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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기이이잉-!
나노 입자기는 거친 기동음을 흘리며 성준의 오른팔을 뒤덮고 있었다.
인류의 기술력.
초인의 마력.
둘이 융화되는 것으로 ‘완전’으로 거듭나는 병기.
나노 입자기로 인해 일어난 발열이 그를 넘는 마력의 청량감으로 상쇄되고.
오른팔 전체를 덮고 있는 그리운 감각에 성준의 입에서 한 줄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이 서늘한 감각……. 4년 만인가.”
“컥, 케헥!”
“초인 강성준으로 돌아갈 때다.”
“쿨럭! 캐, 개새끼야!! 이 와중에 개소리를!”
발작하듯 고함을 내지른 오현중이 마력 회로를 전력으로 발동시키자, 그의 ‘염동력’이 주변의 지반을 무너뜨리고.
파괴된 지면이 수십 줄기의 창이 되어 성준을 향해 쏘아졌다.
그 순간.
기이이잉-!!
성준의 오른팔을 뒤덮은 나노 입자기가 초고속으로 형태를 바꾸고.
뿜어진 수십 줄기의 나노 입자기의 탄환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대지의 창을 모조리 분쇄했다.
콰과과과과광-!!
나노 입자기 6형태, 옵티컬 버스터.
그로 인해 자욱한 폭연이 폭발하듯 뿜어지고, 폭연을 뚫고 튀어나온 성준의 신형이 어느새 공중에 붕 떠 있는 오현중을 향해 한 줄기 화살처럼 쏘아졌다.
나노 입자기 3형태, 천공각(天空脚).
어느새 두 다리를 뒤덮은 나노 입자기의 시커먼 잔영이 성준을 뒤따르고.
흡사 거꾸로 솟는 벼락처럼 오현중을 향해 달려든 성준이 공중에서 몸을 힘껏 비튼 순간.
콰지지직-!
회전한 성준의 오른발이 그대로 깎아 내듯 오현중의 어깨를 후려 갈겼다.
비명조차 못 되는 답답한 숨을 토해 내는 소리와 함께 오현중의 몸뚱이가 수직으로 떨어져 지면으로 처박혔다.
“컥, 커허억!! 커헉!”
지면에 처박힌 채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는 오현중은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단신으로 3레벨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덕분에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고 명실상부한 미국의 S급 초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어느새 지면으로 내려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성준은, 3레벨 게이트에서 애새끼들을 구하려다 몸을 망치지 않았던가.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사실은 안다.
성준이 그렇게 된 이유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나노 입자기를 방어 형태로 바꿔 아이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전성기의 성준과 지금의 자신이라면 격차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넘었으리라 자신했다.
그게 오산이었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거였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빠드득-!
어금니를 악물며 전신의 모든 마력 회로를 발동시키는 오현중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성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현중의 특성은 네 개.
확실히 파악한 건 염동력, 빙결화(氷結化), 또 하나는 중력 조작.
나머지 하나는, 쓰는 걸 거의 못 봤고.
콰드득-!
순간 전신이 무언가에 짓눌려 가라앉는 것 같은 감각이 짓쳐 들어오고, 이쪽을 향해 손가락을 겨눈 오현중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그 찰나 지면, 하늘, 대기의 모든 수분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수천, 수만의 바늘로 화했다.
오현중이 유독 차나현을 눈독 들인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리라.
그녀의 기상 조작과 오현중의 빙결화는 궁합이 좋으니까.
그만큼 위협적인 공격이고, 그의 특성인 중력 조작과의 궁합은 말할 것도 없다.
중력 조작으로 발을 묶고 염동력을 발휘해 마력으로 빙결화된 얼음의 바늘을 퍼붓는다.
‘특성 자체도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군.’
위협적이다.
맞으면 위험하다.
‘물론 맞는다면, 말이지.’
자신 또한 이전보다 강해졌다.
붉은 열매 덕분에 마력 회로가 회복된 것과 더불어, 마력 정밀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나노 입자의 잔량은 제법 남았다.
아마도 ‘그 형태’로 바꾼다면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오현중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테지만.
괜히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아껴야 잘사는 법이다.
기이이이잉-!
나노 입자기가 마력을 먹고 부풀어 오르며 두 자루의 길쭉한 형태가 되어 성준의 양손에 쥐어진다.
5형태, 천립쌍창(天立雙槍).
동시에 성준의 전신에 마력이 깃들며, 그의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 창이 흡사 풍차처럼 회전하더니 비처럼 쏟아지는 오현중의 얼음 바늘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그 광경을 본 오현중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 이, 이런 미친…….”
현역 시절?
아니, 그 이상이다.
다시는 마주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벽이, 넘었다고 생각했던 벽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
전의가 완전히 꺾인 오현중을 노려보던 성준이 입을 열었다.
“현중아.”
“으, 으으…….”
“대련 전적 기억 안 나냐.”
56전 56승.
성준이 비릿하게 웃었다.
“넌 날 한 번도 못 이겼어.”
“지, 지랄 마! 한 번은 이겼다고!”
“아……. 그랬나. 전날에 접대를 너무 힘들게 했던가, 피로가 덜 풀린 날에 한 번 진 적 있었지.”
57전 56승 1패.
성준이 나노 입자기의 형태를 바꿔 완갑으로 되돌리며 오현중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가고.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오현중이 중얼거렸다.
“대, 대체 왜 이제 와서…….”
“이제부터라도, 라고 말해 주면 좋겠는데.”
“……허.”
헛웃음을 흘린 오현중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복귀할 거냐?”
“글쎄. 생각 좀 해 보고.”
“……그러냐.”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은 오현중이 몸을 돌렸다.
“……이만 간다.”
“뭘 가! 미친놈이!”
달려든 성준이 오현중의 등판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냅다 날아가 형편없이 바닥을 구른 오현중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안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볼 수 있었다.
“크흡!!”
정통으로 안면을 얻어맞은 오현중이 코피가 흐르는 코를 감싸 쥐었다.
그런 오현중의 귀에 성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생각할수록 빡치네?”
“읍, 머, 멋…….”
“네가 차나현 데려가면 한국에 남는 건 따라지 S급뿐인데! 나중에 게이트 빡센 거 나오면 어쩌라고!”
빡-!
“그냥 어디 한번 좆돼 봐라 이거냐? 그럼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고!”
빠각-!
“우리 마을이 좆 돼고! 내 텃밭이 황폐화되고!”
“꺼허어억!!”
사실, 솔직히 말하면 앞서 늘어놓은 이유는 오현중을 두들겨 패는 동기의 4할쯤뿐이다.
나머지 6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근데 씨발! 아까부터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이 십새끼 말하는 본새가!”
쩌어억! 빠각-!
“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너 하나 씹창 내는 건 되는구나! 그리고 또 뭐? 윗대가리들 말에 내가 우리 집 시루처럼 배 까뒤집고 낑낑거렸다고?”
“어억그렇게까진말안했.”
“아가리 닫아! 그러다 혀 깨문다!”
다시 한번 말한다.
나위살(나를 위해 살겠다).
면전에다 사람 자존심 벅벅 깎는 말을 그렇게 지껄여댔는데 그걸 참는다고?
이건 급발진이 아니라 정속 주행이다.
한참 오형준을 두들겨 패다가, 놈이 기절해선 꿈틀꿈틀 경련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손을 멈췄다.
“후우우우…….”
간만의 운동으로 땀에 젖은 머리칼을 휙 쓸어 올렸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기절한 오형준의 옆구리를 툭툭 차며 말했다.
“살려는 드릴게, 십새야.”
그리 말한 후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