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이익.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으으으으으을~!”
제갈정혁과 제갈수아를 상대로 약간의 우위를 보이던 요공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소뢰음사와 색랍사의 요승들이 죽어 나갈 때까지만 해도 요공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피해가 있었지만, 그와 관월이 나선 이상 곧 진압이 가능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특히, 눈여겨보던 제갈수아와 손을 섞게 되었을 때 요공은 환희에 몸을 떨었다.
곧 자신의 품에 안길 아리따운 여아가, 무공까지 뛰어나다면 그만큼 제갈수아라는 꽃을 꺾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억, 허억…….”
있는 힘껏 장력을 방출하여 제갈정혁이 주도하는 연수합격을 밀어낸 요공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차가운 시체가 되어 목이 잘린, 관월의 처참한 모습이 들어왔다.
“빌어먹을. 관월 이 병신같은 중놈이 진즉에 내 말만 들었어도…….”
제갈정혁과 조철진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지만 치명상은 없었고, 제갈은정과 제갈수아는 옷가지가 몇군데 찢어졌을 뿐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공은 달랐다.
한쪽 팔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었고, 옆구리는 길게 갈라진 검상으로 인해,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리에는 경미한 상처뿐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전하게 도주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경공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공인데, 이미 네 명의 후기지수들을 상대하는데 너무 많은 내공을 소모했다.
“후욱…… 이쯤에서 포기한다면, 목숨은 보장하겠소. 투항하시오.”
제갈정혁은 거친 숨을 다스리며, 요공에게 투항을 권고했다. 제갈정혁의 제안에 요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공력을 소모한 만큼, 이 애송이들도 지쳤다. 또한 제갈세가의 무사들도 이미 체력과 공력이 극한까지 소모된 상황…….’
이 상태로 목숨을 걸고 싸워 봐야, 결과는 필패였다.
운이 좋다면 네 명 중 한 명 정도는 길동무로 삼을 수 있겠지만, 관월을 쓰러뜨린 제갈세가의 가솔들이 군진을 이룬 채, 천천히 포위망을 형성하기 위해 접근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제는 도주뿐이다. 더 싸웠다간 저 끔찍한 진법에 포위되어 개죽음 당할 뿐이다.’
요공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소뢰음사와 색랍사에서 끌고 온 수하들이 제갈세가의 신묘한 진법에 철저히 유린당하며 무너졌고, 어느새 관월까지 제갈세가의 진법에 갇혀서 발악 끝에 처참하게 목이 잘리는 모습을 말이다. 한데, 지금 혼자남은 요공이, 제갈세가의 진법에 갇힌다면, 그 결과는 굳이 예상할 필요조차 없었다.
필사(必死).
단 두 글자로 설명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반드시…….”
요공은 최후의 힘까지 모두 끌어올려 다시 한번 양손에 강기를 북돋았다. 제갈정혁과 후기지수들은 그런 요공을 경계하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반드시 돌아와서 네놈들의 생살을 씹을 것이다!”
요공의 분노와 복수심이 그의 강기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그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있는 힘껏 강기장(剛氣掌)을 방출했다.
퍼어어어엉~!
제갈수아와 제갈은정의 부채가 활짝 펼지며 하나로 합쳐져서 방패처럼 요공의 강기막을 막았지만, 엄청난 폭발과 함께 두 개의 부채가 튕겨지듯이 날아가 버렸고, 뒤에 있던 제갈정혁과 조철진이 여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흡!”
“차앗!”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제갈정혁과 조철진의 검에 강기가 어렸고, 그들은 무리 없이 요공의 강기장을 쳐 냈다.
“쫓을 필요 없다.”
제갈정혁은 몸을 날리려는 조철진과 제갈은정을 제지했다.
“늑대를 쫓아냈더니 호랑이가 오는구나.”
제갈정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의 눈을 따라 전방을 향했고, 제갈정혁의 말대로 전방에서 일단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너는…….”
제갈정혁의 손에서 가까스로 도주한 요공의 눈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와 검은색 일색의 복장으로 몸을 감싼 흑주가 들어왔다.
“흐, 흑주?!”
반가움과 원망 그리고 복수심과 치욕까지, 복잡한 감정이 요공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왜 흑주가 위험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사내와 척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오십여 명의 무인과 함께 나타난 것인가. 그건 서장무림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나? 그렇다면 왜 위기에 빠진 우리를 도와주지 않은걸까?
순식간에 오만가지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요공을 괴롭혔지만, 이윽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두 가지였다.
치욕 그리고 복수.
“흑주!”
“요공 주지스님.”
“나를, 나를 도와라. 지금 제갈세가는 지쳤다.”
“제갈세가를 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좋다. 왜 나타났는지 왜 나를 돕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겠다. 한 가지만 약속해라.”
“무엇입니까?”
흑주의 대답에 요공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그려지며, 죽어 가던 욕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저 년놈들을 모두 죽여도 좋다. 하지만 제갈수아라는 계집의 숨은 붙여다오. 내 그년을 발밑에 두고 화를 풀어야겠다.”
“싫다면?”
요공의 말을 받은 자는 흑주가 아닌 그의 옆에 있던 그의 옆에 있던 위험한 느낌의 사내, 바로 천마신교의 부교주 강마(剛魔) 마공효였다.
“너, 너는 누구냐…….”
여기저기 찢어진 옷가지와 피에 젖은 요공과 달리, 말끔한 흑의에 아수라가 수놓아진 마공효의 신색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수하들이 모두 죽었는데, 복수는커녕 싸움에 진 개마냥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수장이라니…….”
“이익…….”
마공효의 비웃음에 요공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만약 몸이 정상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일장을 날리고도 남았을 만큼 요공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마공효를 노려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공효는 요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본교에서 이런 놈이 있었다면,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게 백배는 행복한 죽음이었다는 걸 알게 해 줬을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흑주?”
“부교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크큭. 나를 잘 모르는 놈들도 많을 테니…….”
마공효는 슬쩍 고개를 돌려, 흑주의 뒤에 있는 검은 복면의 무사들을 향해 슬쩍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본보기로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공효의 손이 요공을 향해 슬쩍 움직였다.
“무, 무슨?!”
바닥이 보이지 않는 천장단애의 절벽에서 추락할 때처럼, 요공의 몸이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공효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 커헉?!”
마공효에게 목을 잡힌 요공은 퍼덕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줄까?”
마공효는 요공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주, 죽어라. 이 괴물……!”
죽음의 공포와 숨통이 막히는 고통이 잠깐이지만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피를 태우는 듯한 모욕감과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었다.
요공의 손에 붉은색의 강기가 어렸다. 제갈정혁 일행을 상대할 때의 강기였고, 요공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의 마공효의 눈과 인중을 찌르고 심장과 단전을 때렸다.
“놈……. 본 부처님에게 모욕을 준 대가다. 내세에서는 사람 보는 눈을 가지고 태어……. “
퍼어어어엉~!
붉은색의 강기가 폭발하듯이 마공효를 때렸고, 무방비하게 요공의 공격에 적중당한 마공효를 보며, 비웃음을 흘리던 요공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마공효의 눈을 찌른 요공의 검지와 중지가 부러져서 덜렁거렸고, 심장과 단전을 때린 손은 완전히 으스러져서 뼈와 근육이 뒤섞인 고깃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왜 공격을 멈췄지?”
마공효는 피식 웃으며, 친절하게 부러진 요공의 손가락뼈를 맞춰 주었다.
“움직여, 삶을 향한 열망을 보여 봐.”
물속을 노닐다가 그물에 낚인 물고기처럼 마공효의 손에서 파닥대던 요공은 그의 무감정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살기 위한 움직임을 포기하는 즉시 자신의 목이 꺾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공포. 그리고 생존본능만이 요공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처절한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과 함께 요공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부러진 손을 대신하여 멀쩡한 무릎에 경기를 가득 실어 마공효의 인중과 명치를 찍었다.
빠직. 콰직!
요공의 양쪽 무릎이 순차적으로 마공효의 인중과 명치에 닿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끄아아아악!”
무릎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는지, 요공의 무릎아래의 다리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덜렁거렸고 요공의 입에서 귀곡성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세, 세상에…….”
“호, 호신강기인가?”
“저렇게 강력한 호신강기가 존재할 리가 없다. 저것은 분명 반탄강기야…….”
“하지만 반탄강기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괴사란 말인가.”
흑주의 뒤편에서 마공효의 잔인한 손속과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위에 경악과 감탄으로 소요가 일어났다.
강호에 암약하는 환마련의 선택을 받은 정과 사의 명숙들이었지만, 그들도 이런 괴사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색랍사의 주지승 요공.
서장무림을 양분하는 양대 세력의 수장이었다. 소뢰음사의 주지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서장 무림의 지존으로 군림하는 절대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고수의 강기를 지근거리에서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마공효가 그들의 눈에는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 마신(魔神)…….”
“소림의 철포삼공(鐵布衫功), 금종공(金鐘功)을 대성했다 해도 저런 신위는 보일 수가 없어…….”
흑주의 뒤편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공효를 뒤따르던 무인들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기 위해 발악하는 요공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는 마공효의 위용은 그들의 기를 꺾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더 보여 줄 게 없나? 제갈운혁이라는 아이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도 좀 남았고, 네놈 몸도 성한 곳이 많으니 조금 더 발악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커, 컥. 커커커컥…….”
마공효의 손가락이 점점 요공의 목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에 찬 목이 싄 소리만 내뱉을 뿐 요공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팔꿈치와 무릎은 물론이고 사지 중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었으니까.
요공의 눈에서 조금씩 생기가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 마공효는 그의 단전에 손을 올렸다.
“커커…… 컥, 안. 안…….돼…….”
“돼.”
요공은 공포에 질려서 세차가 고개를 저었지만 마공효는 가볍게 그의 말을 무시하고 요공의 단전을 부숴 버렸다.
“커…… 커어…… 어어어억…….”
“엄살떨지 마라. 뼈가 좀 부러지고 단전이 망가졌지만, 네놈 오장육부는 아직 싱싱하니까.”
단전이 부서지며 요공의 코와 입에서 쉴 새 없이 선혈이 흘러나왔지만, 마공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마공효는 한손으로 요공의 목을 잡고 걸음을 옮기면서도 틈틈이 손가락으로 요공의 전신을 쿡쿡 찔렀다.
그의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고, 마공효와 그 일행이 제갈세가가 있는 언덕에 도착했을 때, 요공은 이미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만나서 반갑네. 그대가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정혁인가?”
* * *
마공효는 한눈에 제갈정혁을 알아보고 씨익 미소 지었다.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정혁이 기인을 뵙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 맘에 드는구나. 그리고 아주 기대가 크다.”
마공효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사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한참을 웃어 제꼈다.
“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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