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구학진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패기가 가득했다.
그 취학산이 좋아할 만하다.
정말로 어린 시절의 취학산을 보는 것처럼, 무엇 하나 거칠 것 없이 나아가는 이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했다.
살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제야 구학진은 왜 위천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취학산과 똑 닮은 저 성격.
자신은 두려워 숨고, 무서워 굽히고, 달려들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나아가는 취학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싫은 거다.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봐줄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쯧.”
구학진이 혀를 차고는 가볍게 타구봉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순간, 압축된 강기가 그대로 뻗어 나가며 선이 그어졌다.
가볍게 내지른 한 수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또한, 언뜻보면 검기와도 같은 느낌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초절의 경지에 이른 이의 손에서 뻗어나간 강기.
날아드는 속도도 무섭지만 맺혀 있는 기운이 더욱 소름 끼치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다간 몸이 잘려 나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천악이 주먹을 말아쥐며 냅다 휘둘렀다.
콰아아앙-!
엄청난 진동과 함께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힘과 힘이 부딪치며 터지는 소리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지켜보고 있는 팽도학과 언백준조차 뒤로 밀려 나갈 정도다.
한데,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다.
“저…… 정면으로…… 막아 냈다고?”
심지어 귀찮다는 듯, 위천악이 주먹으로 강기를 막아 냈다.
그 말도 안 되는 모습에, 언백준과 팽도학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날아드는 강기를 막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구학진 정도나 되는 경지에 오른 고수가 뿜어낸 강기를 정면에서 막아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 동등한 경지를 밟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한데, 위천악은 그것을 해내었다.
심지어 그것을 막아 내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위천악의 경지가 곧, 구학진과 동등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가 난다는 말이지 않은가?
이는 두 사람조차 오르지 못한 경지다.
그것을 저 나이에 이루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학진만큼 놀랄 수 있겠는가 싶다.
가볍게 내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공력이 실려 있던 한 수다. 그것을 정면에서 부숴 버렸으니, 능히 경악할 만했다.
있을 수 없다.
어찌 저 나이에 초절의 경지를 이룬 단 말인가?
제아무리 무수히 많은 천재들이 있는 것이 중원 무림이라지만, 다소 도가 지나친 상황이 아닌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타구봉을 움켜쥐었다.
착각이겠지.
아니, 어쩌면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주는 순간, 위천악의 몸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놈!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퍼어억-!
타구봉이 무섭게 옆을 향해 휘둘러졌다.
이형환위의 수법을 이용해 다가서던 위천악의 복부에 그대로 타구봉이 꽂혔다. 아니, 정확히 맞았다 생각을 했던 것은 그저 구학진의 머릿속이 그려 낸 상상에 불과했다.
위천악이 다리를 들어올려 정강이로 타구봉을 막아 냈다.
이윽고 그의 주먹이 뻗어졌다.
콰앙-!
무섭게 휘둘러진 주먹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구학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힘이 바닥으로 때리며 파편이 비산하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비무대 바닥이 흔들렸다.
그때, 위천악이 발을 디뎠다.
쿵!
흔들리던 바닥이 부서지며 떠올랐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편을 걷어찼다.
퍽퍽-!
순식간에 뻗어 나간 파편이 마치 암기처럼 쏟아졌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그 광경은, 쉬이 막을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구학진의 타구봉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의 움직임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사방에서 쏟아져 날아오는 파편을 모조리 쳐 내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어느새 떨어져 있던 위천악이 지척까지 다가왔음을 느꼈다.
순간, 위천악의 주먹과 타구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무섭게 펼쳐지는 주먹과 타구봉이 연이어 휘둘러졌다.
초절의 고수가 펼치는 힘이 오갈 때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연무장이 뒤틀리고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날아갔다.
이윽고 기운을 머금은 채 휘둘러진 타구봉이 위천악의 빈틈을 찌르며 날아드는 그 순간, 위천악 역시 주먹을 내지르며 맞받아쳤다.
콰아아앙-!
두 사람의 힘이 또다시 부딪쳤다.
순간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힘이 퍼져 나갔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날아드는 파편을 쳐 내면서도,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말이 되는가?”
바라보고 있는 팽도학이 숨을 삼켰다.
구학진이 압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 사람 모두 비등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아니 조금 상황이 다르다.
만약, 저러한 이를 자신이 상대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길 수 있을까?
제아무리 패도적인 도법을 가지고 있다는 하북팽가라고는 하지만, 위천악의 주먹질만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더욱이 현재 진을 빼고 있는 것은 오히려 구학진 쪽이다.
짧은 간격임에도 불구하고 위천악의 주먹은 매섭다. 순식간에 파고들고 간격 따위 무시하며 강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중원에서 이름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먹고 장로 직위에 오르면서 한동안 실전과는 거리가 먼 생활한 것이 구학진이다.
반면, 위천악은 아니다.
그의 나이는 이립 초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수라문을 이끌며 무림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는 자다.
자연스레 실전 감각과 체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콰쾅-!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구학진이 아직 크게 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몰아붙이기 위해 힘을 쏟아 내고 있다.
초식에 초식을 더하고, 한 수 한 수 부딪칠 때마다, 마치 젊은 시절 그 노련함을 되찾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화려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이런 곳에서 초절정에 오른 고수의 싸움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때, 더욱 묘한 일이 벌어졌다.
구학진의 타구봉이 날아들며 위천악의 팔을 후려쳤다.
퍽퍼퍼퍽-!
연격을 펼치는 봉법의 힘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게 날아들었다. 위천악조차 제대로 피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한데, 순간적으로 자신의 상의를 찢어 낸 위천악이, 뒤로 물러서며 재빠르게 그것을 손에 쥐어 감았다.
이윽고.
짜아아악-!
휘둘러진 상의는 마치 채찍처럼 타구봉을 쳐 냈다.
순식간에 타구봉이 바닥으로 내려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며 다시금 채찍처럼 손에 쥔 것을 휘둘렀다.
고작해야 상의이기는 하지만 강기가 실려 있는 한 수다. 얻어맞는다면 결코 가벼운 상처로 끝나지 않을 것은 뻔했다.
그 소리가 바람을 찢고 날아들었다.
보통 힘이 아니다.
맞는 순간, 살과 뼈가 부서질 터였다.
하지만, 구학진 역시 노련한 고수다.
그가 재빠르게 개방의 장력을 뿜어냈다.
구학진의 손에서 뻗어 나간 장력이, 채찍처럼 휘두르던 상의를 완벽히 가루로 만들어 내며 관중석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말이 나오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이다.
과연, 개방의 경공과 장력이 무섭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관중석이 완전히 뭉개지며 날아갔다.
뿜어낸 장력에 실린 힘은 그만큼 대단하였으나, 하지만 그것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피해 낸 위천악의 몸놀림 또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언백준과 팽도학이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초절 고수들의 격렬한 싸움은 이들의 호연지기마저 들끓게 만드는 듯했다.
이런 싸움을 언제 보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림맹에서 무림대회가 열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콰콰콰쾅-!
또다시 주먹과 타구봉이 연이어 오가며 강기를 뿌렸다. 비무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고, 더는 그 본연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주변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오로지 서로만 바라보고 있다.
처음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치, 서로의 힘을 인정이라도 한 것처럼 방심하지 않는다. 방심을 하지 않으니 집중력이 끊어지지 않고, 서로를 향한 한 수 한 수가 더욱 정교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언백준과 팽도학은 소름이 끼쳤다.
두 사람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