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너였다 3
 
지은이 : 임제
펴낸 곳 : 마이디팟
기획 : 최탐이나
 
투고 및 문의 : info@mydepot.co.kr
 
ⓒ 임제, 2025.
* 값 : 3,600원
* 발행일 : 2025 년  06월 21일
* ISBN : 979-11-318-7689-3 05810
* 불법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6장 ? 낙화 (2)
상대방은 홀가분한 목소리로 한턱내라 말하고는 용건을 마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윤정우의 부검 소견서라니?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멍청하게만 서 있다 다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방금 얘기를 다시 들으려 했으나 통화는 이미 끊겼다.
재발신 버튼을 찾느라 파리 쫓듯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휘파람 부는 듯한 알림 소리가 들려 동작을 멈췄다. 컴퓨터 화면에 메일이 왔다는 작은 창이 떴다. 바탕 화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암호는 입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꽉 잡고 화면에 뜬 창을 눌렀다. 메일함 안에는 새로 받은 메일이 와 있었다.
 [RE : 윤정우 부검 소견서]
윤정우? 우리 엄마? 정말 이 안에 엄마가 죽은 이유가 들어있다고?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렇지만, 만약 엄마가 맞는다면…….
온몸이 저렸다. 엄마가 죽은 이유를 밝히겠다고 미친 듯이 달렸다. 상상하던 순간과는 다르나, 어쩌면 오늘로 자신의 여정이 끝날지도 모른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다. 얼른 눌러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이나 자료 속 윤정우가 제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이기를 바랐다.
부검했다는 건 범죄나 사건과 관련된 죽음이라는 거니까. 병으로 죽었을 리는 만무하다. 엄마는 저와 살면서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입술을 꽈악 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나는 동시에 파일을 눌렀다.
[<소견서>
- 성명 : 윤정우
- 성별 : 여
- 나이 : 46세
- 시민번호 : 소실
- 소속 공동체 : 297
- 발견 장소 : 북서 수용소 인근(1km 내)
- 임상적 병명 :
조직 괴사를 동반한 전신 동상
어깨 및 위팔 부위의 혈관 손상
복강 내 기관의 손상
사인분류 :
T34
S45.8, S47, S48.1
S36.2, S36.3, S36.4
상세 내용 :
- 외부 충격으로 인한 복부 파열을 주요 사망 원인으로 추정. 손상 형태로 보아 코드에 의한 파괴로 보임.
- 타살 가능성 98%.
- 2, 3번의 늑골을 통과한 자창(刺創) 흔적 발견 및 그로 인한 코어 파괴.
- 4도 동상으로 인한 피부 괴사.]
초점 잃은 눈으로 화면을 내렸다. 제 의지로 스크롤을 내리는 건지, 명령을 내릴 수 없는 뇌 대신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름과 나이, 소속 공동체 같다는 문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부정할 수 있었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용 밑으로 어린아이까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날것의 사진이 이어졌다.
 꼬옥 잡아 주던 손과 나란히 걷던 발은 까맣게 죽어 있었다. 사랑한다며 얼굴을 묻었던 배는 폭탄을 끌어안은 듯 터져 있었다. 안녕히 주무시라며 입맞춤했던 뺨은 길게 뻗은 흉터로 도배되어 있었다.
세상이 새하얘졌다. 눈 폭풍 몰아치는 바깥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이런 게 엄마일 리 없어.
“아니야……!”
그냥, 닮은 사람일 뿐이야.
화면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마지막 사진 안에 담긴 이상한 각도로 뒤틀린 팔목에는…….
“아니야!”
이제는 엄마와 함께 납골당에 넣어 둔 팔찌가 걸려 있었다.
***
“마셔.”
신보겸이 건넨 컵에서 라벤더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 뭔가를 입에 넣었다간 전부 게워 낼 것 같아 손대지 않았다.
신보겸은 미동도 하지 않는 윤설화를 보며 어깨가 축 처질 만큼 한숨을 쉬더니 제 자리에 앉았다. 둘만 있는 보건실에서 진단받는 환자와 의사처럼 마주했다.
“생각도 못 했다. 정우한테 딸이 있을 줄은. 별로 안 닮았는데, 아버지 쪽인가?”
“……입양, 됐어요.”
신보겸은 그제야 이해했다며 팔짱을 꼈다.
“그럼 그렇지. 옛날부터 남자니 연애니, 그런 거에는 눈길도 안 주던 애였어. 딸이라고 그래서 걔도 나이 먹고 변했구나 싶었는데. 입양했다는 말을 들으니 역시 하나도 안 변했다, 싶네.”
“엄마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육성학교 동기야. 너희 엄마하고 나, 둘 다 의학부로 입학했거든.”
윤설화는 푹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희미하게나마 윤설화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 입에서 자신이 모르는 엄마 얘기를 듣는 건.
“그렇지만 엄마는…….”
격투술 훈련을 마치고 잠들기 전, 윤정우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어쩌면 이렇게 강하냐고. 그러면 윤정우는 콧대를 세우며 제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왕년에는 노이즈 대책부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어. 엄마 없으면 부서가 안 돌아가고, 엄마가 출동한 현장은 노이즈가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활약했다니까? ’
 대책부가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엄마가 강한 사람인 건 뼈에 새길 만큼 잘 알았다. 아무리 덤벼도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고, 노이즈가 출몰하면 어김없이 달려가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의학부였다는 사실은 의외지만, 신기하게 납득이 되었다. 다치고 아픈 사람들은 언제나 엄마를 찾았으니까.
“입학할 땐 의학부로 들어왔거든. 그러다 한 학기 지나서 대책학과로 전과했어. 처음부터 그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 뜻이 완강해서 일단 들어줬다고.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제 성격에 안 맞는다며 바꾸더라. 그걸로 부모님하고 연 끊어도 상관없다면서 말이야.”
비통함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샜다. 막무가내로 일단 저지르고 봤을 윤정우의 모습이 선연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엄마는 더 패기 넘쳤겠지.
“학과는 달라졌지만 졸업하기 전까지는 줄곧 붙어 다녔어. 시험공부도, 파견도 늘 함께했지.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 바빠져서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졌어. 정우는 1년에 반 이상은 바깥에 나가 있었고, 나는 병원 수술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대책부 때려치우고 바깥에 나가 살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떠났어. 바깥으로 아예 나가 버렸으니 연락하긴 힘들어졌고, 나도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 연락이 끊겼지.”
신보겸은 둥둥 뜬 화면 속 부검 소견서로 고개를 돌렸다.
“죽었다는 건 얼마 전에 알았어.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정말 갑작스러웠지. 바깥에 나갔다가 병을 얻은 건가, 아니면 노이즈한테 당한 걸까. 사고라도 났나 궁금해졌어. 그래서 의학부 지인에게 부탁해서 부검 결과서를 보내 달라고 한 건데…….”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쓸었다.
“수용소가 웬 말이야, 대체.”
윤정우가 사망 당시 입었던 옷을 찍은 사진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왼쪽 가슴에 44라는 숫자가 박힌, 겨자에 흙을 섞은 듯한 탁한 색깔을 띤 죄수복이었다. 의복으로서 기능은 제대로 하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누더기가 따로 없었다.
“……중앙탑에 가야만,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울컥울컥 치솟는 분개를 간신히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학교에 들어왔고요.”
신보겸은 면접 때 없었기에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 두 문장만으로 윤설화의 지난 시간을 이해한 듯 입매가 굳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부검 소견서는 의학부 소관이라서 구할 수 있었던 거지, 자세한 사건 내용은 치안유지부가 관리해서 차마 거기까지는 손을 댈 수가 없더라. 중앙탑에서 떠도는 정보는 직접 들어가야만 알 수 있어.”
같은 도시라 해도 중앙탑과 그 외 지역은 다른 세계이자 일방통행이었다. 중앙탑에서 아래로 내려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어도, 아래에서 중앙탑으로 올라가 정보를 구하는 건 1등 복권에 당첨되는 만큼 확률이 낮은 일이었다.
하지만.
“방향은 달라지지 않겠네요.”
0은 아니잖아.
“지금처럼, 아니 그보다 더 죽을 힘을 다해서 성적 우수자가 되면 그만이에요.”
“설화야.”
“지금까지는 엄마가 왜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전부 다 알아내기 위해 달려왔어요. 하나는 알았고, 밝혀야 할 일이 두 가지 남았어요. 엄마가 왜 죄수복을 입었어야 했는지,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터질 듯 독한 핏기가 서렸다.
“누가 엄마를 죽였는지.”
소견서 화면이 대기 상태로 들어가 새까매졌다. 화면에 비친 신보겸의 얼굴은 복잡했다.
“여기서 멈추는 게 어떻겠니? 그동안 네가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걸 봤기에 하는 소리야.”
“각오하고 하는 일이에요.”
“성적 우수자가 되어서 중앙탑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막 들어갈 수 있는 줄 아니? 아니야. 어디까지나 행사 참여 때문에 임시로 올라가는 거지, 치안유지부 안에는 발도 못 들이밀어.”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요.”
“내가 아는 정우라면 제 딸이 목숨 거는 걸 바라지 않을 거다. 너도 알 거 아니니?”
“그럼 저보고 어쩌라고요!”
분통하여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거친 진동으로 까맸던 화면이 다시 켜졌다.
“저걸 보고도 지난 일이라고 잊으란 건가요!”
사진 속 싸늘해진 윤정우를 가리키며 울분을 토했다.
“네. 너무 잘 알아요. 지금 제 얼굴을 보신다면 슬퍼하시겠죠. 화도 내실 거예요. 근데…….”
윤정우에게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하 50도에서 살아남는 지혜, 제 몸을 지킬 기술, 다른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마음, 마음껏 웃고 사랑하는 기쁨. 그리고…….
남을 탓하고 미워하지 않는 포용력.
하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다.
“이미 봐 버렸잖아요.”
어리고 미숙해서, 내 삶의 시작이자 영원이길 바랐던 순간을 빼앗은 놈에게는 증오밖엔 줄 수 없었다.
“찾아낼 거예요. 엄마 죽인 놈. 찾아서…….”
배운 적 없는 살의가 차갑게 피어났다.
“죽여 버릴 거예요.”
***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윤정우는 생각했다. 나중에 설화한테 얘기하면 엄청 혼나겠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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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중력을 0에 가깝게 만들어 공중으로 띄운 철심과 유리 조각에 세 배 가까운 중력을 더했다.
목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적들.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던 윤정우의 무기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으악!”
“뭐 해, 막아!”
“아아악!”
코드로만 공격하고 막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온실 속 화초들의 허점이 드러났다.
적들은 분명 방어막을 깔았을 것이다. 문제는 코어 공격에만 치중해 물리 방어에는 소홀했을 터. 지금까지 계속 코드로만 공격했으니까.
밑져야 본전으로 철심과 유리 파편을 준비했더니 생각보다 제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철심과 유리 조각이 몸 곳곳에 박혀 무릎 꿇고, 눈 위에 엎어진 놈들도 제법 보였다. 하얀 눈 위로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러나 적들은 금세 진열을 정리하고 물리 방어막을 깔았다. 철심과 유리 조각이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저기 있다!”
“저년 잡아!”
홀로 싸우는 수감자를 발견하자 적들은 제 다리에 코드를 쏘며 불같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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