
“예전에요!”
그러고 보니…….

─친목이라도 다질 겸 다 같이 바다라도 한번 보고 오는 것이 어떻겠나.
─아드리안, 안 간다고 하더니 드디어 제 말을 들어줬군요! 당장 사람을 보내서 바다 대여가 가능한지 물어볼게요!

아.
그건가.
볼프강 영지 바닷가로의 친목 도모 여행.
“그건…….”
“네, 그거 말이에요! 제가 가문에 물어봤는데, 바다를 빌릴 수 있다고 허락이 왔어요!”
레이나가 가문에 말해 바다를 빌려 보겠다고 말한 후.
가끔 누군가 바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레이나를 비롯한 몇몇 녀석들은 기대감을 숨기지도 않았고.
칼렌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바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귀가 이쪽으로 쫑긋거렸다.
밀리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되겠다면서 즐거워했다.
에브니스 녀석도 ‘그래서 언제 가는데요? 누누이 말하지만, 저는 영지 업무도 봐야 해서 날짜가 겹치면 못 가요.’라며 관심 없는 듯 물어봤지만, 손에 ‘바다 가면 꼭 해 봐야 할 일 3개’를 메모로 적어 두고 있는 것도 보았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여행의 일정을 언제로 잡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는, 그 누구도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원래 단체 여행이란 게 다 그렇듯, 일단 일정을 잡는 것부터 고된 일이다.
그러니 허락도 떨어진 김에 그 일정을……, 바로 지금 잡기로 한 것인가.
“다음 주 어떨까요?”
“죄송하지만 헤일로 양, 다음 주는 제가 후계자 수업을 받아야 해요.”
“그럼 2주 후는 어떨까요?”
“아, 그때는 제가 일이 있어 바다를 빌리지 못할 거예요!”
첩첩산중.
“……한 가지 묻지, 나머지는 다 일정에 문제가 없는 건가?”
그러자 렐브리안, 칼렌, 밀리제와 수플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3주 후면 너무 늦고요, 4주 후면 방학이 거의 끝나 버릴 텐데요……. 과연 언제가 가장 좋을까요? 아……!”
레이나는 혼자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그냥 내일, 바로 갈까요?”
폭탄에 가까운 선언.
그러나.
“좋아요, 내일이면 저도 시간이 남겠군요.”
“저야, 뭐, 일찍 갈수록 좋으니까요.”
모두가 당연히 만장일치로 찬성.
그리하여.
“그럼, 내일 아침에 중앙구 포탈 앞에서 만나요, 아,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 수영복이랑 여러 가지 사러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계신가요?”
“아, 레, 레이나 선배님, 저도 수영복이…….”
“나도.”
“저는 혼자 살게요.”
“같이 가자 레이나.”
뭐.
저쪽은 알아서 잘 하라지.
그렇게.
레이나는 ‘당장 가문에 연락해서 마차를 부르고, 수영복도 사야 해요!’라면서 일련의 여자 무리를 이끌고 상점가로 사라졌다.
에브니스는 혼자 사겠다면서 떠났다.
그리하여 카페에 남은 것은, 나와 칼렌 뿐.
가만히 스무디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수영복을 사지 않나?”
“아, 아? 그, 그게…….”
칼렌은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또 말하려다 말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아드리안 님.”
“왜 그러지.”
“그, 그……. 수, 수영복을 함께 사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수영복도 나, 나, 남성복 매장이…….”
뭐?
뭔 소리야 너.
너 남자 아니고 여자잖아.

* * *

당연하지만, 원작의 주인공으로 진행하는 게임의 주요 이벤트인 ‘친목 도모 여행’에서도 칼렌 스노화이트를 데려갈 수 있었다.
다만 1학년 때는 여행지가 계곡 여행으로 정해져 있어서, 칼렌 스노화이트의 수영복은 에르안의 2학년, 그녀가 3학년일 때 볼 수 있었다.
뭐, 기대할 건 없다.
어차피 남자 수영복 입고 나오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칼렌 스노화이트가 이미 수영복을 마련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수영복을 함께 사러 가자고 한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니.
“그, 정말 이상한 이유지만, 남성복 매장에 저 혼자 들어가는 게 좀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아니 그게 왜 두려운데.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면, 여성용 수영복 파는 곳에 혼자 들어가는 남자 같은 느낌일 테니까.
당연히 부담스럽고 부끄럽고 죽고 싶고 온갖 느낌이 다 교차할 것이다.
녀석은 죽어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녀석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마땅히 수용해 주어야 한다.
“음, 옷 가게에서 둘러보고 있으면 점원이 말을 거는 게 부담스러운 것처럼 말인가.”
“네! 네! 맞아요! 그런 느낌입니다!”
적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도록 할까, 나도 마침 하나 정도는 사야 해서 말이다.”
“그, 고, 고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가도록 하지.”
“네헵? 잠, 잠시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뭘 마음의 준비는 준비야.
어디 보자.
이 녀석도 분명히 파티에 넣어서 ‘바다’에 데려가면, 고정적으로 입는 수영복이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골라 주면 되려나.
“따라오도록.”
“아우…….”

* * *

칼렌 스노화이트는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니.
남자 수영복이라니.
그것도 그 사람과 함께 사러 가고 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다고! 이런 파렴치한 칼렌!’
평소에는 나오지 못하도록,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가둬 두었던 ‘하이린’이 끼야악 소리치며 절규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독점할 수 있으니까? 웃기는 소리! 지금 자신은 ‘남자’다! 이 세상 모두가 자신을 남자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잖아!
상점구를 걷는 내내 옆에 나란히 걷는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여기군.”
나직한 목소리.
뜨거워진 얼굴을 얼음 마력으로 잠재우며, 칼렌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그가 앞서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가게 주인은 역시 학생이다.
찾으시는 게 있으실까요?”
“우리가 고르고 물어보겠다. 할 거 하고 있도록.”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