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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1장


이번 [쇼케이스]에는 책임자인 아론은 참관하지 못하게 되었다.
렉서스로서는 자세한 사정까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뉴스에 흘러나오는 꼬라지들을 보고 있자면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짐작이 갔다.
“우리 고용주께서도 바쁘시구만~”
하는 수 없이 특별반의 코치 역할을 담당하게 된 렉서스. 그는 [쇼케이스] 당일, VIP 관람석에 서서 제자들이 펼칠 싸움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야 뻔하지.’
이미 렉서스는 올해 초, 아이리와 도노반이 벌였던 결투를 영상으로 확인했었다. 영상 속 아이리야 뭐,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대로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의 원석 그 자체였고, 그 상대인 도노반은…….
‘……그냥 그랬지.’
Lv.4 신비모듈 [화장포].
그만한 모듈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은 그 역시 여느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으나, 그래 봤자 아이리와는 비교 불가였다.
지난번의 결투에서도 퓨어스펙에 가까웠던 아이리가 그를 일방적으로 깔아뭉갰다는 것이 그 증거.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정말 환골탈태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쪽의 상대가 되지 않을 터.
‘게다가 우리 학생회장 아가씨는 그때보다 더 강해졌지.’
장비도 든든하게 맞추었고, Lv.4 신비모듈인 [천근추]와 [가시 갑옷]까지 새롭게 장착했다. 심지어 방학 동안에 스팅레이 장학생들은 추가 훈련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아이리는 따로 과외까지 받았다.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물론 밀레테크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렇게 대놓고 복수전을 걸어왔겠지만…… 글쎄. 그 정도로 대체율을 높여놨던 녀석이 겨우 반년 만에 얼마나 강해졌을지 잘 모르겠군.’
대체율의 한계는 70%.
지난번 [쇼케이스] 영상을 보았을 때, 도노반의 대체율은 거의 한계치에 가까워 보였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를 더 강화하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혹은 가득 찬 테트리스 블록에 새로운 블록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대체율이 한계치에 가까워질수록 성장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진다.
‘기존 모듈링에서 새로운 모듈을 장착했으려나? 아니면 아예 모듈링을 갈아엎고 전투스타일을 바꿨으려나? 후자 같은 경우는 모듈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가며 상황을 살피던 동안, 마침내 [쇼케이스]가 시작되었다.
양측의 선수들이 각 출발지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밀레테크 측의 학생들을 보는 그 순간, 렉서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렉서스의 안구 스캐너 모듈이 도노반을 향했을 때, 그의 시야에 경고창이 미친 듯이 팝업되기 시작됐다.

[경고. 고에너지 관측!]

어지간해선 울리지 않는 알람이다.
동종업계 탑티어 해결사들이나, 마피아 쪽 최상급 간부, 혹은 아론 스팅레이 같은 정도에게만 이 스캐너가 반응했었다.
현재 렉서스의 카메라 안구에는 도노반의 몸 주변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대량의 에너지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도 눈으로 보진 못해도, 곁에 있으면 몸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현재 저 ‘도노반’이라는 녀석의 몸은 걸어 다니는 핵연료봉과 다름이 없다.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는 사람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체세포가 붕괴하겠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정도 에너지량이라면 아마 게임체인저급 모듈을 하나 소켓에 박아 넣은 거라고 봐도 되겠지. 저게 아마도 밀레테크 녀석들이 이번 쇼케이스에서 믿고 있는 구석인 거다.
하지만 렉서스는 그 모습에 긴장하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새끼들! 대체 애새끼 몸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게임체인저 급이라 불리는 신비모듈은, 당연하지만 그 높은 제작 난이도만큼이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한계가 있다.
간단히 말해 몸이 버티질 못하는 거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호환성을 어떻게든 맞춘다고 해도, 신체가 그걸 버티지 못한다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다.
고로 Lv.5 신비모듈을 완벽히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몸이 고용량의 에너지에도 견딜 수 있도록 다른 보조 모듈이나 사이버웨어를 달거나, 훈련을 하는 식으로.
그런데…….
‘저건 오래 못 간다.’
저렇게 에너지를 흩뿌리고 다닌다는 것은,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힘에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데, 저 상태를 유지하는 것부터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도노반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뼈가 뭉개지고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대체 뭔……!’
렉서스는 카메라 모드를 전환했다.
찰칵, 그의 망막 위로 새로운 렌즈가 덮혔다. 그의 눈은 상대의 피부를 뚫고 내부 장기와 사이버웨어 장치 등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갑자기 저 애송이가 Lv.5 신비모듈을 달고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 과분한 힘을 손에 쥐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과잉 증강자(過剩 增强者)……!”
온갖 사이버웨어와 모듈로 도배된 그의 몸은.
인간의 기준을 한참이나 넘은 상태였다.

* * *

팅! 티이잉! 티잉!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총탄들이 내 몸을 찢어발길 듯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내 피부장갑을 뚫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아프다거나 따갑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미친 듯이 불꽃이 튀었지만, 구태여 반격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공격을 무시하고 오메가 인베스트먼트 빌딩 정문의 문을 뜯어냈다.
으드드드드득!
경보가 발동하면서 굳게 내려앉은 셔터는, 내가 손을 대자마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동안에도 방어 드론과 포탑들이 쉴 새 없이 총탄을 쏴댔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뭐.
처음에는 없앨까 했는데, 생각보다 공격력이 약하더라고. 안 그래도 새로운 모듈에 몸이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힘을 빼기는 싫어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뒀다.
덕분에 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도 된 것처럼 드론들을 졸졸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어디까지나 ‘도망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오메가 인베스트먼트 빌딩 안으로 피신한 것이지 않은가? 절대 날아오는 총탄들에 대해 ‘은근 이거 마사지 받는 기분이 드는걸?’ 같은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드론들을 선두에서 이끌면서 안쪽으로 들어서자, 내가 기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나왔다.
‘사람 다니라고 만든 길이 아니군.’
평범한 회사 건물 같았으면 메인 로비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엘레베이터나 비상계단 따위가 있었겠지만.
오메가 인베스트먼트는 빌딩이 통째로 마더보드를 위한 뇌였다.
1층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가늘고 긴 복도가 하나뿐. 양측에는 특수유리로 된 창문이 있었고, 그 너머로 커다란 박스 모양의 기계장치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다.
얼마나 방대한 열기를 내뿜어 대는 것인지, 유리창 너머로 미친 듯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열기는 천장에 있는 팬을 통해서 외부로 방출되고, 각종 냉각장치들이 실시간으로 장치들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는 정말이지 발 디딜 틈 하나 없어 보였다. 손바닥 크기의 드론들이 꿀벌처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며 장치들을 유지, 보수하고 있었다.
“오…….”
내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아마 100층까지도 이 광경이 복사한 것처럼 그대로 펼쳐져 있을 테지.
인간의 손길은 전혀 닿지 않고 자동적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은 정말이지, 아무리 적진이라고 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에 눈길을 마냥 빼앗기고 있어서야 안 되겠지.
‘외부는 튼튼했지만, 내부에서라면…….’
모듈 온라인, [구름거미].
내 아이덴티티인 무기를 꺼냈다.
검은 장갑이 내 손등을 감쌌고,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실들이 뻗어 나오려던 찰나.
[감탄. 기어코 여기까지 오셨군요. 아론 스팅레이.]
나를 에워싸며 공격하던 드론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내 기계 합성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서 저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거기에 응할 내가 아니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사고였다만.”
[아연(啞然). 그 되지도 않는 변명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공격을 피해 달아나다 보니 이곳에 도착했을 뿐이다.”
[정색. 그 농담은 재미없습니다.]
“내가 여기에 올 거라는 건 시뮬레이션으로 예측 못 했던 모양이군.”
[부정. 당연히 예측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도 전부 낮은 확률로 존재했던 미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위이이이잉-!
다시 한번 셔터가 내려간다.
이번에는 아예 나를 여기에 가두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
[카운트다운 시작.]
[원자로 과부하까지 앞으로…….]
[19분 55초]
[선언. 아론 스팅레이, 당신은 제가 상정한 모든 가능성 중에 최악의 선택지를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제 AI코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고로 오메가 인베스트먼트 건물 지하에는 핵분열발전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경고. 고로 경고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서 떠나거나, 혹은 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카운트다운은 종료되지 않을 겁니다.]
그와 동시에.
위이이잉-!
이번에는 드론에 달린 것들을 포함하여 무수한 카메라가 나를 겨냥했다.
[이 장면은 NBS 방송국의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아론 스팅레이,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시민들이 보고 있다는 겁니다.]
띠링. 새로운 알림.
알림을 클릭하자 새로운 인터넷 창이 팝업되었다. 동영상 사이트였고, 영상 속에서는 내 모습이 다양한 각도로 촬영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실시간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
-이거 머임?
-저거 아론 스팅레이 아님?
-이거 무슨 방송이에요?
-☆19금 무료 성인 동영상 사이트☆→ 링크 클릭: https://…… ….
가만히 영상을 지켜보던 나는 시엘에게 말을 걸었다.
“……시엘?”
[네, 아론 님~!]
“이거 진짜인가?”
[네. 실시간으로 영상이 송출되고 있어요~ 공식 NBS 채널이에요~]
가장 큰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잖아.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생각 못 했네.
저 미친 AI는 농담이 아니라 내가 계속 싸우려고 한다면 스스로가 파괴되는 것까지 감수하며 원자로를 날려 버릴 생각인 듯했다. 대놓고 핵폭발을 일으키겠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전부 방송으로 송출하며, 만약 핵폭발 이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평생 ‘아론 스팅레이’라는 이름을 원망하며 살아가게 하겠다…… 라는 것이 놈의 계획인 듯했다.
상호확증파괴.
자기를 없애면, 너도 없애 주마.
뭐, 이런 식인 거겠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