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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소고기는 맛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앙증맞은 문제가 있다면, 기름져서 많이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의 양을 감안하면 돼지 삼겹살과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 소고기는 묘하게 물리는 감이 있다.
‘……이건 그냥 내 입맛이라 그런가?’
하기야 내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조금 더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소고기를 먹어 줘야지. 오현중 그놈 때문에 심장마비가 올 뻔했는데.’
그러나 말했듯 소고기를 먹다 보면 물릴 것 같았기에 밑반찬을 충실하게 준비했다.
파절이, 상추 겉절이, 묵은지, 담은 지 얼마 안 된 김치, 고기와 함께 구워 먹을 버섯에 마늘.
‘찍어 먹을 소금까지.’
소고기는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지만, 모 화백이 그린 ‘식X’에서도 나오듯 좋은 고기는 ‘소금’ 하나면 충분하다.
‘게다가 가뜩이나 기름진 소고기를 왜 기름장에 찍어 먹는 건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어…….’
뭐, 취향 차이겠지.
아무튼 대비가 끝났으니 나현이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근데 왜 이렇게 안 오지?’
혹시 늦나, 바쁜 일이라도 생겼나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하려던 순간.
느닷없이 협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예, 협회장님.”
-그래. 지금 어디냐.
“어디긴요. 집이죠. 근데 오늘 혹시 바쁩니까?”
협회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쁘지.
“아잇, 어쩐지 나현이가 안 오더라니.”
최근에는 우리 집에 자주 머물고 있지만, 나현이는 당당한 현역이니만큼 협회에 일이 터져 버리면 당연히 그곳에 머물며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근데 뭔 일이랍니까? 게이트라도 터졌어요?”
하지만 현재 협회에 머무르고 있는 전력은 예전을 아득하게 넘고 있었다.
신입들도 이제 제대로 한몫을 하게 됐고, 오현중도 협회에 대기하고 있으니.
‘태윤이 형은 나처럼 순조롭게 은퇴 코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반쯤은 현역이라 서울에 다녀오며 일을 봐 주고 있는 모양이고.’
뭐, 성곤이는 일본에서의 일 때문에 당장 귀국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 같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금의 전력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서울에 게이트 하나 달랑 생겨났다고 나현이가 못 올 정도로 상황이 급하진 않을 텐데?’
뭐, 4레벨 게이트 정도면 ‘초 비 상’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거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고.’
제주도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작은 공화국 하나를 멸망으로 이끈 4레벨 게이트가 나타났다면 당장 이곳 강원도도 대피 사이렌이 울리고 난리가 났을 터.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던 모양인지 침묵하던 협회장이 숨을 훅 내뱉으며 말했다.
-티브이 좀 보고 살아라.
“응? 웬 티브이?”
-지금 온 세상이 난리가 났어. 켜 봐.
영문을 모르겠군.
일단 티브이를 켰다.
그리고 대충 채널을 돌려 지상파가 나온 순간.
“……어라?”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미스터 올리버.
그가 강단에 올라서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슨 연설을 하고 있었다.
웬 서류 뭉치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아래로 나오는 자막들.
-지금껏 초인 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빅스타’들이 저지른 비리 명단입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게. 무슨.”
-어때? 난리가 날 만도 하지?
“…….”
뭐, 사실 윗사람들이 이런저런 구실로 자기 주머니를 챙긴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물론 개중에서는 정말로 청렴결백한 사람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털면 먼지가 나온다.
가끔은 큼직한 덩어리도 나온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안 들키게 몰래몰래 해 먹는 게 대부분이니만큼 쉽사리 건드릴 수가 없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어쩌다 한 놈이 들통 나면 흠씬 얻어맞고 하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말했듯,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 것이다.
자기도 해 먹고, 남도 해 먹고, 서로 먹여 주고, 좋은 거 있으면 서로 나눠 먹고, 낮에는 서로 으르렁대다가 밤 되면 서로 술 한잔하고.
그러니만큼.
“오, 올리버 저 양반…… 돌았습니까? 저 사람 미국 초인 위원회 소속 하원 의원이잖아요? 정치인이잖아요? 근데 저렇게 비리 폭로를 터뜨렸다고?”
저 메시지의 의미는 분명하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죽어 보자, 이 시발롬들아.’
서로 다 같이 해 먹는다니까?
그럼 한 놈이 걸리면 두 놈이 딸려 나오고, 두 놈이 딸려 나오면 네놈이 우르르 튀어나오고, 무슨 줄줄이 소시지처럼 비리와 연관된 인간들이 싹 다 끌려 나올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미스터 올리버의 앞에 모여든 기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그가 쥐고 흔드는 ‘명단’에 열광하고.
올리버는 껄껄 웃으며 명단을 펼쳐 비리 의혹이 있는 이름을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미친…… 저기에서 오현중 이름 나오는 거 아니야? 그놈, 미국에 있을 때 뭐든 해 먹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협회에 왜 ‘초 비 상’이 걸린 건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협회 정문 꼬라지가 예상이 되네요.”
뭐? 미국 초인들한테서 비리 사건이 터졌어?
그럼 한국 초인들도 다를 것 없겠네?
파티다!! 하며 기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리라.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협회장이 툭 내뱉었다.
-씨발 새끼들, 잘하고 있을 땐 관심도 없다가 뭐든 물어뜯을 건수가 나오니까 개떼처럼 몰려들어서 지랄을 해 대는군.
“음…… 동감합니다.”
그나저나.
“근데 협회장님.”
-왜.
“저한테만 솔직히 말해 주십쇼. 녹음 안 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 줘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하게, 얼마나 해 먹었어요? 나한테만 살짝 말해 주십쇼.”
협회장이 꾸짖을 ‘갈’을 외쳤다.
-웃기지 마. 그쪽으론 생각도 해 본 적 없어.
“……정말요?”
-예전에 신입들 교육 건으로 너한테 밥 사 줄 때도 내 사비 쓴 거 기억 안 나냐? 적어도 나는 그쪽으론 털어도 먼지 안 나온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아랫놈들 교육도, 단속도 확실하게 하고 있으니 내 손이 닿는 놈들은 그럴 리가 없어.
하긴, 이 양반의 성격을 감안하면 아랫놈들이 돈을 슬쩍하려는 걸 내버려 둘 리가 없지.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근데…… 왜 ‘적어도’라는 말이 붙죠? 게다가 손 닿는 놈들은 안 그런다고요?”
그 지적에 협회장은 침묵했다.
비대해진 전력 때문에, 현시점에서 협회장의 손이 닿지 않는 S급 초인은 많고도 많다.
S급 초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협회장은 크게 건드릴 수 없는 신분이 되어 버리니.
‘게다가 S급 초인이면 공금도 어느 정도는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을 텐데? 결국 S급 초인이면 협회의 준 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으니…….’
침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누구, 누구? 어떤 새낍니까? 내가 그냥 그놈 대가리를 반으로 똑 갈라서 내용물을…….”
설마.
“나, 나, 나현이……?”
-걔가 그럴 성격이냐?
“그, 그렇죠? 다행이다. 그럼 설마 태윤이 형은 아니겠죠? 아니지, 그 형도 그럴 성격은 아닌데?”
성곤이도 아닐 거고.
신입들은 이제 막 제 몫을 하게 됐는데 공금 횡령이니 뭐니 할 겨를도 없을 거고.
“……잠깐만요.”
-…….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놈’이 맞습니까?”
협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오씨 성을 쓰는…….”
-…….
“아, 아, 아아아아…….”
협회장이 말했다.
-얼마 전에 웬 새 차를 뽑고 희희낙락하던데, 그거 사는데 공금을 쓴 모양이다.
“…….”
우리 집까지 끌고 왔던 ‘양카’를 말하는 모양이다.
꽤 비싸 보이긴 하던데.
‘현중아…… 네가 진짜 돌아도 한참 돌았구나.’
이마를 짚은 채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지하에 처박아 놨다. 조태윤과 차나현이 오현중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보자마자 일단 끌고 가서 지하로 던져 넣더군.
역시 태윤이 형과 나현이야.
아무튼 협회장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뭐…… 사실, 고급차 한 대 정도는 협회 의전용 차량 정도로 둘러 댈 수 있다. 오현중이 저지른 일 자체는 그렇게 심각하게 번질 가능성은 없다. 그깟 차 한 대쯤은, 네가 현역일 때 부숴 먹던 훈련장 수리비보다 못한 수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