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초인에게 있어 붉은 열매와 초록 열매의 효율은 대단하다.
신입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영약’이라는 표현만큼 좋은 비유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붉은 열매를 먹으면 입었던 부상도 모조리 회복되니까 거의 환골탈태에 준하는 효과도 있고.’
그런 이유로 살판이 났는지 눈이 반쯤 돌아간 이소희는 나현이를 살대로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소희도 ‘진짜 S급’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나름 수준 높은 초인인 것은 사실이다.
유현성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마력의 흐름을 깨달았는지 차츰차츰 이성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움직임을 멈춘 이소희가 헐떡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내, 내 몸이 왜 이러지……?”
중얼거리는 이소희에게 나현이가 말했다.
“아까 먹은 열매가 마력 회로를 강화해 줬거든. 그 대신 아팠던 거고.”
“저, 정말인가요……?”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이소희의 얼굴에 가장 먼저 당황이 떠올랐고, 경악 다음으로 감격이 따라왔다.
그런 이소희를 바라보던 나현이가 말했다.
“저기, 오빠.”
“응?”
“열매 먹인 다음은?”
“아. 다음.”
느릿하게 몸을 풀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도 슬슬 제대로 힘을 써 봐야지.”
“역시 그렇지?”
스산하게 웃는 나현이를 본 신입들의 몸이 퍼뜩 굳어 버렸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련하면서 중첩 특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무기인데도.
하지만 열매를 먹고 마력 회로가 강화되고, 새로운 특성을 얻은 녀석들을 상대로 지금까지처럼 손대중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최소한 2:1을 해야 할 테니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겠지.’
유현성에게 턱을 까딱거렸다.
“너는 이소희랑 팀 짜서 나현이랑 대련.”
“옙!!”
유현성의 즉각적인 대답에 고정훈이 외쳤다.
“선배님! 제가 소희랑 같이…….”
“야, 너는 새로 얻은 특성이 뭔지 알아 봐야지. 유현성은 이소희랑 같이 마력 회로만 강화된 거라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거고.”
유현성이 훌쩍 달려가고, 불만이라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민 고정훈에게 말했다.
“특성 찾고 나서 팀을 짜든 결혼을 하든 너 알아서 하시고, 일단은 특성부터 찾아.”
“……쩝, 알겠습니다.”
다행히 이미 선인들이 남겨 둔 발자취가 있다.
‘용왕의 편린으로 얻은 특성이야 뻔하지.’
녀석들에게 답지를 내밀었다.
“기상 조작, 뇌기 조작, 염동력, 경화, 연성. 아마도 이 중에서 하나일 거다. 한번 시험해 봐.”
고정훈과 임성철이 눈을 감은 채 마력에 집중했다.
곧이어 임성철은 뇌기 조작 특성을, 고정훈은 경화 특성을 얻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흠, 잘도 골라잡았군. 임성철은 애초에 고속 기동, 절단 특성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서 뇌기 조작과 궁합이 잘 맞겠지. 응용하기에 따라서 엄청나게 위협적일지도.’
고정훈이야 뭐, 오현중과 비슷하게 온갖 서포터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경화와 궁합이 잘 맞을 터.
지형지물을 단단하게 굳혀서 방벽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거고, 장비를 경화시켜 줄 수도 있고.
짝-!
박수를 치며 녀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좋아, 그럼 특성이 뭔지도 알았으니까. 우리도 슬슬 시작하자. 마침 저쪽도 잘 놀고 있는 모양이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나현이, 이소희, 유현성이 있는 방향에서 굉음과 함께 온갖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말에 긴장한 얼굴로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특성 얻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적응할 겸, 천천히 하자.”

* * *

“딴~ 따라다단.”
“…….”
“딴! 따단 딴!”
쓰러진 고정훈과 임성철의 목에 아까 압수했던 ‘진짜 S급’ 명찰을 걸어 줬다.
다만 거기에는 새로운 글귀가 추가되어 있었다.
‘진짜 진짜 S급.’
이 정도면 정말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S급 초인이었다.
농담기 싹 빼고, 이 정도면 현역일 때의 우리는 서전트 점프로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다듬어 주면, 얼마 전에 졌던 빅스타들한테도 가뿐하게 이기겠는걸?’
그 정도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기야 애초에 잠재력이 남달랐던 놈들이니.
‘게다가 열매를 먹은 것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중첩 특성까지 익힌다면?’
그야말로 황금기의 세대교체일 터.
물론 꾸준한 단련으로 마력의 총량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하는 만큼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추세를 보면 시간문제다.
‘협회장, 보는 눈이 있군. 이런 녀석들을 어디서 홀랑 집어 왔을까?’
차나현 은퇴의 날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엎드려 있는 고정훈과 임성철의 등을 두드려 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앞으로는 마력의 총량을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겠다.”
“끄으으…….”
“그 방법은 알지?”
껄껄 웃으며 녀석들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매번 이렇게 탈진할 때까지 마력을 쥐어짜기만 하면 돼! 이 얼마나 쉬운 일이냐!”
파들파들 떠는 녀석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아, 당연히 개인적인 기술 숙련도 빼먹으면 안 돼. 그 정도는 알지?”
“……그냥.”
“응?”
“죽이십쇼.”
“하하, 녀석.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아.”
징징거리는 고정훈의 등을 툭툭 두드려 준 후 나현이에게 다가갔다.
마침 그녀도 대련을 끝낸 모양이었다.
다만 나와는 달리, 이소희와 유현성과 둘러앉은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충 듣기론 조언 같은 걸 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음, 나현이가 교육자로서의 자질은 조금 떨어지는구나. 저렇게 말랑말랑한 방식으로 무슨 후진을 양성한단 말인가. 자고로 가르칠 땐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끊임없이 갈궈야…….’
하긴, 아무리 완벽한 나현이라도 모든 걸 잘할 수는 없겠지.
이소희와 유현성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자, 받아라.”
“예? 아…….”
진짜 진짜 S급 명찰을 돌려주자 유현성은 눈에 보일 정도로 기뻐했고, 이소희는 금세라도 문드러질 것 같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집에 장식해 둘게요.”
“목에 걸고 다녀.”
“싫습니다.”
아쉽군.
“근데…… 이소희.”
“네?”
“전에 줬던 명찰은 버렸구나?”
이소희가 흠칫했다.
“아닌데요.”
“아니긴 뭘 아니야. 예전에 줬던 거랑 다른 명찰인데. 내가 가지고 오라고 하니까 부랴부랴 새로 만들어온 거지? 너뿐만 아니라 고정훈도.”
정곡을 찔렸는지 이소희는 입을 다물었다.
유현성은 명찰을 흔들며 말했다.
“슨배임!! 저는 안 버리고 간직하고 있었슴다!!”
“알아. 임성철도 안 버렸더라. 근데 걔는 그냥 귀찮아서 어디 그냥 대충 던져 뒀던 것 같고.”
아무튼,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뭐, 딱히 줄 것도 없고 해서 주는 건데, 그래도 거기 적은 건 진심이다. 이제 너희들도 어디 가서 진짜 S급이라고 자부해도 된다는 뜻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황금기, 황금기 하잖아. 근데 그게 계속 너희 앞길을 막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이름값은 무시 못하니까. 근데 내 생각엔 그것도 조만간이야. 조만간 우리 이름은 잊힐 테니까.”
최근 들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초인청의 공식 행사 등에는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있는 강성준은 머지않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흐려질 터.
나도, 나현이도, 태윤이 형도.
또한 모든 게 끝난다면, 초인으로서의 활동은 최대한 자제하며 평온하고 느긋한 삶을 살아갈 터.
그럼에도 예전의 황금기와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미래의 황금기’를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한테 기대를 조금 과하게 하는 감이 있고, 그만큼 혹독하게 다루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해.”
묵묵히 듣고 있던 이소희가 피식 웃었다.
“바라지도 않아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녀석들을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잠시 후, 피로로 탈진한 녀석들을 빈방에다가 대충 던져 넣은 후 거실로 나왔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인지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소파에 앉은 채 드라마를 보던 나현이가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