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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진초란은, 젓가락질을 멈추며 의아한 표정으로 진호곡을 바라봤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러한 눈빛이다.
누구랑 뭘 한다고?
“당분간 상행은 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런 건 됐어요. 그보다 그 전에 말이요.”
“으응? 사도천과 전쟁이 났다는 것 말이냐?”
대수롭지 않은 진호곡의 말에 진초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너무나도 허황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 내는 아비의 모습 탓에, 이거 정말 현실인가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진초란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도천이랑 전쟁이 났는데 왜 그렇게 태연하세요!?”
“아니, 뭐…… 상행이야 안 가면 그만이고 이곳은 성도 아니야? 뭔 일이 있을 리도 없으니 당장은 신경 쓸 게 아니지.”
진호곡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금 젓가락을 놀렸다. 사도천과의 전쟁 따위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백지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우리가 무림인도 아니고 신경 쓸 게 뭐가 있겠니? 무림 일은 무림인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백지약마저 이러한 사태를 크게 생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상행을 가지 못하니만큼 손해가 막심하기는 할 테지만, 고작 그 정도로 금호상단이 휘청이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버티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
“전쟁이 났다면 수라문도 영향이 있을 거잖아요?”
“듣기론 신창양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고 하더구나.”
“그럼 무혁이는요?”
“걱정하지 마라. 그 위 문주가 있지 않으냐? 더군다나 그 아이가 택한 길이니 믿어 주는 수밖에.”
진무혁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단 일을 내팽개치고 수라문의 입문하여 제자가 되었고, 지금은 무림인의 길을 걷고 있다. 스스로 나아간 길에 가시밭길이 있다 하여, 잡아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맹수는 자식을 절벽 아래로 떨어트릴지언정, 꽃길을 걷게 하지는 않으니까.
진초란이 얼빠진 표정으로 부모를 바라봤다.
“어휴, 이번에는 누가 그 자식을 혼쭐내 주었으면 싶네요. 아니면 진짜 내가 가서 두들겨 패 버릴 것 같으니까.”
“어허, 부인. 그래도 위 문주 덕분에 무혁이의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지 않소.”
“그럼 뭐해요! 내 금쪽같은 새끼한테 상처를 줬는데!?”
백지약이 치가 떨린다는 듯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진무혁을 성장시킨 것은 고마울 따름이지만, 진초란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그곳을 잡는 데 들어간 돈과 시간이 얼마이던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다 놓은 술과 장식 값은, 수라문의 몇 달 수입을 하루 만에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게 상처를 줘?
당장 달려가 멱살을 잡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저기…… 위 문주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초란이 다소 어색한 표정을 말을 건넸다. 누가 봐도 위천악을 감싸주려는 듯한 모습에, 쌍심지를 치켜뜬 백지약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 인간이 나쁜 놈이 아니라고!? 너한테 한 짓만 생각하면……?”
거침없이 말을 쏟아 내던 백지약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가만히 진초란을 바라봤다. 약간이기는 하지만,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눈동자가 다소 몽롱한 듯했다.
때문인가?
마른침을 삼킨 백지약이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여잡았다.
“너…… 설마…….”
천천히 뱉어지는 말에 진초란의 고개가 점점 숙여졌다. 태어나 지금까지 저러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그녀이기에, 진호곡 역시 뭔가를 눈치챘는지 입을 쩍 벌렸다.
이윽고 백지약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로 파고들었다.
“했니?”
펑-!
순간, 진초란의 얼굴이 터지듯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잘 익은 사과처럼 뻘겋게 익어 버리니, 굳이 듣지 않아도 그녀의 대답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이…… 망할 새끼가-!”
뒤이어 진호곡의 우람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 * *

어느새 도착한 개방과 언가 그리고 하북 무림의 무문세가들은, 이미 무너진 신창양가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진지를 세우고, 그들이 더는 나아갈 수 없도록 막아 세웠다.
하북 무림의 총 전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모여 있는 데다, 가까스로 생존한 하북팽가의 생존자들까리 합류한 상태였다.
꽤나 큰 전력에 사도천의 무리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쉽사리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두 거대한 세력이 무너진 신창양가를 기점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만큼, 언제 큰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때문인가?
하북을 대표하는 문주와 가주들이 한데 모여, 사도천에게 확실한 한 방을 먹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듯했다.
특히, 언성을 높이는 것은 하북팽가의 팽도학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놈들을 향해 진격할 것만 같은 기세를 품었다. 오랜 전통의 팽가가 눈앞에서 잿더미가 되었고, 수많은 식솔이 그 과정에서 죽임당했으니만큼, 이가 갈리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 치욕을 반드시 갚아 줄 생각이니 팽가가 선두에 설 것이오!”
“진정해라. 아무도 팽가가 선두에 서는 걸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저들의 전력이 어떤지를…….”
“천주곡과 상천문! 칠전검문과 호연세가라 하지 않았는가!”
“그걸 몰라 이러고 있는 게 아니야! 분한 마음은 알고 있으나 조금 진정하게!”
팽도학과 언백준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당장이라도 하북팽가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이를 갈고 있는 팽도학과, 상황을 살피고자 하는 언백준의 충돌이었다.
가장 무력이 강하다 할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니, 다른 이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나마 이들을 말릴 수 있는 구학진마저 입을 다물었다.
팽도학의 분노도 이해하고 언백준의 말 또한 수긍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결정을 따를 수 없으니만큼,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귀 아파 죽겠군.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는 건 어떤가?”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위천악이 인상을 쓰며 툭 하고 말을 뱉었다. 고성이 오가는 사이에 내뱉은 탓에 충분히 묻힐 만도 한 목소리이지만, 기이할 정도로 사람들의 귀에 확실하게 틀어박혔다.
때문인가?
서로를 향해 거친 고함을 내뱉던 팽도학과 언백준이 꾹 하며 입을 다물었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나?”
“크흠! 위 문주의 생각을 좀 들어 보도록 하지.”
조금 전 보여 주었던 무서운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위천악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때문인지,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팔대세가의 두 가주가 고작 한 마디에 기가 죽다니? 이런 일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의견 따위 아무래도 좋다만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을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군. 저쪽은 이러한 상황까지 다 머릿속에 넣어 놓은 놈들이다.”
그러한 위천악의 말에 다들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팽가를 치는 과정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 놓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지금 당장, 아무런 대책조차 없어 의견이 갈리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저들은 이러한 상황 역시 상정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금만 침착하였다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급박한 상황에 몰리니 그러한 것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던 듯싶었다.
크음-
팽도학과 언백준이 헛기침을 뱉으며 구학진을 바라봤다.
“구 방주의 생각은 어떻소?”
그러한 시선에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쏟아지는 시선이 무겁다.
개방의 방주라는 입장이 이 정도로 무거운 위치였는가?
그저 떵떵 거리만 하면 될 것 같았던 자리가, 실제 올라 앉아보니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장로의 신분으로도 많은 일을 해결하고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방주의 직위는 그보다 더한 무거움이 느껴지며 심리적으로 그를 강하게 압박하는 듯했다.
그가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위천악이 조심스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몇몇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쏟아졌으나, 위천악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시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애초에, 저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전략을 짜면 그만인 것이고, 수라문은 수라문대로 움직여 업적을 쌓아 올리면 되는 것이다.
밖으로 나온 위천악은 그제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인지, 쭉 하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지겨워.”
더군다나 이런 회의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
도란도란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굴릴 놈들은 그리하면 되는 거다.
위천악이 귀찮은 가득한 표정으로 제자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응? 회의가 벌써 끝났소?”
“아니, 지겨워서 먼저 나왔다.”
“그…… 그래도 되는 건가? 하북 무림의 미래가 걸린 회의인데…….”
“미래는 저쪽이 책임지라 해라. 나는 관심이 없단다.”
위천악은 딱히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굳었던 몸을 풀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것 자체가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나 없이도 머리 잘 굴릴 놈들이다. 큰일 없으면 알아서들 잘하겠지.”
“그거야 그런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싶다.”
“무책임하긴…… 힘쓸 줄 아는 놈은 힘써야 할 때 움직이면 되는 거지.”
순간, 담사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무책임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애초에 여기까지 왔으면, 하북 성도를 대표하는 문파로 써 의견도 좀 내고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한데, 위천악은 그런 쪽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 그 순간, 슬쩍 안을 들여다보던 우신장이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 분위기는 어떻소?”
“어떻기는…… 개판이지. 어느 단체든 말이야 위에 선 놈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전체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말에 우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은 하북 무림의 상징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방주인 구학진이 제대로 이들을 이끌지 못한다면, 따르는 이들마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구학진은 틀림없이 개방에 필요한 인재이기는 하지만, 개방과 하북 전체를 이끌어가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그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때다.
묘한 모습에 위천악의 시선에 잡혔다.
어디서부터 달려온 것인지 모를 거지 한 명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안색이 시퍼렇게 죽어 있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위천악이 그가 향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거지는 누구의 허락조차 받지 않은 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