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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한글로 살아남기 4권
유우리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별의 요람
#도서관
#애나그램의 비극
#피의 악마
#중간고사
#수상한 낌새
#패드로 성
#백신전
1
#별의 요람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굴비처럼 엮여 포획당한 뒤였고, 교도관은 아예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주질 않을 모양이었으니까.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자,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저는 이 일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흐음?
“전 B급 헌터 벨포드입니다. 제국의 조사관이죠. 최근 삼각산 인근에서 벌어진 변고를 조사하고자 파견을 나왔으며….”
-그건 모르겠고. 일단 같이 가지.
“저는 죄가 없다니까요?!”
-변명은 판사가 들어 줄 거야!
“?!!?”
그 자리에 있던 벨포드를 비롯한 모든 헌터들까지 압송되고 만 것이다!
-정말로 죄가 없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이동! 이동!
더 놀라운 건 교도관은 에몬의 던전 자체를 아예 제 여백으로 넣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어느 정도의 개연을 가졌기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일 수 있는 거지?
‘…선배는 저런 무시무시한 사람이 지키는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건가?’
테른이 제프린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는 사이, 그 몸은 걷잡을 수 없는 흐름에 빨려 들어갔다.
테른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감옥에 간다면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지.’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과제를 풀이하질 못하면 식권이 주어지질 않고, 식권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기숙사는 오물로 더럽혀졌으며 음식을 쟁여 와도 순식간에 썩어 버린다.
밤새도록 머릿속에선 비명이 울려 대고 심심치 않게 개구리로 변해 버리는 악령의 장난까지.
괜히 작업장에서의 시간이 꿀같이 느껴졌을까!
‘그런 아카데미의 감옥이라면….’
소름이 끼쳐서 몸이 떨렸다. 어쩌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겨울지도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프린 선배에게 감옥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어 둘 걸 그랬다.
매도 모르고 맞는 것보다는 알고 맞는 게 나으니까. 적어도 대비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밥은… 당연히 안 주겠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테른은 빠르게 여백을 열었다.
그의 수첩엔 벤허의 오두막에서 버릇처럼 챙겨 놨던 빵 쪼가리가 있었다.
괜히 이걸 숨겨 놨다 썩는 꼴을 보느니 지금이라도 다 먹어 치워야 한다!
“음?”
테른은 곧 들어오는 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손으로 앞을 가리던 테른은 서서히 상을 맺는 주변을 보았다. 도착한 건가? 여기가 그 유명한 아카데미의 감옥….
츠츠츳-.
테른은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수호자의 징표를 확인했습니다.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엥?”
-<별의 요람>을 방문한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테른은 덩그러니 나타난 문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뭐야, 여긴…?
* * *
사실 테른은 일전에 이와 비슷한 공간에 들어와 본 적이 있었다.
‘만신전?’
하지만 눈앞의 문은 명백히 만신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냅다 그를 시험하려 들지도 않았고 막연하게 호의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첫 방문이시군요, 수호자님.
“네?”
-별자리의 회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문이 열렸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테른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돌을 내디디니, 그 아래로… 아니 주변을 뒤덮은 별이 보인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별이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반짝이며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
[반짝]
토리도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옥은 아닌 모양인데.’
별들로 둘러싸인 징검다리를 지나자 정원이 아름다운 저택이 하나 보였다.
마치 그를 환영하듯 흩날리는 꽃잎 사이를 거닐다 정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음? 당신은….”
-관리인 러들러입니다. 부족하나마 <별의 요람>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러들러는 정중한 자세로 테른에게 인사를 한 뒤 또박또박 걸음을 옮겼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웰컴 드링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테른은 멋쩍은 얼굴로 일단 러들러를 따라갔다. 웰컴 드링크라니? 지옥 같은 감옥을 상상했던 그에게 있어 적응이 안 되는 단어였다.
대체 여긴 무얼 하는 곳이며, 그는 어쩌다 이런 곳으로 들어오게 된 걸까?
‘수호자라고 했지.’
그러고 보면 벨포드도 그렇고 에몬마저 테른을 두고 수호자라고 했다. 그 징표는 아무래도 그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인 모양이었고.
‘우연은 아니겠지.’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부쩍 해방자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들려오고 있어.”
테른은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러들러의 뒤를 쫓은 지 얼마 안 되어 찾은 어느 회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들었어. 그놈들 무슨 건수라도 잡은 것 같던데.”
“벌써 귀찮아지네.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을까?”
“글쎄, 이만큼 소문이 도는 걸 보면 이미 꽤 개연을 쌓았다는 얘기잖아. 너도 알다시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되어 있어.”
“그건 그렇지만….”
테른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면모를 둘러보았다. 공교롭게도 대다수 아는 사람이었다.
‘랭커들이잖아?’
제국의 수많은 헌터들은 저마다의 수준에 따라 랭킹이 정해지곤 했다.
그중 상위 100위 안에 드는 이들을 두고 흔히 사람들은 랭커라고 불렀다.
누구보다 많은 던전을 공략해, 그 실적을 인정받은 최상위 헌터들.
‘랭커들이 왜 여기에….’
테른의 의문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하여간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는데 알아서 사고를 친다니까. 이참에 아예 발본색원(拔本塞源)을 해야… 으응?”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던 어느 랭커의 눈과 테른의 눈이 마주친 것이다.
“으아아앗!?”
화들짝 놀란 그녀가 자지러지며 일어섰다.
“너, 너 누구야?! 어떻게 들어온 거야!”
당황한 듯 소리치는 그녀와 더욱 놀라 뒷걸음질 치는 테른!
“치, 침입자? 아니? 대체 무슨 수로 여길 들어온 거지?!”
그녀는 당황한 것치고는 반응이 몹시 빨랐다. 순식간에 지팡이를 빼어 들더니 냅다 테른을 향해 마법을 갈겨 댄 것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테른은 날아드는 마법을 보며 기겁했다.
만약 러들러가 이 앞을 막질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테른은 러들러에 의해 저지당한 어느 푸른 늑대 무리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러들러! 물러서!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오해십니다! 켄슬롯 님!
“오해는 무슨…!”
켄슬롯은 다시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발현해 냈다.
허공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그 안에선 보기만 해도 흉악한 몬스터들이 포효하며 나타났다.
푸른 색감의 독수리가 허공을 선회했다. 동시에 저택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뎅뎅뎅-.
켄슬롯이 동시에 다른 마법도 발현해 낸 모양이었다.
-침입자다! 별자리의 회장으로 침입자가 들어왔다!
-오해라니까요?! 좀 진정해 주십시오!
다행히 러들러도 수준이 높은 마법사였다. 어렵지 않게 날아드는 모든 마법을 쳐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켄슬롯은 그 이상을 해내는 마법사라는 점.
테른은 어느덧 제 지근거리로 다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그의 목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드리운 뒤였다.
‘피해야….’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채애애앵!
날카로운 충격음과 함께 다행스럽게도 휘둘러지던 칼날이 튕겨 나갔다.
테른은 제 목에 드리운 칼날을 튕겨 낸 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교수님!?”
“…테른, 네가 여긴 왜… 아!”
곧 폭풍 같은 공격이 주변을 포위한 채 날아들었다.
별안간 그를 지켜 준 교수, 율 테일러도 그에 맞추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율 테일러는 가공할 만한 마력을 흩뿌리며 다가오는 켄슬롯의 마법을 봉쇄해 냈다.
테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소세계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