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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이로써 내기는 나의 승리다.
패왕이라 불리기 이전의 볼프강이 이룩했던 최종 성과는 네 번째 단계, ‘목’의 시련.
나는 지금 그 기록에 다다른 것이다.
‘내기의 내용은 최소 볼프강과 똑같거나 그 이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었지.’
내기는 이쪽이 이겼으니, 여기서 나가면 볼프강은 내게 <서리 이빨>의 초식들을 전수해야 한다.
아니, 전수뿐만이 아니라 아예 교본을 선물해 주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니.
이것만으로도 시련에 도전한 보람은 차고 넘치지만…….

[‘목’의 시련을 통과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직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나하나가 절대 놓쳐선 안 될 소중한 금덩이들.
위이잉-.
지금 내 머리 위로 나타난 것도 그중 하나다.
검 형태의 아우라.
이 아우라가 바로 네 번째 시련의 보상이었다.

[‘검림으로 향하는 열쇠’를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에어리어, 검림(劍林).
살아생전 검의 정수를 깨우쳤다던 무인들의 영령이 잠든 곳.
볼프강이 본격적으로 패왕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검림’에 들어가 영령들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엔투르의 시련>은 어디까지나 발판이었고, ‘검림’이 그에게 있어 본격적인 기연이었던 셈.
‘이젠 나도 맛볼 수 있지. 그 기연.’
머리 위에 나타난 검 모양 아우라는, 이름 그대로 ‘검림’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아우라에 의식을 집중하고 마력을 불어넣으면 끝.
팟.
아우라는 내 정신과 연결되어 있기에,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감출 수도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능이기는 하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것도 아니고, 머리통 위에 아우라를 달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
‘더욱 높은 경지에 올라설수록, 검림의 영령들이 전해주는 무학의 수준 또한 올라간다. 지금의 내가 검림에 들어가는 건 시기상조야.’
언젠간 때가 오리라.
지금은 시련에만 집중하자.
쩌저적-.
보상까지 수령하고 나니, 석실이 붕괴하며 마침내 최종 시련으로 향하는 계단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계단보다도 가파르고, 높았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라고 강조라도 하듯.
“…….”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주목한 부분은 계단이 아니었다.
내가 광전사 용아병과 싸우는 사이, 진보 색의 균열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시련의 뒤틀림 현상이 점점 심해져 간다는 뜻인데, 저건…….
‘볼프강이랑 엔투르가 직접 나섰는데도 뒤틀림 현상이 멈추지 않았다고?’
마르티에, 이 미친 흑마법사가 대체 얼마나 성대한 개수작을 부렸길래?
이쯤 되니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방법 또한 없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로지 전진뿐.
저벅, 저벅, 저벅-.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잡념들은 모조리 날려 버리고,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내가 시련에 도전하는 진정한 목적, <용안>을 얻느냐 마냐의 분기점.
게임에서도 단 한 번조차 성공한 적이 없었던 마지막 단계.
‘두개골’의 시련.
화아악-.
집어삼킬 것처럼 웅장한 광휘의 문을 넘어섰다.
그리하여 당도한 장소는 다름 아닌…….
휘이이잉!!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빙판 한복판이었다.
<아르곤>은 감히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만큼 추운 혹한의 땅.
얼어붙은 건 대지뿐만이 아니다. 드넓은 하늘 또한 구름째로 바짝 얼어붙어, 마치 상공에도 빙판이 형성된 듯한 모습.
명백히 비현실적인 현상이었고, 이러한 현상을 실제로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둘뿐이었다.
성좌.
혹은.
크오오오오오-!!
고대룡.
천지를 격동시키는 포효와 함께, 지평선 너머로부터 거대한 물체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 물체가 단지 나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철혈심>을 극성으로 발동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저 지고한 존재가 내뿜는 위압감에 몸도 마음도 무너질 테니.
<루스 프리드.>
정신을 차렸을 땐 하얀 비늘의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창공에서 날 굽어보고 있었다.
엔투르였다.
정확히는, 엔투르의 진체(眞體)를 재현한 환영.
엄밀히 따지자면 가짜지만,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재현했기에 진짜나 다를 바 없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엔투르를 마주하였다.
“예.”
<마지막 시련에 임할 준비는 되었느냐?>
사념체와는 달리 근엄하고 고고한 말투다.
나를 인간이 아닌, 명예로운 도전자로서 예우해주는 거겠지.
나 또한 존경과 예우를 담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시련에 대해 설명해 주마. 통과 방법은 실로 단순하다. 또한 금방 끝나리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쩌저적-.
빙판을 타고 올라온 서리가 내 두 다리를 얼렸다.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그리고 엔투르의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숨결을 뱉을 것이니, 버텨 보거라. 그리하면 너의 승리다.>
매회 그 내용이 달라지는 <엔투르의 시련>에서도, 항상 변치 않는 요소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보상 목록이고.
하나는 최종 시련의 내용이다.
고대룡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 살아남기.
이게 마지막 시련의 통과 조건이었다.

-“게임을 고양이가 만들었나.”-

유저였을 무렵 내가 느꼈던 첫 감상은 위와 같다.

* * *

쿠구구구-.
썩어 문드러진 거대한 손이 반투명한 상태로 아른거렸다.
사특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종이 흔들릴 때마다, ‘무언가’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아아……!”
벨기우스.
<심연을 파먹는 자>라는 별호를 지닌, 악(惡) 계통의 성좌.
현신해서는 안 될 재앙이 인간의 피를 먹고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마르티에는 과다 출혈 상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핏기가 사라진 모습.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열띤 환희가 흘러나왔다. 영광의 순간이 코앞이었기에.
“드디어!”
콰아아앙-!!
소리치는 동시에 폭음이 난무했다.
벨기우스가 현신했다거나, 마르티에가 낸 폭음이 아니다.
악신의 강림을 앞두고 희열에 젖어 있던 마르티에가 놀란 눈으로 진원지를 쳐다봤다.
그곳엔.
“지금부터 네년에게 10초의 시간을 주지.”
볼프강 데미오르크.
<아르곤>의 성주가 열을 찢고 나타나 막대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존재의 개입에 마르티에가 입술을 짓씹었다.
“10초 안에 그대의 행동을 내가 용인해 줘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베겠다.”
“거의 다 왔으니까 방해하지 마, 개새끼야!”
“숫자를 셀 필요도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