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전쟁(숨바꼭질)의 양상은 숨 막힐 정도였다.
숨는 차후와 찾는 차후의 치열한 구도.
붙잡혀 버린 차후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털! 꼬집기는!! 봐주는 차후!!
-차후훗! 이번 딱 한 번만 봐주는 차후. 다른 차후가 보기 전에 얼른 도망치는 차후.
-고마운 차후.
전쟁 속에서 피어오르는 차후애(愛).
-차후후……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오늘치 ‘무럭무럭 차후’를 차후에게 양보해 주는 차후.
-……쉿, 얼른 가는 차후.
-차후후…….
차후들 간의 비열한 거래까지!
아무튼 이런 양상이 반복되고 있으니, 오늘 중으로 차후들의 ‘전쟁(숨바꼭질)’이 끝날지조차 의문이다.
‘하기야 세계수를 거슬러 오르는 달팽이 경주도 하루 종일 하던 녀석들이니. 아무튼 다행이라면 다행이긴 한데 말이지.’
차차가 걱정하는 것처럼 치열하고 숨 막히는 전쟁은 아닐지 일말의 우려를 품고 관전 중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하던 숨바꼭질이 훨씬 잔혹하고 치열할 지경이다.
‘그땐 야생이었지, 야생.’
어린애들의 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지옥 원심분리기’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어린아이의 뼈를 씹어 삼키던 ‘정글의 왕(정글짐)’까지.
‘그 시절의 그네는 사람을 물어뜯곤 했었지.’
아아, 찬란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여.
아무튼 기세만 사납지, 그때 하던 숨바꼭질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차후들의 ‘전쟁’에, 때 묻은 어른인 나는 금세 질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차는 심각했다.
-비, 비극적인 전쟁인 차후…….
공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는 차차였지만, 차후의 전쟁은 비극보단 희극이었다.
그 증거로 나현이도 차후들의 전쟁을 재밌게 보고 있는 모양이다.
훈수까지 두는 걸 보니.
“차사후! 거기 하나 숨었어!”
-차후후훗! 당장 나와서 오라를 받는 차후!
-터, 털 꼬집기만은 용서해 주는 차후!
-차후훗!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는 차후!
거봐, 평화롭다니까.
아무튼 팝콘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차후들의 전쟁을 관전하던 나현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조태윤이 자객들을 협회로 데려간다며? 거기까지만 들었는데 이후 일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현이의 말을 들으며 팝콘 봉지로 손을 쑥 넣었는데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팝콘이 어느새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팝콘 기름을 핥으며 말했다.
“자객들을 돌려줘야지.”
“에엥? 돌려줘?”
뜻밖이라는 그녀의 말에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피라미를 미끼로 큰 걸 낚아 봐야지.”

* * *

국가초인처 공안 3팀의 팀장, 샤오 진은 뜻밖의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외부의 2팀이 돌아왔다고?”
“예.”
암살자로 보내진 이들이다.
임무를 완수한 게 아니라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게 그들 아닌가.
그리고 소식을 전한 부하의 표정을 보아하니, 국가초인처가 바라는 대로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집인가?”
“예.”
“알았다. 바로 가지.”
잠시 후.
국가초인처의 중간관리직이 모두 모였다.
샤오 진이 속한 공공안전팀은 물론, 한국으로 떠난 대외부의 초인도, 국가초인처 초인의 정점에 올라 군림하는 정예 집단, 중국 초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진룡(眞龍)’의 구성원도 몇몇이 모여 있었다.
‘진룡까지 모였다고?’
샤오 진의 얼굴이 굳었다.
이게 단순한 소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윽고 모두가 자리에 앉고, 퉁명스러운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던 진룡의 일원 중 하나인 ‘룽’이 입을 열었다.
“대충 들었겠지? 한국으로 향했던 대외부의 2팀이 돌아왔다. 한국 협회 측은 공식적으로도, 그렇다고 핫라인으로도 이렇다 할 연락 없이 대뜸 인원들을 귀국시켰다.”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자객을 그렇게 간단하게 돌려보낸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웅성거림을 읽은 룽이 말을 이었다.
“다만 출발한 건 열이지만 돌아온 건 일곱이다. 또한 그들 전원의 마력 회로가 모조리 부서졌다.”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력 회로가 부서졌다는 말은 더 이상 초인으로 활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국가초인처는 초인 열 명을 잃었다.
그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층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이 마력 회로를 부순 초인을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객을 보내는 것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한데 한국이 선전포고를 가볍게 막아 내더니 비웃듯이 말하고 있었다.
‘좆밥들아.’
노골적인 메시지다.
그 뜻을 읽은 국가초인처 모두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누가 말하던가?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먼저 시비를 걸고 일방적으로 해를 끼친 이는 다름 아닌 그들이다.
하나 그들은 이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샤오 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흐름은 위험한데.’
이들이 정말로 ‘전면전’을 부르짖을 수도 있다.
그건 최악 중의 최악인 선택지다.
두 국가가 올라가 있는 싸움판에 온갖 국가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싸움판에 올라온 국가들의 대부분은 ‘선’을 넘어 버린 중국을 마주하리라.
하지만 감정에 매몰된 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법.
샤오 진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상부는 이 일을 어찌해석하고 계십니까?”
그 물음에 룽이 샤오 진을 흘끔 훑어봤다.
그는 내심 샤오 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제주도 작전 때 조태윤을 무사히 끌고 왔다면 일이 이토록 커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룽이 사람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 * *

“그 새끼들은 못 움직여.”
“……뭐?”
“놈들은 양자택일을 해야 해. 공식적으로 이 일을 화두에 올리거나, 아니면 핫라인으로 이 사태를 따지고 들거나. 하지만 웃기는 일이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객을 보낸 일을 공식적으로 언급한다? 국제적으로도, 공식적으로도 ‘자객 보내는 나라’로 낙인찍히고 싶다면 그렇게 하겠지. 공식적으로 따지진 못해.”
“그럼……?”
“핫라인으로 이 사실을 따진다? 뭣만 하면 핫라인이라지만 그것도 만능은 아냐. 공식적으로 남들 들으라고 떠벌리지만 않는 것뿐이지, 결국 자객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저쪽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
우리 쪽에서 마력 회로가 작살난 폐인 열 명, 아니지, 수가 줄어 일곱이 된 놈들을 보냈는데?
그런 티배깅을 맛본 놈들은 눈이 돌아간다.
절대 자기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라고 생각할 거다.
근데 뭐 어쩔 건데?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
“빠득빠득 이를 악물고 다음 기회를 엿보겠지. 조심조심, 다음에는 확실하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때를 기다리겠지. 그러니 당분간은 평화롭겠지.”
“으음…….”
당분간은, 이라는 말이 찜찜하다는 듯 침음을 흘리는 나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으려던 순간.
-차후우우우!!
차후들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앞으로 태양 숭배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고 우리 명예로운 차후족의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하는 차후!!
-차후! 차후! 차후!
-차차후 차후! 영명한 결단인 차후!!
차차후는 이번 1차 종교 전쟁이 평화롭게 종식되었음을 선언하며, 태양 숭배교의 지도자인 차하후의 손을 맞잡고 높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로써 차후족은 세계수와 태양(한라봉, 아니 강원봉)을 함께 섬기게 되었으니.
종교의 자유라는 것을 얻게 된 셈이다.
차차도 이 극적인 결말에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 차후…….
‘흠, 그 정도인가? 감동적인가?’
-지배자님은 이렇게 될 줄 알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신 거였던 차후…… 우리 차후들이 한층 더 명예롭고 지혜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차후들이 성장하도록 지켜봐 주신 차후…….
내가 그랬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전쟁을 평화롭게 마무리 지은 차후족들을 보며, 다시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