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장. 개입
2장. 확전
3장. 진군
4장. 세계최강
1장. 개입


페르노크가 아직 적의를 거두지 않는 자들에게 외쳤다.
“죄인을 벌하였으니, 이를 두둔하거나 저항하는 무리들에겐 엄벌을 내릴 것이다!”
“쳐라!”
기사단이 페르노크의 외침을 무시하고 항전을 개시했다.
포르라가 기른 사병답게 볼라노 후작이 죽었음에도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다.
참으로 갸륵하나 몇 명은 플레미르에게 넘겨주기 위한 공물로 살려 둬야 했다.
“너희들은 병사들을 제압하고, 백성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진정시키도록.”
“예!”
길드장들이 각기 나뉘어 성루와 성내를 파고들었다.
따라붙으려는 기사단을 검격 한 번에 절반이나 갈라 버렸다.
“증거물을 빼돌릴 생각을 하면 안 되지.”
“페르노크 왕자! 당신은 반드시 오늘을 후회할 것이오!”
“하하하하! 기세는 좋다만, 플레미르는 생각보다 훨씬 엄한 사람이야. 그런 태도는 고문을 견디고 난 뒤에 보여 줘. 그럼 혹시 아나? 너의 식솔들은 노역형에서 빼 줄지도?”
“캬핫!”
기사단장이 일대의 지형을 뒤흔들며 압박해 오자 페르노크가 가볍게 돌덩이를 박차고 허공에서 바람을 응집시켰다.
펑!
기사단장 눈앞에서 터진 바람이 온몸을 휩쓸었다. 팔과 다리가 한 짝씩 떨어져 나가며 기사단장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남은 기사단의 목을 친 후 페르노크가 조사단원에게 말했다.
“이자도 데려가고, 성내의 증거물은 사람을 보내서 챙겨 가도록 해.”
“예.”
“나는 다음 행선지로 향하겠다. 몇 명 따라올 거지?”
“한 명, 발 빠른 자를 엄선해서 붙이겠습니다.”
페르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호출했다.
“살리오, 엔리!”
성루를 정복한 두 사람이 빠르게 내려왔다.
“이곳의 상황이 퍼지기 전에 포르라 일파의 귀족들을 잡아 와라.”
“전부 말입니까?”
“그래, 한 명도 빠짐없이.”
“알겠습니다!”
살리오와 엔리가 지도를 나눠 받으며 길드원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포르라 일파엔 영지를 가지지 못한 남작들이 꽤 많다.
그들은이곳저곳을 오가며 포르라의 온갖 잡다한 일들을 처리해 주곤 한다.
포르라의 목을 칠 만한 핵심적인 증거를 가지지 않은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그들을 수도로 압송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부여된다.
‘볼라노 후작을 기점으로 포르라 일파가 붕괴한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혼란은 정국을 집어삼키고 새로운 영지의 주인을 가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때, 플레미르는 은퇴한 귀족들을 모아 잠시 그 영지를 맡길 생각이다.
하여, 페르노크에게 그 사실을 귀띔한 것이다.
영지를 모두 가지고 싶다면, 절대 탈이 나지 않도록 포르라와 관련된 모든 것을 무너뜨리라고.
“조디악, 자드!”
“예!”
“너희는 나를 따라 다음 성으로 향한다! 총 네 곳의 영주들을 모두 붙잡아 수도로 압송해야 하니, 민심을 추스를 자들만 엄선하여 따라오도록!”
“알겠습니다!”
페르노크는 한술 더 떠서 그 영지가 공석이 된 이후의 상황까지 사전 작업을 치기로 결심했다.
가뜩이나 지금 그의 북부 영지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낙원처럼 소문이 퍼지고 있다.
볼라노 후작령을 비롯해 포르라 일파가 가진 영지를 습격하고, 소문처럼 온화한 인상을 백성들에게 심어 준다면 이후 그 영지를 가졌을 때의 상황이 몹시 편리하다.
“약품을 다 챙겼습니다!”
“그 볼라노 후작처럼 반항하면 어떻게 합니까?”
페르노크가 말에 올라타며 단호히 답했다.
“죽여.”
조사단원을 내려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협회의 대행이자, 플레미르 공작의 요청을 받아 나라의 질서를 되잡는 중이다. 다른 골치 아픈 것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의뢰에만 집중해라. 나는 왕족으로, 너희는 용병으로. 철저히 역할을 분담해서 임하면 남은 곳들은 자연스레 너희들이 가지게 될 거야.”
“그거 아주 달콤한 말이군요!”
“빨리 갑시다, 왕자님!”
페르노크가 고삐를 잡아 쥐었다.
“포르라가 왕도에 도착했을 땐, 모든 상황이 정리된 상태여야 한다! 가로막는 건 죄다 부숴 버려!”
“예!”
페르노크를 앞세운 200의 마법사들이 다음 성으로 향했다.

* * *

도드리오 백작은 난데없는 시위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볼라노 후작과 포르라 왕자에게 불법 무기를 대량 제조하여 납품한 사실을 인정하는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페르노크 왕자님!”
“불법 사병 관련 장부들이 지금 플레미르 공작 손에 있다. 나는 협회와 왕국의 대행으로 지금 죄인들을 압송할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그대는 두 가지로 답하라. 행하였는가, 모른다고 발뺌하겠는가.”
불법 사병 육성은 포르라 파벌의 핵심 전력 증강 요소 중 하나였다.
당연히 도드리오 백작은 철광산을 이용해 우수한 품질의 병장기를 몰래 빼돌려 왔다.
포르라가 상단을 활용해서 장부를 조작해 왔기 때문에 나라에선 이 사실을 모른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지금 사병들을 끌고 와서 성을 점거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실 겁니까! 왕자님!”
도드리오 백작이 당당하게 나오자 페르노크는 피식 웃으며 검을 빼 들었다.
“지금부터 저항하는 놈들은 모두 죽일 것이고,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자들에겐 자비를 베풀 것이다.”
“왕자님! 포르라 왕자님께서 결코 이 사실을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드리오 백작이 노하여 소리친 순간이었다.
바람이 눈썹을 휘날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페르노크가 자신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이곳은 성루였다.
그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힐 때까지 어느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마도사가 어째서 나라의 기둥이라 불리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기사……!”
시린 날이 성루를 훑었다.
무기를 당당하게 뽑아 든 기사들이 단칼에 절반으로 갈라졌다.
“네깟 놈과 노닥거릴 시간 없어.”
도드리오 백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한번 검이 성루를 쓸어 넘겼다.
성루에서 시작된 결이 성문에 이르러 폭발하였다.
콰아아아앙!
무너져 내리는 성문에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조디악과 자드가 빠르게 진입했다.
그리고 주저앉은 도드리오 백작의 목에 검을 겨누며 페르노크가 고했다.
“사지를 베어 줄까?”
도드리오 백작이 흰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기절한 그를 길드원들이 묶었고, 페르노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이 한순간에 펼쳐진 상황을 경악하거나 멍한 시선을 보내며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나는 페르노크 왕자다! 오늘 죄인을 압송코자 온 것뿐이니, 행여 영지전을 염려하여 충돌을 걱정하는 자가 있거든 무기를 내려놓고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웅성거림은 오래되지 않아 사라졌다.
도드리오 백작이 수레에 거칠게 처박히는 모습을 본 병사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성벽을 내려갔던 것이다.
페르노크는 굳이 그들을 쫓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산 증인이 되어 페르노크의 자비를 널리 퍼트려 줄 테니까.
페르노크가 병사의 창을 들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걱!
몰래 빠져나가려는 전령의 등에 창을 꽂아 죽이고 조디악에게 명했다.
“다음 성으로 향하겠다.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엄히 단속하도록.”
“예!”
조사단원은 쉬지도 않고 움직이는 페르노크가 경이로웠다.
아무리 그들의 권한을 대행한다고 해도 그의 행동은 조사단의 상식을 벗어났다.
단호하며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지으니, 발길 닿는 성 모두가 그 앞에 함락되었다.
‘성벽이 단순한 담벼락에 불과해. 이게 마도사인가.’
조사단원은 성벽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페르노크의 위용에 혀를 내둘렀다.
세계에 크고 작은 분쟁이 사라진 지 수십 년이 흘렀다.
마도사들 간의 전투를 직접 볼 기회가 없을뿐더러, 나라의 기둥이라 불리는 이유가 희미해져 갈 무렵, 페르노크의 무용은 마도사들의 실체를 확연히 깨닫게 만든다.
수백의 병력도, 기사단도, 굳건한 성도 마도사의 일격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전장의 판도를 단신으로 뒤바꿀 수 있는 마도사의 위용이 삽시간에 포르라 일파를 쓸어버렸다.
‘플레미르 공작님이 페르노크 왕자님과 함께한다면 왕궁의 마도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텐데.’
어느새 조사단은 페르노크에게 필요 이상의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일 처리가 굉장히 깔끔하고 단호해서 권력을 탐하는 왕족들과 결이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성을 쳐 낸 페르노크가 검을 회수하며 돌아보았다.
“내성의 자료를 모두 가져가게. 그리고 수도에서 사람을 보낼 때까지는 내 사병들로 이곳들을 관리하겠네.”
본래, 성에서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나 병사들과 관료들을 어느 정도 남겨 둔 만큼 외적의 침입이 없는 이상 페르노크의 사병을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조사단장은 이런 요구가 올 경우 반드시 이렇게 대하라고 언질해 뒀었다.

[페르노크 왕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최대한 수용하도록 해라. 그것이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이라면, 공작님께서도 기꺼워하실 것이다.]

왕국에서 유일하게 중립을 유지하던 플레미르가 다른 왕족들의 실태를 마주하고 치를 떨기 시작한다.
페르노크 또한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플레미르가 바라는 ‘질서’에 어느 정도 적합한 자라고 판단한다.
플레미르가 확실한 뜻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그 미묘한 기류를 조사단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왕자님께서 부담되시지 않으신다면 성들의 관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작에게는 내 따로 감사를 전하도록 하지.”
“오히려 저희가 감사드릴 일입니다. 왕족을 적으로 만드는 일임에도 앞장서서 정의를 추구하신 그 용기를 공작님께서 환호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