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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둘러싸인 사내를 바라보며 당철웅은 말을 잃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이의 존재감이, 말을 뱉어 내는 순간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순간, 몸이 떨려 왔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 당제신이라니……?”
들은 것이 너무나도 황당하여 순간 머리가 돌지 않았다. 설마, 그 삼백 년 전, 당가의 혈겁을 일으켰던 방계의 인물을 말함인 것인가?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당제신이라 말한 이를 바라봤다.
기괴하기 짝이없는 눈동자와 귀기와도 같은 서늘한 기운. 하지만 그러한 것을 제외하고 본다면 약관을 갓 넘은 사내와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저런 이가 당제신일 리가 없다.
어찌어찌 당가의 손에서 도망을 치고, 막대한 내공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저 모습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목내이가 되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 당제신이라니……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입에 담는 것이오!”
“하하, 거짓? 거짓말이라…… 우리 소가주의 눈에는 그리 보이나 보구만.”
귀로 파고드는 말에 당철웅은 신음을 삼켰다.
상대의 여유로운 표정은 물론이고, 그 입가에 맺혀 있는 미소마저 결코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절대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저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 당제신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진짜일 거다.”
“……!”
그때, 곁에 서 있던 위천악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한 마디의 긍정이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넋을 잃었다. 위천악의 표정만 보아도, 그저 추측으로 뱉는 말 같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당제신을 바라봤다.
그때, 위천악이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눈을 반짝였따.
“그렇군, 하북에 퍼진 독을 만든 것이 네놈이었구나.”
“흘흘, 재미있었는가? 내 나름대로 걸작이었네만, 설마 그런 식으로 해독해 버리다니…… 상당히 아깝게 됐네, 쯧…….”
당제신이 혀를 차며 인상을 구겼다.
그것은 설령 당가라 하더라도 하루이틀 만에 분석하여 해독제를 만들 수 있는 독이 아니다.
하여, 해독제가 만들어 질 때쯤은, 하북 전체가 녹아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시간이 흐를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설마하니 이리도 쉽게 해독제를 만들어 버리다니.
조금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리 얼굴을 보게 되다니…… 이 또한 운명인가?”
“운명 같은 소리 하네. 뭐 한다고 잡귀 따위가 나를 찾아와?”
“흐흐흐, 자네가 아닐세. 약왕문의 문주를 만나려 한 것이지.”
당제신은 게슴츠레 웃음을 흘리며 붉은 눈을 번뜩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당제신 본인 또한 그 독의 해독제를 만드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은 분명했다.
한데, 약왕문의 문주는 순식간에 그것을 해내었다.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라 말을 하니만큼, 유공의 지식이 당제신을 웃돌고 있다 할 수도 있는 정황이었다.
하여, 반드시 그의 지식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리된다면, 지금보다 더 크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 영감은 나이가 있어서 너 같은 놈 보면 까무러친다. 그렇지 않아도 곧 갈 영감인데 말년은 좀 편히 보내게 해 줘라.”
“그렇다면 더더욱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대단한 지식이 쓸모없어져 버리기 전에 말일세.”
당제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애초에 이 무림에선 약한 이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다. 또한, 강한 이가 그것을 빼앗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보물이든 지식이든 간에.
무림의 몸 담은 이들이, 무언가 가지고 있어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다.
하여, 당제신의 생각이 변할 리 없었다.
때문인가?
위천악이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얌전히 저승이나 갈 것이지 남의 몸 빼앗아 환생 놀이하고 자빠졌네, 아주.”
“하하하! 듣던 대로 입이 거칠구나.”
“주먹은 더 매섭다.”
부웅-!
순간, 위천악의 주먹이 움직였다.
그야말로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뻗어지며 권풍을 쏘아냈다. 묵직한 힘이 실린 그것이 주변을 휩쓸며 당제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웬만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피하거나 막을 수 없어 보였다.
한데, 당제신은 다르다.
그저, 히죽 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콰앙-!
위천악의 권풍과 그의 단검이 부딪치며 귀를 울리는 소음을 만들어 냈다. 사방에서 파편이 몰아치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떠올랐다.
거센 불길이 그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폭풍에, 미친 듯이 흔들리며 꺼졌다 피어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할 지경이다.
“역시, 교에서 자네를 경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으네.”
이윽고 가라앉은 흙먼지 사이로 당제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손목이 아픈 것인지 단검을 쥐고 있는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옅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다소 타격은 있어 보이지만, 그것으로 당제신을 쓰러트리는 것은 어림없는 일 같았다.
그 상황에 위천악이 작은 한숨을 뱉었다.
“하여튼…… 이것들과 엮이면 귀찮아지는 건 매번 똑같군.”
게슴츠레 눈을 치켜 뜬 그의 기세가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검붉은 기운이 솟구치며 그의 전신을 단숨에 휘감았다.
마치, 전신 갑주를 걸친 것 같은 모습에 당철웅은 물론이고, 당제신마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본디, 내공을 익힌다면 자연스럽게 호신기가 몸을 보호하게 되고, 그것이 위천악이나 당제신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호신강기가 된다.
한데, 호신강기도 아니 자신의 기운을, 스스로의 의지로 전신에 걸칠 수 있다니? 이러한 무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사악-!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돌연 위천악의 모습이 사라졌다.
당제신이 눈을 부릅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름 안력이 뛰어나다 자부하는 그인데, 그의 눈으로도 위천악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퍼억-!
“컥!”
순간, 골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몸이 붕 떠올랐다. 주먹에 맞은 것인지 발길질에 얻어터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골이 흔들릴 정도의 고통이 몰려들었다.
신음을 흘리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당제신이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발을 휘두르는 위천악의 모습이 보였다.
콰앙-!
날아든 발길질을 가까스로 피해 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녔다.
엄청난 소리.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귀로 파고들며 머리를 울렸다. 덕분에 상대의 공격에 대응을 하는 것이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었다.
퍼억-!
순식간에 뻗어진 위천악의 주먹이 단숨에 복부를 후려쳤다. 폐부에서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새우처럼 몸을 굽혔다.
위천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빠각!
그대로 무릎으로 당제신의 턱을 올려 쳤다.
단순히 머리가 흔들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타격이 완벽하게 들어간 순간, 당제신의 몸은 인형마냥 바닥으로 엎어졌다.
혼절한 것인가?
붉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이어, 당제신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애벌레마냥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찮은 것인지, 부들부들 몸을 떨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붉은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평범한 사람의 모습 그대로다.
“주, 죽여…… 줘…….”
부들부들 떨리는 당제신의 손이, 힘겹게 들어 올려지며 위천악을 향했다.
마치 도움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그 표정과 눈빛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 기이한 상황에 위천악이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크르륵-!”
돌연, 당제신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몸부림을 쳤다. 마치,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과도 같은 모습에, 위천악이 슬그머니 다가서려는 순간.
“크흐흐- 까닥했다간 몸을 잃을 뻔했구나.”
평범했던 눈동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금 당제신의 붉은 눈동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살기 가득한 한 마디와 함께 기운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고, 동시에 다가오던 위천악을 향해 무섭게 단검을 뻗었다.
촤촤촤악-!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단검이 휘둘러졌다.
빠르다.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으나 간격 역시 상당한 것인지, 여기저기 몸이 베여 나갔다. 옷이 찢어지고 살이 베이며 피가 흘렀으나, 고작해야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크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제신은 조금도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단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뻘건 기운을 머금은 단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채찍처럼 늘어났다. 한대 응축시킨 강기가 무서울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날아들었다.
퍼억- 퍼억-!
위천악이 서 있던 곳을 몇 번이나 후려쳤다.
내려쳐질 때마다 땅을 깊게 파헤치는 것이, 만약 사람이 맞았다면 단순히 뼈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듯했다.
심지어 채찍과도 같은 그것이 땅에 닿는 순간, 땅이 녹아내리며 연기마저 치솟아 올랐다.
실로 경악스러웠다.
치솟아 오른 연기는 지독한 독무를 품고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불타지 않고 남아 있던 풀이, 그 독무에 닿는 순간 그야말로 눈 깜빡 할 사이에 메말라 죽어 버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당제신.
그가 독자적으로 익힌 독공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