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신전. ‘검성회’의 영역.
두 눈을 안대로 가린 한 젊은 검사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가만히 등만 보인 채 뒷짐을 진 노인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무엇이 말이냐.]
[‘사룡’들을 하계로 내려보내신 것 말입니다.]
젊은 검사의 그 말에, 노인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었다.
감정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 기계 같은 노인의 눈동자.
[너는 내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사육장에 있는 다섯 마리를 전부 보낸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싶기에…….]
꿀꺽.
젊은 검사가 메마른 침을 삼켰다. 영역의 수장과 대면하는 일은, 같은 성좌라고 하여도 숨이 조일 만큼 긴장되는 일이다.
대성좌(大星座)란 그런 위압감을 지닌 존재였다.
[녀석들은 ‘검성회’의 소중한 전력입니다. 만에 하나 그 다섯 마리가 전부, 루스 프리드에게 당하기라도 하는 날엔…….]
[인간이 무슨 수로 죽지도 않는 용을 이길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놈은 불사신이었던 시몬조차 죽인 정체불명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불사의 힘을 제외하고도, 사룡들은 강하다.]
노인이 그리 말하며 시선을 굴려 제 오른팔을 보았다.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에 할퀸 자국들.
오른팔뿐만이 아니다. 얼굴부터 해서 발가락 끝마디까지, 노인의 온몸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마치 의복처럼 뒤덮인 모습이었다.
[내가 직접 그놈들을 죽여 봤기에 제일 잘 알지.]
[…….]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용을 사냥해 봤지만, 그 다섯 마리가 제일 강했다.]
그랬기에 노인은 그들을 사룡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쓸 만해 보이니까, 언데드로 전락시켜 ‘검성회’의 비장의 패로 개조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언데드가 되어 생전의 힘이 빛바랬다고는 하지만, 한낱 애송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예…….]
[분명, 사룡들의 사육 담당이 너였지. 아끼던 애완동물이었으니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한다.]
툭-.
노인이 걸음을 옮겨, 젊은 검사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마라. 루스 프리드, 그놈은 지금쯤 온전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 죽었을 테니.]

* * *

사룡들은 지금 루스 앞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었다.
다섯 마리 전부.
그것은 그들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강제력이 자신들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모, 몸을 꼼짝도 할 수가……!
-크윽, 카아아아악-!!
안간힘을 쓰며 저항하려는 사룡들이었지만 전부 헛된 짓이었다.
‘머리를 들어 올린다’라는 방법 자체를 몸이 잊은 것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루스는 공손하게 머리를 처박은 사룡들 앞에서 여유롭게 팔짱을 꼈다.
-우릴…… 그딴 식으로, 내려다보지 마라……!!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거기 기다려라! 죽여 버릴 테다……!!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라곤 해도, 사룡들은 일반적인 언데드랑은 궤가 다르다.
엄연히 감정을 지녔고, 지금 그들이 생생히 느끼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하등한 것들을 내려다봐야 할 자신들이 도리어 내려다보이는 처지가 됐으니 그럴 수밖에.
“이거 진짜 엄청난데.”
치욕으로 부들부들 떠는 사룡들과 달리, 루스는 전율과 쾌감에 휩싸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 그 자체에 강제력을 담는 스킬.
용언.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짜로 말 한마디로 다섯 마리의 용들을 한꺼번에 땅바닥에 처박을 줄이야.
‘두 번 연속 사용은 힘들겠지만.’
물론, 그만큼 스킬 사용 뒤에 뒤따르는 탈력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시스템 메시지가 따로 등장한다거나 별도의 쿨타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용언’이란 영혼의 격을 언어의 형태로 표출하는 권능이니만큼, 마구 남발했다가는 뒷감당이 힘들어지리란 사실을.
그래도 한 번이면 충분했다.
사룡들은 죽여 버리겠다느니, 두고 보라느니 열심히 이는 갈면서도 태도는 공손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한 번 적용된 ‘용언’은 루스가 먼저 권능을 해제하기 전까지는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모양.
“썩은 도마뱀들아.”
툭툭툭툭툭!
루스는 지면에 처박힌 사룡들의 이마를 한 마리씩 발로 쳤다.
사룡들은 이미 한 번 죽었음에도 또 죽고 싶어지는 심정이었다.
“이제는 좀 말할 마음이 드나? 너희를 보낸 게 누군지.”
사룡과 같은 언데드들은 절대 이유 없이 남을 먼저 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의를 드러낼 때는 보통 누군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거나, 혹은 주인 되는 누군가로부터 사주를 받았을 경우뿐.
그리고 이 상황에서 루스가 생각할 가능성은 후자밖에 없다.
루스는 뒷골목에서 돈 뜯는 양아치처럼 쪼그려 앉으며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를 줄 때 순순히 말해라.”
-엿이나 먹어라!
-우리를 무릎 꿇렸다고 해서 마음조차 굴복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이 정체 모를 마법만 끝나면……! 네놈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 주마……!
“누군진 몰라도 파충류 교육을 아주 잘 시켰군.”
루스는 입맛을 쩝 다시며 쭈그려 앉고 있었던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힘으로 꺾는다고 해서 놈들의 입을 열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이런 놈들은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지.”
-고문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크흐흐-.
다섯 마리 중 가장 육중한 몸체를 지닌 사룡이 같잖다는 듯이 비웃었다.
-어디 한번 실컷 해 봐라. 우리는 이미 죽은 몸. 살을 지지고 뼈를 깎아도 고통 따윈 일절 느끼지 않으니.
-네놈은 절대 우리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고문 같은 귀찮은 짓을 할 생각 따윈 없어. 별로 재주도 없고.”
루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냥 너희를 전부 죽이고 기억을 읽으면 그만이거든.”
루스에게는 죽은 자의 기억을 훔쳐보는 스킬, <혈흔>이 있다.
죽이고 기억을 읽겠다는 그 말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곧이어.
-뭐? 우릴 죽여?
-크하하!
-이미 죽은 우리를 또 죽이겠다니! 이래서 뭣도 모르는 인간이란……!
사룡들이 일제히 폭소했다.
기억을 읽겠다는 말이 우스운 게 아니다. 이 세상에 다른 생명체의 기억을 훔쳐보는 마법은 <혈흔> 말고도 널려서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니까.
그들은 이미 생명을 잃은 자신들을 죽이겠다며 으스대는 루스의 꼴이 우스웠다.
“…….”
루스는 사룡들의 조롱에 따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 신호를 주듯 눈동자를 옆으로 힐끗 굴리더니.
스각-!!
툭, 데구르르-.
빛이 번쩍이고, 가장 크게 웃어 대던 사룡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목의 절단면에서 썩은 내 가득한 검은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
-…….
그에, 열심히 웃던 사룡들이 잠시 침묵했다.
그들이 보기엔 루스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동료의 목을 베는 광경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 그들은 다시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실소를 머금었다.
불사 특성을 가진 자신들은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 어차피 몇 초 지나면 잘린 머리는 다시 자라난다.
한데.
5초.
10초.
15초…….
-……?
-……??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방금 목이 잘린 녀석은 다시 재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룡들은 깨달았다.
녀석은 그냥 두 번 죽은 거다.
영원히.
-마, 말이 되나?
-사룡인 우리를 어떻게 죽인단 말이냐!
-다, 당장 풀어라! 인간! 당장 우리한테 건 마법을 풀란 말이다……!
그제야 죽음의 공포를 느낀 사룡들이 몸부림쳤다. 땅바닥에 머리 처박은 채로 그래 봤자 추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시하고.
스각-! 콰즉……!!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