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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세상 온갖 신비한 생물을 많이 봐 왔지만, 갑자기 펄펄 끓는 용암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광인은 오그라삭스도 처음이었다.
치이익-!!
깊은 용암 속으로 온몸을 빠뜨리기 무섭게 루스의 전신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초월’, 아니, ‘역천’급 무인이라도 용암에 다이빙하면 당연히 똑같은 꼴이 되는 법이다.
<뭐, 뭐 하는 거냐?! 미친노->
갑자기 미친 짓을 하기 시작한 루스를 향해 미친놈이라고 쏘아붙이려던 엔투르는 멈칫했다.
스스스-!
용암이 흐르는 곳 앞에, 새하얀 빛무리가 뭉치더니 멀쩡한 모습을 한 루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 맞다.>
엔투르는 뒤늦게 아까 오그라삭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곳은 온 주변에 부활 마법진이 한가득 깔려 있어, 죽어도 계속 부활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저렇게 서슴없이 용암 속으로 빠져든 거였나, 휴.’
……라고 생각할 뻔했던 엔투르가 발끈하며 루스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안심할 때가 아니지! 지금 뭐 하는 짓이냐?!>
“…….”
루스는 엔투르의 외침에 대꾸하지 않고, 말끔하게 재생된 제 몸을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휙!
……다시 용암 속으로 풍덩 빠졌다.
정말 엔투르도 처음 보는, 아니, 봐서도 안 될 정신 나간 기행이 따로 없었다.
<드, 드디어 미쳐 버린 것인가?>
이 순간만큼은 루스가 기사왕 시몬보다도 미친놈처럼 보이는 엔투르였다.
그녀가 입을 쩍 벌리며 당황하는 와중에도.
첨벙!
풍덩!
루스는 용암에 빠지고 부활하고, 다시 용암으로 다이빙하고 새로 재생하고를 반복했다.
그 짓이 스무 번쯤 계속되자, 오그라삭스는 참다못해 외쳤다.
「내, 내기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그냥 말로 하게! 시위하지 말고!」
보는 이쪽이 다 괴롭다는 듯이 소리치는 오그라삭스의 말에, 루스가 용암으로 뛰어들려다 말고 대답했다.
“내기에서 이기려고 발버둥치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딜 봐서?」
내기에서 이기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미친놈밖에 안 보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루스는 옆에서 오그라삭스가 어떤 눈빛으로 쳐다보든 개의치 않고 다시 용암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은 실로 꿋꿋하고 우직하여, 마치 고행을 자처하는 승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진짜로 고통을 즐기는 성벽이라도 가진 건가?」
‘화염 마법’의 종주라 불렸던 전설의 고대룡도 상식을 거부하는 변태 앞에선 미지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오그라삭스는 몰랐다. 알 턱이 없었다.
루스가 지금 하는 이 모든 행동이.

[초고온의 화염에 노출되었습니다!]
[<철혈> 스탯이 상승합니다!]
[화 속성 공격에 대한 내성과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초고온의 화염에 노출되었습니다!]
[<철혈> 스탯이 상승합니다!]
[화 속성 공격에 대한 내성과 재생력이 대폭…….]

정말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 * *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한 내성과 재생력을 증가시켜 주는 히든 스탯, <철혈>.
<철혈> 스탯의 수치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많이 처맞는 것.’
많이 처맞고 구르다 보면, <철혈>로 인한 내성과 재생력도 자연히 높아진다.
살이 계속 까지다가 어느 순간 굳은살이 박히는 것과 마찬기지인 이치.
그러니 뜨거운 용암에 계속 몸을 불태우다 보면 화염 저항력도 높아지지 않을까 한 번 시도해 봤는데, ‘빙고’였다.
물론,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기에 원래 같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서도 안 될 미친 짓이었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여기서는 죽어도 계속 살아날 수 있으니까.’
오그라삭스와의 내기는 도전 횟수만 정해져 있을 뿐, 내기를 언제 시작할지는 어디까지나 루스의 마음이었다.
무한히 주어진 시간. 무한히 주어진 목숨.
이때 바짝 <철혈> 스탯을 올리지 않으면, 언제 올리겠는가.
그렇게 루스가 정확히 32번째 용암 다이빙을 마쳤을 때.

[<철혈> 스탯이 상승합니다!]
[<철혈>이 5단계로 접어듭니다! 내성과 재생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3단계에 머물러 있던 <철혈>이 어느덧 5단계까지 다다랐다.
「…….」
처음에는 루스를 그저 저세상 변태로밖에 보지 않았던 오그라삭스도, 문득 뭔가를 눈치채고선 표정이 진지해졌다.
작은, 제대로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작은 차이긴 하지만…….
똑똑히 보인 것이다.
루스가 용암에 뛰어드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의 몸이 불타며 녹아내리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이.
「뭐 하는 짓인가 했더니, 그런 거였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고대룡답게, 오그라삭스는 실시간으로 루스의 화염 저항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눈치챈 것과는 별개로, 저 행동이 미친 짓이라는 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화염 저항력이 높아지든 어쨌든 간에, 몸뚱이 전체를 펄펄 끓는 용암에 녹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지 않은가?
피부가 불타고 근육과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은 여과 없이 느껴질 텐데.
불에 타는 통증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가장 끔찍하게 느끼는 아픔이다.
설령 저 행위가 화염 저항력을 높여 준다고 해도, 불에 타는 고통을 무수히 반복해서 참는다는 건 명백히 비정상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정신력이란 말인가…….」
오그라삭스는 혹시 루스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느꼈다.
그러는 사이.
화르륵-!!
루스는 일흔일곱 번째 다이빙을 마친 참이었다.
그는 아무런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는 허공을 힐끗거리며 입맛을 쩝 다셨다.
‘한계가 있나 보군.’
레벨이 높아지면 요구하는 경험치도 많아지듯, <철혈> 스탯 또한 단계가 높아질수록 수치를 더 올리기 힘들어진다.
이제 용암에 몸을 녹이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말인가.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했다. 루스는 심호흡을 한 번 내뱉고선 오그라삭스를 돌아봤다.
오그라삭스는 용암보다도 뜨거운 안광이 넘실거리는 루스의 눈동자에 살짝 압도감을 느끼며 물었다.
「시작하겠나?」
“시작하겠습니다.”
화르르르르르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오그라삭스의 입 속으로 응집되는 적색 불길.
아직 브레스는 내뿜어지지도 않았는데, 안 그래도 후끈했던 용암 지대의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절기를 펼치려는 고대룡에겐 서슴없이 용암 속에 몸을 내던졌던 루스조차 주춤거리게 하는 위압감이 풍겨 왔다.
‘누구랑은 다르군……!’
<뭐지? 왜 갑자기 기분이 확 나쁘지?>
막상 마주하게 되니 화염 내성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쩌저적-!
루스는 <서리 이빨>로 냉기를 덧씌운 <유혈성천>을 방패처럼 곧게 세웠다.
곧이어.
살이 익는 열풍이 사위를 휩쓰는 것과 동시에, 오그라삭스가 말했다.
「가겠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나선을 그리며 사납게 휘돌던 맹염이, 오그라삭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천벌을 방불케 하는 죽음의 숨결은 순식간에 루스를 집어삼켰다.
쿠르르르르릉-!!
불꽃의 숨결이 지상을 휩쓸자 드넓은 용암지대가 요동치고, 주변에 흩날리던 화산재마저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증발했다.
스으으!
이내 대지에 들러붙은 화염이 빠르게 걷히며 루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의미했군.」
오그라삭스는 숨을 훅 뱉어서 입에 남은 잔불을 털며 실소를 터뜨렸다.
「세 번의 기회를 줄 필요도 없었어.」
전신은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검게 그을리고, 뼈와 근육이 드러날 만큼 참혹하게 불타긴 했지만.
어찌 됐든 루스는 두 발로 꼿꼿이 선 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오그라삭스를 직시했다.
살아남은 것이다.
오그라삭스는 싱긋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내기는 자네의 승리일세.」
“…….”
루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도까지 죄다 달궈진 탓에, 말을 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