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그러니까, 뭐야? 역병이 알고 보니 독이었다…… 뭐, 그런 소리인가?”
“그렇다니까, 글쎄. 사천당가의 여식이 해독제를 만든다고 하던데?”
“허…… 대단하구만. 한데…… 이게 독이었다면 그 역귀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귀를 기울이며 생각에 빠졌다. 역병이 아닌 독이라면 독을 푼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어떠한 목적을 위해 독을 풀었다.
그리 생각하는 것이 가장 타당했다.
“거기다가 말일세, 더 이상한 건…… 개방보다 먼저 이 사태를 처리한 것이 다름 아닌 수라문이라…… 이 말일세.”
“뭐……?!”
“더군다나 수라문의 위 문주는 상대의 본거지까지 밝혀내 쳐들어가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네.”
“그뿐이 아니라네. 개방 제자들이 흉수를 만나 죽을 뻔한 것을 수라문의 제자들이 구했다고 하더군.”
사람들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이야기를 입에 담으며 쑥덕거렸다. 특히, 그러한 것을 들으며 평소 개방에 대한 신뢰가 높던 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전에 있었던 사건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던 개방이다.
이후, 무림대회에서조차 참가했던 노위건이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은 채 내려오는 바람에, 개방은 또다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중독 사건.
천하의 개방은 물론이고 팽가와 언가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하늘과도 같았던 그들에 대해 절대적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흔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당가의 여식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독제를 찾았단 얘기도 있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그리 들었소! 도대체 누가 이 단 시간에 만들어 냈답니까?”
독을 다루는 것에 있어 최고라 불리는 사천당가는, 그 반대인 약이나 해독제를 만드는 것 역시 제일이라 칭송받는 곳이다.
한데, 이번 사태는 조금 다르다.
사천당가의 여식인 당주려가 한 것이라고는, 역병이 아닌 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고, 후로는 이미 만들어진 제조법으로 해독제를 양산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그것을 누가 만들었냐 하는 데 쏠렸다.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극독인 데다, 그 어떤 의원조차 손을 쓰지 못했던 것임이 분명하기에, 이 해독제를 만든 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약왕문…… 이라고 하던데?”
“약왕문? 그런 곳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그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얼마나 약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이름부터 약왕문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문파이름이 결코 잘못된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 해독제를 단시간에 만들 수있는 곳이라면, 약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지 않은가.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어느 곳에 있든 곳인가?
“나 지나가다 보았네!”
순간, 한 사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갑작스런 눈빛 때문인가?
깜짝 놀란 사내가 긴장한 듯 숨을 삼켰다.
“그…… 것이 말일세…….”

* * *

“이게 대체 뭐냐?”
위천악은 대문 위에 걸려 있는 현판을 지그시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이 화려한 글씨체로 수라문(修羅門)이라 쓰여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살짝 밑으로 커다란 목패가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약왕문(藥王門).

그 광경에 기가 찬 위천악이 입을 벌렸다.
목패가 새겨져 있는 자그마한 글자까지 전부 확인을 해 보자면, 정확히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라문(修羅門) 안 약왕문(藥王門)
누가 봐도 그 사람이 걸어 놓은 게 분명해 보이는 그 상황에, 위천악은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영감-! 영감!”
이어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크던지, 쉬고 있단 제자들마저 깜짝 놀라 하나둘 밖으로 나올 정도였다.
특히, 아직 잠에서 덜 깬 우신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러는 거요? 아침부터 시끄럽게.”
“너 밖에 걸려 있는 거 못 봤냐?”
그 한마디에 우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야 봤지.
아침 수련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공이 수라문의 현판 옆에 약왕문의 현판을 거는 것 또한 보았다. 너무나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자그마한 약왕문의 현판을 걸더니, 함박웃음을 지은 것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를 닮은 건지 참…….
우신장이 작은 한숨을 쉬었다.
“진즉 봤소.”
“그런데 나한테 말도 안 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시오. 암향문의 현판은 부서지기까지 했는데…… 수라문의 현판이 부서진 건 아니지 않소.”
“…….”
“더군다나 이미 눌러살라고 저리 들어앉아 있지 않소. 수라문 안에 약왕문의 현판까지 버젓이 걸어 놓고 있는데, 대문 현판에 하나 더 달아 놓았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살던 곳에서 쫓겨 난 우신장이다.
하지만 화가 오히려 복으로 돌아온 것인지, 허름하고 좁은 창고와도 같은 곳에서, 지금은 제자들이 머무는 전각에 새로운 둥지를 텄다.
방 크기는 살던 곳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깔끔하고 어디 하나 망가진 곳 없이 없으며, 풍기는 기분 좋은 나무 냄새는 우신장의 만족감을 더욱 높였다.
홀로, 예전 그 창고와 같은 집에서 머물며, 창밖으로 보이는 제자들의 전각을 눈에 새길 때 얼마나 비참했던가?
그렇기에 우신장은 유공이 눌러앉은 것에 딱히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위천악은 제법 억울한 모습이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남의 집에 예고도 없이 눌러앉지 않나…… 멋대로 현판을 걸어 버리지 않나…… 뭐, 이런 염치없는 인간이 다 있는 거지?”
“…….”
들려오는 말에 우신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위천악을 바라봤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인가?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한 말이 있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고 피해자만이 그때를 기억한다. 아무리 봐도 위천악은, 처음 암향문에 들어섰을 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여튼 똑같은 인간들이다.
“네놈은 아침부터 시끄럽게 왜 짖어 대는 게냐?”
그때, 약왕문(?)의 문이 열리며 유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껏 인상이 찌푸려져 있는 것을 보니,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위천악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위천악 역시 마찬가지다.
“영감, 남의 문파 현판에다 무슨 짓을 하거냐?”
“뭘 하긴, 인석아. 우리 약왕문이 여기 있다…… 뭐 그런 걸 알리기 위해 현판을 거는 거 아니더냐? 해서 걸어 놨지.”
뻔뻔하기 짝이없는 말에 기가 찬 위천악이, 순간 할 말을 잃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찌 저런 말을 하는데, 표정에 한 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일까?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여긴 수라문이다.”
“으흐흐, 내 그걸 몰라 걸어 놨겠느냐?”
“알면서 했다?”
“내 들어 보니 네 녀석, 남의 땅에 세도 내지 않고 문파를 세웠더구나. 한데 나는 수라문 놈들처럼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 ‘집주인’에게 다달이 세를 주기로 하고 허락을 받은 것이야 인석아.”
순간, 위천악의 시선이 우신장을 향해 돌아갔다.
그 때문인가?
우신장이 움찔하며 몸을 떨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말하지 말라니까…….
“허락했다고?”
“아, 그…… 뭐냐…….”
들려오는 스산한 한 마디에 우신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유공과 유소하가 함께 찾아와 부탁을 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간절함이 깃든 유소하의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희…… 여기서 나가면 길바닥에서 생활을 해야 해요…… 잠시 머무르는 것이니 제발 부탁드려요.”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와 쳐다보는데, 어느 남자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결정타나 다름없는 한 마디도 우신장의 마음에 쏙 들었다.

“세는 은 다섯 냥. 절대 밀리지 않을께요.”

은 다섯 냥이란다.
위천악이 금호상단의 호위로 우신장에게 건네 준 돈은, 목숨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자 한 냥에 지나지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달이 다섯 냥씩 들어온다.
아직,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우신장에겐 엄청나게 큰돈이다.
역시, 사람이 편히 살려면 땅이든 건물이든 뭐든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세를 줄 수는 있고?”
한데, 위천악은 그러한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한껏 비꼬는 표정으로 유공을 바라봤다. 말이 좋아 약왕문이지, 산골 오지에 틀어박혀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약을 팔아 봐야 얼마나 사가겠는가?
더군다나 약왕문은 수라문 안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수라문의 꺼림칙한 분위기 탓에 근처에도 오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잘도 약왕문을 찾아오겠다 싶었다.
“으흐흐, 네 녀석의 의술은 돈이 되지 않을 테지만, 이 유공의 약은 돈이 된다, 인석아.”
“잠꼬대는 자면서 해, 영감.”
위천악과 유공이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마치, 서로의 의술 혹은 약술을 자신들이 가진 기술에 비해 떨어진다 생각하는 듯한, 그러한 비웃음과도 같았다.
위천악은 의술 따위에 큰 흥미를 가지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스승에게 물려받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뒤처진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약왕문의 문주 유공 역시 못지 않았다.
의선은 분명 제자를 구하기 위해 중원을 떠들며 많은 이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그 덕분에 의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지만, 자신 역시 같은 행동을 하였다면, 약선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당한 그 모습에 우신장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