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대단하기 그지없는 타이틀.
무려 ‘오현중의 약혼녀’인 류백화.
우선 첫 번째, 그녀의 외견을 살펴보니 절로 내 입에서 안타까움의 한탄이 흘러나왔다.
‘저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오현중을……?’
절대 오현중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우리 현중이, 얼마나 잘났어.
인성이 터져서 그렇지.
그렇기에 주둥이만 다물고 있으면 오현중도 류백화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천하의 오현중이 그 입을 다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두 번째,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류위천 영감님과 미국의 빅스타가 싸우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서 그 싸움을 말리려 하고 있다고?’
선하디 선한 마음을 지닌 여인이 분명하리라.
그런 오현중이 류백화와 홀랑 약혼을 맺었다고?
입만 열면 쌍욕이 줄줄 흘러나오고, 남을 비하하는 저주의 발언을 달고 살고, 틈만 나면 상대를 홀랑 잡아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오현중이 아니던가.
그런 못된 오현중이 선한 류백화와 약혼했다면.
답은 두 가지뿐이다.
‘이 새끼, 사기 결혼이구나. 아니면 협박을 해서 강제로 약혼반지를 끼운 것이렷다.’
오현중이 한국 초인성의 위상을 제 등에 업고 혀를 날름거리며 ‘켈켈켈, 나랑 약혼하지 않으면 한국 초인성의 힘을 동원해서 국가 초인처를 폭삭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고 류백화를 겁박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간교하기 그지없는 오현중의 혓바닥을 감안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대체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중국을 향한 거대한 외교적 결례로 인한 파문이 일파만파 퍼져 갈 것이고, 국가 초인처의 지지도 태풍을 눈앞에 둔 호롱불처럼 위태해지리라!
협회장이 공들여 쌓은 탑이 와장창 무너지는 꼴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오현중이 호롱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홀린 것처럼 류백화에게 다가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 돼! 이 새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오현중을 붙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이 천하의 오현중이 도대체 무슨 수로 류백화를 홀랑 구워삶은 것일까?
또한 앞으로 벌어질 일 때문에 협회장은 무슨 얼굴을 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릴까?
의문을 담은 채, 성준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언제든지 오현중의 뒤통수를 때릴 준비를 마친 후 오현중의 행보를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류백화와 류위천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오현중이.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조(丈祖)님.”
근 10년간 오현중과 알고 지냈음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현중의 정중하고 예의 바른 인사에 성준이 경악으로 입을 쩍 벌렸다.
충격을 금치 못할 광경.
오현중이 아주 작정하고 예의를 차리려는지 중국의 인사인 공수(拱手)로, 그야말로 천하 대장부처럼 헌앙한 얼굴로 류위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저, 저 당최 무슨……!?’
오현중과 예의(禮儀).
부자연스러운 단어의 나열에 성준이 경악하고.
백성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지고, 조태윤의 입가를 타고 침이 흘러내렸으며, 차나현은 차마 보기 힘든 광경이었는지 이마를 짚은 채 ‘아!’ 하는 작은 탄성을 지르며 현기증으로 몸을 휘청거렸다.
그렇게 네 사람이 충격과 공포에 휩사인 와중 오현중의 인사를 받은 류위천의 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그가 스르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손녀사위 아닌가. 할아버님이라 부르게.”
“후후, 할아버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부드러운 오현중의 웃음과 목소리.
뒤에서 지켜보는 네 사람에게서 ‘끄윽, 웩!’ 하고 숨넘어가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오현중은 애써 그 소리를 무시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할아버님.”
오현중이 부드럽지만, 스산한 미소를 지은 채 류위천과 대치하고 있는 아론을 슬며시 바라봤다.
“이자는 누구인지 여쭈어도 될는지요?”
“……허허허, 이자 말인가.”
류위천이 허허 웃는 와중.
류백화는 잠시 갈등했다.
약혼 여행에서 오현중과 싸웠으니만큼 지금은 살짝 서로가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더구나 할아버지인 류위천의 앞이다.
지금은 ‘착한 손녀’와 ‘착한 손녀사위’로 보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입술에 침을 바른 류백화가 입을 열었다.
“오 가가(哥哥)…… 이분은 미국에서 오신 분입니다. 아론 레오나드 리치먼드라는 분이신데 할아버지와 작은 언쟁이 있어서…….”
아론 레오나드 리치먼드.
미국에서 활동했던 오현중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미국의 빅스타 중 1인.
또한 빅스타 6위.
얼굴까지는 모르지만, 그 이름을 들은 이상 오현중은 그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빅스타, 아론? 이 사람은…….’
이미 빅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시점에서 아론의 실력은 의심할 바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실력에 반비례하듯 그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이미 올리버의 폭로로 인해 비리 논란에 휩사인 적이 있었던 그이니만큼, 미국 초인계 내부에서 들려오는 그의 ‘소문’은 좋은 구석이 없었다.
‘그런 놈이 할아버님과 언쟁이 있었다고?’
필시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시비를 건 것이리라.
하지만 오현중은 애써 그 속내를 감춘 채 화사하게 웃으며 아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치먼드.”
한창 류위천과 대치하고 있던 아론은 슬쩍 눈을 내리깔고 오현중을 바라봤다.
“그쪽은?”
“한국 초인청의 오현중입니다.”
“……오현중?”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론이 ‘아아!’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키득거렸다.
“미스터 오? 얼굴을 보니 이제야 기억나는군.”
“……예?”
빅스타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오현중이 잠시 의문에 잠겨 있던 와중, 아론이 말을 이었다.
“올리버, 그 씹어 먹어도 모자랄 새끼와 함께 스쿼드로 활동하던 놈이었군. 그래, 올리버는 잘 지내나?”
아론은 어느새 희미한 살기까지 묻어 나오는 눈빛으로 오현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올리버가 폭로한 비리 논란으로 인해 한번 고초를 겪은 적 있었다.
그 탓에 실추된 명예, 실적 등을 수습하기 위해 이런 작전 따위에도 파견을 오는 신세가 된 거고.
아론이 오현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자식, 몸조심하라고 전해 줘. 혹시라도 내 눈에 뜨이면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릴 테니까 미국 땅은 밟을 생각도 하지 말라 하고.”
“…….”
잠자코 듣고 있던 오현중이 빙그레 웃었다.
딱히 되돌려줄 말도 없었고, 무엇보다 입을 열어 버리면 구수한 쌍욕이 나올 것 같았기에 억지로 입술을 닫고 미소로 얼버무리려 한 것이다.
그런 오현중의 미소를 본 아론의 뺨이 씰룩거렸다.
‘거참, 성격도 좋은 놈이로군. 면전에다 이런 말을 들어도 태연하게 웃어넘기다니.’
아론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는 와중.
제삼자로서 이 상황을 뒤편에서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지켜보는 성준 일행은 수군대고 있었다.
“저, 점마 지금 뺨 때린다. 바로 지금……!”
“아냐. 현중이도 한 번 정도는 참을 거야.”
“……참아? 현중이 형이? 현중이 형은 오줌이나 똥도 안 참고 그 자리에서 싸 버리는 사람이야.”
“오현중은 ‘참는다.’라는 말 자체를 모르지 않아?”
오현중이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들의 말은 다 들린다.
‘백성곤, 너는 내 손으로 꼭 죽이고 만다.’
하지만 일행의 의견에는 동감이다.
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건실하고 인성 좋은 손녀사위’를 바라보는 류위천의 눈빛이 뒤통수에 박히고 있는 시점이다.
‘참자. 여기서 내가 나대면 일이 더 커진다.’
억지로 쥐어짠 미소를 지은 오현중이 사람 좋게 껄껄 웃으며 아론에게 말했다.
“하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
“모르면 빠져.”
“하, 하하. 일단 진정하시고…….”
“Fuck you. Get out of my face right now.”
오현중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뚝 솟았다.
그 광경에 성준이 일행 틈에서 수군거렸다.
“지금! 지금 주먹 날린다. 싸대기 날아간다.”
하지만 성준의 기대가 무색하게, 오현중이 크게 심호흡하며 징징 우는 주먹을 허리 뒤로 감추고.
그 광경에 성준 일행이 경악했다.
“와, 저걸 참네.”
“현중이 다 죽었네.”
“저게 사랑의 힘인가?”
“징그러워.”
일행이 충격으로 수군대는 와중.
아론도 놀랐다.
‘……이걸 참아?’
일부러 도발을 한 감이 있었다.
조금 전의 언쟁은, 아론이 류위천과 동행한 류백화를 눈독 들이고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사심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은 중국과 사실상 ‘적대’하는 입장이라고 봐도 좋았다.
겉으로야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뒤로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런데 류위천이라는 놈이 도통 도발에 넘어올 생각을 않았는데, 이놈마저 그럴 줄은…….’
만약 도발에 넘어왔다면, 일이 꽤 재밌었을 텐데.
허탈한 헛웃음을 흘린 아론이 몸을 돌렸다.
흥이 완전히 식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