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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허.
루스의 도발을 듣고 파르기우스가 처음 보인 반응은 분노가 아니었다.
실소.
화를 낼 가치도 없다는 듯, 실로 같잖다는 듯한 헛웃음만 내뱉을 따름이었다.
-궁금하군.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릴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다음 층으로 올라갈 생각이지?
“귓구멍이 막혔나? 네 대가리를 바닥에 처박겠다고 방금 말했잖아.”
-내게 그런 건방진 태도를 보인 게 네놈이 처음은 아니다. 많았지. 대공의 권좌를 탐냈던 수많은 버러지들이 경배가 아닌 나와 싸우는 길을 택했다.
파르기우스의 입꼬리가 말 그대로 귀에 닿을 때까지 쭈욱 찢어졌다.
-그리고 한 놈도 빠짐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죽었지.
“…….”
-내 앞에 이마를 찧는 간단한 성의만으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건만, 어리석은 판단을…….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빠지지지지직-!!
파르기우스의 개소리를 단칼에 잘라 낸 루스가 핏빛 장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사포가 찢기는 듯한 거친 소리와 함께, <흑뢰섬>이 검붉은 뇌광을 흩뿌리며 파르기우스를 향해 뻗어 나갔다.
-나쁘지 않은 검술이로군.
화르르-!!
맹렬한 불길이 허공에서 뭉치며 거대한 도끼가 파르기우스의 손에 잡혔다.
-인간치고는 말이야.
곧이어.
콰아앙!
파르기우스가 도끼날을 비스듬히 세워 <흑뢰섬>을 막았다.
나름대로 전력을 실어 펼친 검격이건만 저토록 간단히 막아 내다니. 역시 ‘대공’이라는 직위는 장식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저놈이 악마 중에서 서열 몇 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공이면 베히투라보다 훨씬 강하단다.」
쿠구구구구!
무시무시한 마기를 방출하며 파르기우스가 몸을 일으키자, 베로니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경고했다.
“그렇겠지.”
「이런 말은 듣기 좀 그렇겠지만, 엄마는 솔직히 네가 바닥에 이마를 찧길 바랐는데…….」
땅을 박차며 쇄도한 파르기우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은 어마어마한 속도.
쿠우웅!!
루스가 몸을 틀어, 불길이 타오르는 도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도끼날이 내려찍힌 지면을 중심으로 불길이 번지며 엄청난 고열이 공간을 휘감았다.
“이마를 찧길 바랐다고? 그게 날 아들 취급하는 네가 할 말인가?”
「아, 아니! 그래도 죽을 위기를 겪는 것보다는 이마에 피 좀 흐르는 편이 훨씬 낫잖니!」
“죽을 위기?”
파르기우스가 지면에 내려찍은 도끼를 회수하고선 사선으로 휘둘렀다.
태산이 무너질 듯한 소음이 폭발하며 도끼날이 루스의 상반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할 수 없는 속도로 휘둘러진 공격.
파르기우스는 1초 뒤에 온몸이 찢어발겨질 루스의 모습을 상상했다.
“고작 이런 놈을 상대로, 내가 죽을 위기를 겪을 것 같아?”
카아아아앙!!
루스가 검을 올려 그어, 도끼날을 튕겨 내기 전까지는.
회전하는 혈기를 검신에 덧씌워, 상대방의 무기를 쳐 내는 스킬- <패링>이었다.
-……?!
검과 도끼가 충돌하면서 흩날리는 불똥 사이로,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하는 파르기우스의 얼굴이 보였다.
대공인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다니, 순간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후우웅!
루스는 완벽한 <패링>을 선보이기 무섭게 검붉은 바람을 일으키며 두 번째 검격을 준비했다.

[흑광신검 오의]
[난격亂擊]

콰가가가가가가……!!
부드러운 검로를 따라 휘둘러진 칼날이 무수한 잔상을 낳으며 파르기우스를 압박했다.
-크학……!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재빠른 맹공이 파르기우스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검에 꿰뚫리고 찢어진 살점으로부터 핏물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파르기우스는 비명을 터뜨렸다.
‘뭐, 뭐냐, 이놈은……!’
지금까지 늘 보아 왔던, 주제를 모르는 쓰레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야말로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무력이었다.
파르기우스가 생각하는 루스의 이미지가, 밟아 죽이기 좋은 벌레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강적으로 격상되는 순간.
“얼마 전의 나였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이마를 찧었겠지.”
대공급 악마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데, 자존심쯤이야 싸게 먹히는 거라면서. 그런 식으로 자위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근데 지금의 나는 충분히 너를 죽일 자신이 있거든.”
싸움이 된다.
쓰러뜨릴 수 있다.
파르기우스를 본 순간, 루스는 본능적으로 그리 느꼈다.
9성에 오른 지금이라면, 대공급 악마라도 능히 승리를 점할 수 있다며 확신했다.
그리고 역력히 당황 중인 파르기우스의 반응을 보아하니, 확신은 역시나 빗나가지 않았다.
촤악-!!
<난격>의 마지막 참격이 파르기우스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넝마로 만들었다.
정신이 나갈 듯한 격통에 파르기우스가 이빨이 으깨질 듯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크, 으으으윽……!
“슬슬-.”
마무리를 짓자고. 루스가 그리 말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찰나.

[‘지배와 압제의 대공’- 파르기우스가 특수한 권능을 사용합니다!]
[‘압제의 권능’이 공간을 지배합니다!]
[권능으로 인해 검술이 봉인됩니다!]

스르릉……!!
파르기우스가 안광을 번쩍 빛내더니, 홍염이 흐르는 사슬이 루스의 <유혈성천>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캉-!
그 순간 사슬에 휘감긴 검이 파르기우스의 목덜미에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가로막힌 느낌.
루스는 ‘압제의 권능’이 발동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힐끗거리며 혀를 찼다.
“이래서 네 별명이 「지배와 압제의 대공」이었나 보군. 그나저나 무기를 봉인하는 건 좀 치사하지 않나?”
-네놈 같은 버러지를 상대로 ‘대가’를 바쳐야 한다니, 내 평생의 수치다……!
치이이익-.
파르기우스의 오른팔이 인두에 지져진 것처럼 새카만 화상 자국으로 덮였다.
아무래도 ‘압제의 권능’은, 상대방의 무기를 봉인하는 사기적인 성능을 지닌 대신 저런 식으로 대가가 따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네놈을 죽일 수 있다면야, 오른팔의 부상쯤이야 달게 받을 수 있지. 자랑하는 검술을 못 써먹게 됐는데, 참으로 애석하겠…….
쩌저저저저적-!!
얼음이 뭉치는 소리가 파르기우스의 귓가를 섬뜩하게 자극했다.
그는 루스의 머리 위로 나타난 길쭉한 얼음의 창과 그 창으로부터 휘몰아치는 가공할 마력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엔투르로부터 강탈(?)한 8서클 빙결 마법, <북해의 창>이었다.
-뭐, 무, 뭣……?!
“검을 못 쓰면 마법 쓰면 되지.”
-도, 도대체 어떻게 고위 마법을……. 네놈, 검사가 아니었나?!
“마법사도 아니지만.”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올마스터’였다.
루스가 입꼬리를 비틀며 넋이 나간 파르기우스를 조롱했다.
“애꿎은 오른팔만 버렸군. 참으로 애석하겠어?”
-빌어먹을 새끼가!
저 얼음의 창이 날아들기 전에 루스를 죽여야만 한다.
쾅!
파르기우스가 살기를 불태우며 재차 달려들고, 그와 동시에 루스가 <지벌>을 장착했다.
오른팔을 다친 탓인지 녀석이 도끼를 휘두르는 속도가 아까보다 현저히 느려졌다.
훤히 드러난 놈의 틈을 파고들며, 루스가 권격을 내질렀다.
콰르르르릉-!!
<지벌>이 파르기우스의 턱에 정통으로 꽂히며, 백색의 뇌전이 폭발했다.
-커, 커어억……!
세찬 스파크가 파르기우스를 감전시켰다. 놈이 비틀거리지조차 못하고 경직되기 무섭게.
콰직……!!
허공에 고정되어 있던 <북해의 창>이 쏘아져 나가며 파르기우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파르기우스의 거체가 부르르 떨리다가, 이내 축 늘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즉사였다.

[‘지배와 압제의 대공’ 파르기우스를 쓰러뜨리셨습니다!]
[‘특성: BP 콜렉터’의 효과로 50,000BP를 획득합니다!
[1층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2층으로 향하는 워프가 생성됩니다!]

공동의 중심에 다음 층과 연결된 붉은 워프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