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내가 휘두른 메이스가 테오도르의 안면을 찍는 순간, 핏물이 팍 튀었다.
한 방에 족칠 생각으로 전력을 실었다.
그런데…….
“끄, 끄흑!”
놀랍게도, 테오도르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보는 내가 다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얼굴이 찌그러졌음에도, 기절조차 안 하고 신음을 흘렸다.
슥-.
그렇다면 뒈질 때까지 후려갈기면 그만이지.
내가 다시 한번 메이스를 높이 쳐들던 순간.
“사, 살려…… 줘…….”
“…….”
가느다란 손이 내 발목을 애절하게 붙잡았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메이스를 내리치려던 팔이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걸 본 테오도르는 이때다 싶어서 구걸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면 뭐든 할 테니까……! 발을 핥으라면 핥고 노예가 되라면 내가 노예가 될게! 그러니까 제, 제발, 제발…….”
애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섞였다. 눈물방울이 테오도르의 뺨을 타고 흙바닥을 적셨다.
게임에서 수많은 유저를 괴롭혔던 네임드 보스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
“죽고 싶지 않아…… 나, 나까지 죽어 버리면…… 인형술의 명맥은 영원히 끊기고 말 거야!”
이목구비가 뭉개진 처참한 꼴로 그리 외치는 테오도르.
문득, 며칠 전에 녀석과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자기를 핍박했던 자들을 모두 죽이자고 했었지.
나는 그 얘기를 했을 때, 테오도르의 눈동자 속에 일렁이던 감정의 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제발, 부탁이야…… 나, 나에겐. 나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단 말이야…….”
“그렇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딱한 건 사실이었다.
대륙에서 금기로 지정한 ‘인형술’을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륙 공적으로 낙인이 찍히다니.
21세기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지닌 나로선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수밖에.
주르륵-.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핏빛 메이스를 도로 소환 해제시켰다.
“근데 말이야.”
슈와악-!
그리고 진하디진한 보라색을 띤 혈기가 방금 메이스를 쥐고 있었던 손 위로 회오리쳤다.
내가 <혈독 생성> 스킬을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네 손에 죽었던 사람들도 지금의 너랑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자, 잠깐…….”
내가 뭔가 자비를 베풀 거라고 기대라도 한 건지, 테오도르는 배신당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시답잖은 기대를 하니까 배신감을 느끼지.
자비를 베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처음부터.
콱-!
나는 테오도르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며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넌 그 사람들한테 자비를 베푼 적이 있었나? 단 한 번이라도?”
“씨, 씨바아알…….”
“나도 네가 했던 짓을 똑같이 따라 할 뿐이다.”
지하실에서의 풍경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죽기 직전의 표정이 그대로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 개새끼야! 씨발,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새끼! 너 같은 건 지옥에나 떨어져-.”
더는 들어주기가 역겨워서 손아귀에 휘도는 ‘혈독’ 덩어리를 위로 던졌다.
-콰아아아아앙!!
공중에 떠오른 혈독 덩어리가 폭발했다.
고도가 별로 높지 않을 때 터뜨려서, 폭발의 여파가 아슬아슬하게 이쪽까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스아악-.
“쿱?! 커, 커억……!”
덩어리가 터지고 난 뒤에 퍼지는 독 안개는, 우리가 있는 지상까지 자욱하게 흩어졌다.
보라색 안개에 휩싸인 테오도르가 제 목을 스스로 움켜쥐며 몸부림쳤다.
사독(死毒)이 스며들어, 지금쯤 수십 개의 면도칼이 온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다.
이윽고.
“…….”
꺽꺽대며 흙바닥을 뒹굴던 테오도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온몸에 파란 핏줄이 불거진 녀석은, 똑바로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렇게 절명했다.
녀석이 저지른 악행들을 생각하면 비교적 평안한 죽음이었다.

* *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히든 퀘스트 : 절호의 기회’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BP와 깨달음의 정수가 주어집니다!]

지난 5일간의 촌극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듯, 시스템 미세지가 우후죽순 나타났다.
꼼수를 써서 쉽게 죽이긴 했지만, 어쨌든 테오도르는 레벨 62의 강적.
나와 적지 않은 격차를 지닌 적을 없앤 덕에, 레벨이 무려 3단계나 껑충 뛰었다.
“후우…….”
마음이 놓이니 몸에 진이 쫙 빠졌다.
정말이지, 소울 이터 때도 그렇고 어째 매번 수준이 안 맞는 적들이랑만 엮이는 기분인걸.
뭐, 이번 같은 경우엔 내가 자처한 일이긴 했다마는…….
잠시 앉아서 한숨을 돌리던 중.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테오도르의 주검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녀석의 주변에 낭자한 핏자국들이 이목을 끌었다.
‘한번 살펴나 볼까.’
아까 녀석이 시체들을 모아 둔 보관소를 보여 줬을 때 생각했다.
이곳 호렌토 산이나, 마탑의 지하에는…… 어쩌면 나도 모르는 숨겨진 요소들이 몇 개 더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슥-.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오도르가 흘렸던 핏자국에 손끝을 가져다 댄 다음.
<혈흔> 스킬을 발동했다.

[‘혈흔’으로 해당 대상의 기억을 읽습니다!]

테오도르의 인생 스토리가 영화의 시퀀스처럼 빠르게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내가 <혈흔> 스킬을 한두 번 쓰는 것도 아니니, 이젠 익숙…… 하지 않았다.
‘하. 빌어먹을.’
그야, 놈이 생전에 저질렀던 역겨운 짓거리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졌으니까.
참고로 <혈흔>은 기억을 읽는 대상의 일인칭 시점으로 장면을 보여 주는 스킬이다.
한 마디로, 테오도르 년이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살육을 저질렀던 순간들이 모두-.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이라, 그런 장면들은 빠르게 스킵했다. 이 년은 이래 놓고 나한테 살려달라고 추하게 목숨 구걸을 했던 거였나?
‘잠깐.’
하등 쓸모없는 기억들을 넘기다가, 불현듯 어떤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선 멈칫했다.
‘……그래도 하나는 건졌네.’
역시.
지하실에는 다프네 밀로스 말고도 내가 모르는 히든 피스가 하나 더 있었다.

* * *

나는 마탑 지하실로 내려갔다.
오토마타들의 자폭 하모니 때문에 마탑은 가루가 됐지만, 그 밑에 자리한 지하실은 멀쩡했다.
다행이지.
만약 지하실에까지 자폭의 여파가 닿았다면, 다프네 밀로스가 있는 13번 보관소와 테오도르의 기억에서 읽은 그 ‘히든 피스’까지 파묻혔을 테니까.
잠시 후.
<저게 네가 찾던 인간이 맞느냐?>
“그래.”
13번 보관소 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무기질적인 석실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자세로 고요히 잠든 금발의 여인.
다프네 밀로스를.
아니. 정확히는.
다프네 밀로스의 영혼이 깃든 구체관절인형을.
<흠.>
엔투르가 흥미로운 눈길로 다프네의 주변을 빙빙 돌며 물었다.
<도무지 인간…… 으로 보이진 않는데. 왜 저런 사연 많아 보이는 꼴을 한 거지?>
“인간 다프네 밀로스는 이미 죽은 지 오래거든.”
비참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말이다.
그녀는 성녀였던 자기 여동생을 모종의 이유로 죽인 뒤, 몇 날 며칠을 비관하다가 죄책감을 못 견디고 끝내 자살했다.
이곳, 호렌토 산에서.
그러다 머지않아 테오도르가 다프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의 영혼을 수거해 오토마타에 집어넣었다는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