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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당주려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하북 성도를 벗어나 사천을 향해 가는 여정.
본래 가지 않으려 했던 위천악을 진초란이 설득해 상행으로 움직이는 사천행이었다. 당주려 또한 그 속에 끼어 함께 떠나고 있었다.
수라문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에 진초란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보상은 서역의 비단 일을 밀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덕분에 지금 당주려의 입장은 객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객.
한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밥을 지을 때는 말이오. 불 조절이 굉장히 중요하다오.”
“……아, 그래요?”
“지난번처럼 태워 먹지 말고 잘 좀 하시오.”
곁에서 들려오는 우신장의 목소리에 당주려는 기가 찼다. 그저 상단 사람들이 해 주는 밥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녀는 밥을 짓고 있는가?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그러한 철학을 가진 위천악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 마디에 동조한 것이 진초란이다.
상행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이 죽이 맞아 쿵짝하니,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여,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시간에 땔감을 구해 밥을 지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이 상단은 도대체 뭔데?
상행을 하는데 밥 짓는 솥을 들고 다니는가?
힐끗,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니, 비단 솥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조리 기구들을 손에 쥔 금호상단의 호위들이, 자연스럽게 모닥불을 피우고 거기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육포 쪼가리나 씹는 것보다야 낫지 안 그래요?”
그때, 당주려의 불만을 눈치챈 진초란이 어느새 다가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말하자 그 특유의 눈동자와 표정 탓에 반박을 할 수조차 없었다.
사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인은 자신조차 홀리다니?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당주려는, 진초란의 엉덩이에 꼬리가 아홉 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곁에 있던 진초란이 자연스레 자리를 떠나자,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말에 속지 마시오. 먹을 거 사는 돈도 아까워서 식재료 들고 온 것일 테니까.”
“……뭐라고요?”
“가만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쉴 때마다 몇몇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소? 다들 산나물 뜯고 사냥하고 하면서 식재료를 조달한 것이오.”
당주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신장을 바라봤다.
거짓말이지?
금호상단이라면 하북에서도 손에 꼽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돈이 아까워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우신장의 말대로 걸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힐끗힐끗 다시금 주변을 돌아보니,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산나물과 토끼, 새 고기 같은 것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뭐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당주려가 아연실색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저 둘을 조심하시오. 한 번 넘어가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말이오.”
우신장이 고개짓을 하며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위천악과 진초란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술병과 잔을 손에 들고, 건배를 하며 서로 한 모금씩 마셨다.
이어, 유소하가 만들어 놓은 산나물 무침을 안주 삼아 입에 넣는 꼴을 보고 있자니, 괜히 꼴보기가 싫었다.
“혹시…… 저 둘?”
“뭐, 느낌이 그런 것 같소.”
그러한 말에 당주려가 식은땀을 흘렸다.
미색을 이용해 위천악을 어찌해 보려 했던 계획을 실행하지 않아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름 미모의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 진초란과는 비교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것은 여자의 자존심이다.
그제야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위천악이, 진초란의 한 마디에 귀찮은 듯하면서도 승낙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당주려가 어색한 웃음으로 우신장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쪽…… 괜찮나요?”
“……멀쩡하오.”
말투만 들어 본다면 멀쩡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몰골을 본다면 그러한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찢겨 나간 탓에 거지조차 입지 않을 것 같은 걸레짝이 되어 버렸고, 얼굴 역시 여기저기 얻어맞은 통에 붓고 베인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위천악의 수련 방식이 상당히 격렬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 정도로 몰아치다니? 이 정도 수준으로 수련을 해 왔으니, 그간 수라문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예외도 있다.
당주려의 시선이 이번에는 유소하를 향해 돌아갔다.
눈을 가린 채, 산적이니 도적이니 하는 것들을 상대해 온 그녀다. 한데, 처음에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해 여기저기 상처 입기는 했으나, 이제는 제법 수월한 것인지 어디 하나 상처 입은 곳이 없다.
입고 있는 옷이 다소 찢기기는 했으나, 우신장과 비교한다면 백 배 나은 수준이다.
만약, 같은 수련을 한다면 어찌 되었을까?
당주려는 자신 또한 우신장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로 특이하기 짝이 없는 문파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하북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했더라면, 정말로 사마의 문파로 몰려 박살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름이었다.
“그런데 우 소협, 수라를 믿어서…… 수라문인 건가요?”
그러한 질문에 우신장이 신음을 삼켰다.
애초에 위천악이 그리 말을 했으니 그렇다고만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본다면, 어쩌면 수라를 좋아하는 위천악이, 자신의 문파 이름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가 수라환인지 뭔지 하는 영약이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유공은 그것을 뭐라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았기에, 그런 기억이 있기에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물론 문파 이름이 이렇든 저렇든 무슨 상관인가?
그것이 자신의 실력을 올려 주는 것도 아닌데.
하여, 우신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문주가 그렇다니 그런 것이라 생각하오. 아니면…… 말고.”
“그렇…… 군요.”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에 당주려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놈들 역시 이상하다.
문파 명이라는 것은, 그 문파를 상징하는 무엇을 말함인데, 그조차도 저리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하다니? 정말로 제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까지 뚱뚱한 인간이 그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살이 찐 무인들을 제법 봤다고 자부를 한 당주려지만, 하나같이 움직임이 둔하고 그리 대단한 수준에 올라와 있지 않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우신장의 수준은 상당하다.
아직 본신절기를 펼치지 않았기에 정확한 것은 알지못하지만, 그럼에도 일류에 오른 고수라는 사실만큼은 틀림이 없다.
도대체 뭐 하는 문파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 * *

“이제 얼마나 남았지?”
“우리가 지금 하남을 지나고 있으니, 아직도 까마득해요.”
최대한 빠른 길로 가고자 했다면 산서를 지나 섬서로, 그곳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굳이 남쪽으로 돌아 하남을 거친 이유는 다름 아닌 위천악 때문이다.
산서는 사파의 영역.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이를 갈며 죽이려 했던 사이이지 않은가? 심지어, 위천악은 사도천의 천주 묵자경을 죽였다.
또한, 우신장 역시 만만치 않은 활약을 했으니 만큼, 사파인들 입장에선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이런 이들을 데리고 산서로 들어간다는 것은, 또다시 전쟁하자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상행하려는 것이지 전쟁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여, 조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편한 길로 가도 됐는데.”
“전 싫어요. 상행하는데 피 튀기는 꼴을 봐야 하다니…… 지옥이잖아요, 그거.”
“하북에서 금호상단은 꽤 유명하던데? 녹림도 건들지 않는다고 말이야. 피바람이 분다나 뭐라나?”
“그건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놈들에 대한 철퇴이지만, 산서로 들어간다면 그저 원한 맺힌 이들이 칼 들고 오는 거잖아요. 그것도 한두 사람이겠어요?”
그렇지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고작해야 몇 사람이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지만 위천악을 노리는 이들이 몇 사람이겠는가? 사파 무림 전체가 수라문의 제자는 물론이고 문주인 위천악의 목을 원할 것이니만큼, 잠시도 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것인지 몸을 떨었다.
“그런데, 사천당가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이러는 걸까요? 뭐 들은 거 없어요?”
“가 보면 알겠지. 지금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퉁명스러운 한 마디에 진초란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로, 그리 불타는 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위천악의 행동은 전과 비교해서 변하는 것이 없다. 오히려 그것이 편하여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면 어디 덧나는가?
괜히 한 대 쥐어 패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건 뭐냐? 제법 큰데.”
그때, 위천악이 한 곳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따라가 보니, 굉장히 멀리 있음에도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전각이 보였다. 마치, 황궁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그 높이 탓에,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러한 곳이다.
“저긴 하남의 성도 정주예요.”
“내가 묻는 건 건물이다.”
“하남의 성도 정주에 저 정도 크기에 땅을 집어삼키고 건물을 지어 올릴 곳은 하나밖에 없죠. 무림맹.”
“무림맹? 저게?”
“처음 보나요?”
“그래, 처음 본다.”
산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눈에 담은 위천악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가 사는 곳도 아니고 고작해야 무림 단체에 불과할 텐데 크기가 실로 놀랍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천도(遷都)를 위해 지어 놓은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웅장함을 생각해 본다면,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어느 정도일까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바라보며 위천악이 헛웃음을 지었다.
“돈 많은 거 티 내는 놈들이로군.”
“……무림맹을 보고 그런 감상평을 남기는 사람은 위 문주밖에 없을 거예요.”
“그럼 저 너머에 소림이 있겠군.”
위천악이 대략 방향을 잡으며 바라봤다.
그러나 제아무리 눈이 좋아도 숭산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