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5
§ 차례 §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스페니언 왕국의 장군, 마테우스는 제국 측에서 흘러 들어온 소문에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스페니언 왕국의 정통을 잇는 왕자가 제국의 손에 잡혔다.
마테우스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마지막으로 왕궁으로부터 온 서찰에 그를 지켜 달라는 왕명이 있었거늘.
‘분명…… 안전하게 탈출했다고 들었는데.’
제국의 추격대가 그 정도로 빠르게 따라붙은 것인가?
하지만 전후 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2만 명의 병력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구나.’
왕자님이 녀석들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섣불리 공격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분이 스페니언 왕국의 적통을 잇는 마지막 왕족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왕국을 되찾는다고 한들, 왕족이 모조리 몰살된다면 빈껍데기만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장군.”
“……아아, 오는 건가.”
스페니언 왕국의 장군, 마테우스는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바로크 왕국의 병력을 보았다.
어쩌면 망국이 될 수도 있는 스페니언 왕국의 동맹 요청을 흔쾌히 받아 준 바로크 왕국이다.
마테우스는 착잡한 표정을 애써 감춘 채 다가온 바로크 왕국의 지휘관을 직접 찾아갔다.
“총지휘관 마테우스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요청에 답해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지원군 총지휘관 리젤로테입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6군단의 지원 병력을 이끌고 온 리젤로테가 마테우스에게 물었다.
마테우스는 스라간 쪽을 바라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들의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 있는 민간인들을 모두 죽이고 그 시체를 바깥으로…… 버려 쌓아 놓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순간 리젤로테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윽고 스라간의 성벽 쪽을 바라보자.
“저런 미친 새끼들……!”
마테우스의 말처럼 벽 아래로 엄청나게 많은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치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본 리젤로테가 마테우스에게 물었다.
“성벽이 상당히 높습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이미 투석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마테우스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하게 굳었다.
리젤로테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 제국이 탈출한 왕자님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마테우스는 전후 사정을 짧게 얘기했다.
현재 왕족 대부분이 몰살당했고, 그 와중에 적통을 잇는 왕자를 탈출시켰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리젤로테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상황을 조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하나 상황은 이해하나 오랫동안 시간을 끌 수는 없습니다.”
“예.”
이제 곧 날씨가 추워지는 시점이다.
게다가 1만 명의 병사들이 먹을 식량을 계속해서 공급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군이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보름.
그 안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
스윽.
스라간 쪽을 보던 리젤로테가 마테우스에게 말했다.
“하나 방어와 경계는 철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녀석들의 특성상 가만히 성안에서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지요.”
제국의 특성상 무조건 수성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완강하게 이빨을 드러낸 상태다. 그저 가만히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분명 어떤 형식으로든 공격을 하여 자신들의 위업을 보이려고 할 터.
하물며 스페니언 왕국의 왕자를 확보했다면, 이쪽에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예상을 할 것이다.
‘절대 이런 상황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
그리고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오러 마스터……인가.’
현재 스라간 안에 있는 제국의 총지휘관, 오러 마스터.
단순하게 오러를 다루는 오러 유저와 오러 마스터는 상당히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른바 검술을 23년 배운 이들과 10년 넘게 익힌 이들의 실력이 다르듯 말이다.
마스터의 경우 오러 블레이드 한 번으로 최소 이삼십여 명의 병사들을 도륙할 정도의 괴물이니까.
“저곳에 있는 오러 마스터가 누구입니까?”
“……피아렌 테일입니다. 로즈나이트의 기사단장이지요.”
“피아렌 테일.”
마테우스의 말에 리젤로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피아렌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유명한 자였기 때문이다.
피에 미친 살육자로.
소문으로는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곤 하나, 그 외모와 달리 매우 포악한 성격으로 제국 내에서도 조금은 열외가 된 인물이라 들었다.
전투에 들어서면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미친 것처럼 검을 휘두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만약 녀석이 병사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다면…….’
함정을 파서 완전히 포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설픈 전면전으로 싸울 수는 없다.
리젤로테나 마테우스 두 사람 모두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수준의 무장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오늘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휴식을 취하고 있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테우스의 말에 리젤로테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사령관님!”
“무슨 일이지?”
“카이온 부대가 합류하였는데, 카이온 부대장이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오라고 하게.”
리젤로테의 허락에 이윽고 데미안이 그에게 다가갔다.
데미안의 품에는 작은 아이가 함께하고 있었다.
“왕국에 영광을!”
“흠, 자네가 카이온 부대의 부대장인가?”
“중사, 데미안! 사령관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뭐지?”
한가해서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아닐 테고.
리젤로테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에 데미안이 말했다.
“스페니언 왕국의 왕자님입니다. 탈출하여 도망치는 도중 제국의 추격대에게 습격당한 것을 저희가 구했습니다.”
“뭐라고?”
순간 리젤로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스페니언 왕국의 왕자에 대해 마테우스와 대화를 나누고 오지 않았던가.
‘분명 제국의 손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리젤로테가 굳은 표정으로 데미안에게 물었다.
“정말 이분이 스페니언 왕국의 왕자님이라는 것인가?”
“예, 제국 추격대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을 지키고 있던 호위 역시 저희가 구해 내고 치료 중에 있습니다.”
“그 호위는 어디에 있지?”
“안내하겠습니다.”
데미안의 말에 리젤로테가 그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카이온 부대가 있는 곳에 도착한 리젤로테는 들것에 실려 온 스페니언 왕국의 기사를 보았다.
상당히 심한 부상이었지만, 다행히 위기 상황은 넘긴 듯했다.
들것에 누워 있는 기사를 보며 리젤로테가 물었다.
“말을 할 수 있겠나.”
“……예.”
부상으로 온몸에 피로 얼룩진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리젤로테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라.”
“스……페니언 왕……국의 왕……실 직속…… 호위대장, 율리온……입니다.”
“율리온, 그대가 지키고 있던 분이 스페니언 왕국의 왕자님이 맞으신가?”
“예.”
짧지만 단호한 대답.
그에 리젤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와 왕자님을 데리고 날 따라와라. 스페니언 왕국의 지휘관에게로 간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지체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공격을 하면 된다.
애초에 왕자를 탈출시켰다는 건, 수도 안에 있는 왕족들 역시 목숨을 걸었다는 뜻일 테니.
게다가…….
‘일반 왕국민들을 저렇게 학살하는 미친놈들이다. 왕족들도 무사할 리 없지.’
차라리 이런 경우라면 빠르게 녀석들을 공격하여 스페니언 왕국의 수도를 되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곳이 녀석들의 거점이 된다면, 북쪽에서 제국군이 더 내려올 수도 있으니까.
저벅저벅.
리젤로테가 빠른 걸음으로 마테우스를 향해 다가갔다.
간부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던 마테우스는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리젤로테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탈출했다는 왕자님을 우리가 모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