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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늦은 밤.
야식을 준비하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생각할 거리가 꽤 많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많군.’
미국에서 빅스타와의 서열 정리도 해야 하고 그들이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게이트 생성’ 기술에 대해서도 알아 봐야 한다.
‘미국의 나노 입자기 기술에 대해서도 알아 봐야 하고.’
나노 입자기에 대한 건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태한정공이 미국에 진출해서 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솔직히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손 대표와의 친분을 생각하면, 또한 지금까지 태한정공이 내게 제공해 줬던 서비스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패망이 가슴 아프긴 할 테지만.
‘애초에 기업 간의 일은 내가 왈가왈부할 건 아니니까.’
게다가 부자는 망해도 3대는 먹고 산다고 했다.
그러니만큼 태한정공의 미국 진출의 성패보다 미국산 나노 입자기의 성능이 얼마나 대단할지의 궁금함이 앞서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까지 도움받은 게 있으니만큼 당장 미국산 나노 입자기로 갈아탈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후보군으로 생각할 수는 있을 테니까. 뭐, 내가 태한정공에 주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판에 올릴 삼겹살로 집게로 뒤적거리다가 슬그머니 손이 멈췄다.
‘……라고 할 때 살걸?’
발상의 전환을 해 보자.
미국에 진출해서 망하건 말건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하게 만든다면?
‘빅스타에 나노 입자기를 사용하는 초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내가 태한정공의 나노 입자기를 사용해서 그놈을 꺾어 버린다면……?’
태한정공의 주가는 감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구칠 게 분명했다.
거기에 넣어 둔 내 돈 역시 새끼를 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불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돈 욕심이 크게 없긴 해도, 땅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빅스타를 이겨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질 생각은 없으니까.’
질 생각부터 하고 싸우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아무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손 대표가 주고 간 돈 가방이 아직 그대로 있었지?’
건드렸다가 괜히 코 꿰일까 싶어 손가락도 대지 않았던 돈 가방은 여전히 장롱 깊은 곳에 고이 잠든 채 그대로였다.
그 돈을 몽땅 태한정공 주식에 박고, 일이 잘 풀린다면?
‘난다, 돈 냄새가 난다…….’
삼겹살 타는 냄새인가?
불판 위의 삼겹살을 얼른 뒤집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조금이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잘 익은 삼겹살을 세 점이나 넣은 쌈을 입에 쑥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지.’
아무튼 미국의 일은 대충 그 정도고.
‘일본에서도 할 일이 있지.’
차차후가 신화와 관련된 것들과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점이다.
그리고 일본에는 유독 그런 게 많다.
‘곳곳에 이름도 모를 신사 같은 게 널려 있다고 할 정도니까.’
그래서인지, 일본은 신화 관련 게이트의 발현이 엄청난 속도로 이뤄지고 있어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언뜻 본 신화 관련 게이트의 관측 수가 중국과 비슷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국이 땅덩이가 훨씬 넓고 인구도 훨씬 많은데 말이다.
‘아마테라스 작전 때처럼 외국에 지원을 요청할 정도까진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도 죽도록 구를 정도로 바쁘다던가.’
아무튼 그 말은 즉 ‘표본’이 많다는 뜻이다.
법칙에게 농락당해 미쳐 버린 신화.
그런 존재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으니, 차차후라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법칙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더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밍은 미국에 다녀온 이후가 좋으려나?’
미국에서 게이트 생성 관련 기술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일본에서의 일을 진행하는 것도 그만큼 수월할 테니 말이다.
‘저번에 차차후도 의욕을 보였으니 같이 가자고 하면 좋아라 하겠지?’
날 지켜 준다네 뭐네 했으니까.
‘당당한 사내가 되었구나, 차차후야.’
흐뭇하게 웃으면서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시각.
잠자리에 들었다가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차차후는 이불(흙)을 팡팡 걷어차고 있었다.
-내가 대체 왜 그랬던 차후!
예전에 용왕과의 뜨거운 격전을 치른 후.
호기롭게 ‘제가 주인님을 지켜드리는 차후!’ 하며 자신만만하게 외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언제든지 위험한 곳을 따라다니겠다는 뜻과 다를 게 없었다.
-차흐흑…… 제 명에 죽지 못하게 된 차후…….
하지만 당당한 차후족의 군주로서 한 번 내뱉은 말을 번복할 수도 없는 일.
잠자리에 들었던 차차후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격렬한 싸움에 대비하여 ‘면봉’을 들고 훈련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기왕 낸 용기,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는 차후!!
차차후가 면봉을 휘두르며 용맹하게 외치고.
옆 굴의 차후가 벽을 두드리며 소리를 꽥 질렀다.
-잠! 좀!! 자는 차후!! 혼자 사는 차후?
-차훗!? 미, 미안한 차후!
차차후는 곱게 잠이나 자기로 했다.

* * *

-아이고, 성준 총각이 파는 것들이 믿을 만한데 이를 어쩌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꼭 가 봐야 해서요.”
-그래, 휴가를 간다니 어쩔 수 없지. 돌아오면 꼭 연락하게.
“물론이죠, 사장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한숨을 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휴, 이걸로 마지막 거래처도 끝났구나.”
물건을 떼다 주던 가게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 한 바퀴 전화를 싹 돌렸는데 다행히 다들 너그럽게 이해해 줬다.
휴가도 젊을 때 가야 하는 법이라며 재밌게 놀다 오라는 사장님까지 계셨다.
그리고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옆에 앉아서 연신 과자를 우물우물 먹고 있던 오현중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거래처는 무슨. 차 장사나 하는…….”
오현중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태윤이 형이 휘두른 솥뚜껑만 한 손바닥에 맞고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았기 때문이다.
“자식아,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꺽, 커헉…….”
태윤이 형의 한발 빠른 처벌.
꽉 쥔 주먹을 스르르 늘어뜨렸다.
‘인중에 정권을 박아 주려고 했는데, 아쉽군.’
직업에 귀천은 없다.
그 안에서 사람이 나뉠 뿐이지.
그 증거로 분명 같은 초인인데도 오현중의 인성이 독보적으로 못나 빠지지 않았는가.
아무튼 오현중의 물리적인 처벌은 태윤이 형이 대신해 줬고.
‘나는 오현중의 과자를 압수한다.’
기절이라도 했는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끙끙대는 오현중의 과자 봉지를 슬그머니 빼서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어우, 달다. 달아.’
진짜 달다.
‘당뇨 걸릴 만한 맛인데, 이런 걸 입에 달고 살아?’
텅 빈 과자 봉지를 오현중의 옆에 슬그머니 내려놓은 후 태윤이 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언제 온대?”
“글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슬그머니 시계를 바라봤다.
내가 초인청에 도착한 지 벌써 한 시간째.
시루와 콩이, 꼬꼬들은 소영이 어머니께 진작 부탁드렸으니 이제 마음 편히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다들 왜 이렇게 안 온대?’
설마 일이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팔짱을 낀 채 괜히 다리만 달달 떠는 와중, 회의실의 문이 열리더니 협회장이 안을 슬쩍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이, 강성준.”
“예, 협회장님. 이제 준비 다 끝났습니까?”
몸을 일으키자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협회장이 뭔가를 쑥 내밀었다.
“이거나 입어라.”
“응?”
“치수는 옛날 그대로지?”
협회장이 내민 것은 양복 한 벌이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 지금 내 차림새를 슥 훑어봤다.
카키색 야상에 건빵 바지.
미국에 간다고 옷장에서 무난하게 꺼내 입은 건데, 협회장 눈에는 영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 하긴, 미국에 큰일 하러 가는데 후줄근한 감이 조금 있긴 하지.’
협회장이 챙겨 준 양복으로 갈아입던 와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치수는 옛날 그대로냐고?’
그럴 리가 있나.
와이셔츠 단추를 한 개 풀었는데도, 지나간 세월은 올가미가 되어 내 목을 조이고 있었다.
‘……바지는 벨트를 느슨하게 하니까 입을 만한데 와이셔츠는 단추 하나로는 절대 안 되겠군.’
단추를 두 개 푸니까 그럭저럭 숨을 쉴 만하다.
넥타이는 아예 맬 생각도 않고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은 후 걸음을 옮겼다.
“좋아, 그럼 슬슬 갑시다.”
“그래. 근데 야상은 왜 들고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