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2권 (완결)
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2권 (완결)
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2권 (완결)
6화



“이건 뭐죠?”
“말씀을 낮추십시오. 앞으로는 황태자비 후보이자 레이터스 남작으로서 살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

신분 상승의 짜릿함이라고 해야 할까.

왜 인생이 단번에 뒤바뀌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사람들이 환장하면서 그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고개를 숙여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정중한 태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사의 제자?

그런 건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도 의미 없는 신분이었다.

하녀 중에서도 허드렛일이나 하는 최하층이었으니 말이다.

묘하게 날 무시하던 시선이 사라지고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구름을 타고 하늘을 둥실둥실 날아오르는 이 기분은 조금만 나쁜 길로 빠지면 자만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제 남은 절차는 뭐지?”
“이제 드레스를 고르고 고르신 드레스에 어울리는 화장까지 하시면 됩니다.”
“그냥 대충 아무거나 골라 줘.”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런 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하녀일 때가 더 자유롭게 느껴질 정도랄까.

“거참, 빡빡하네.”
“그런 삐딱한 말투도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레이터스 님은 더 이상 저희와 같은 하찮은 신분이 아니니까요.”
“노력해 볼게.”
“노력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바로 적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황비님 앞에서 실수하실까 봐 조마조마하거든요.”

소신 있는 사람은 싫지 않다.

하지만 왜 권력가들이 아첨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 이걸 잊을 뻔했군요.”
“뭔데?”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하녀는 뒷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그런 게 들어갈 공간이 있어?”
“재주껏 넣으면 들어갑니다.”
“그렇다기에는 구겨진 부분도 없는데.”
“시간이 없으니 얼른 자료를 살펴보시길 권장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도 아닌 황태자 전하께서 전달하신 것입니다.”

하녀는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는 따가운 눈초리를 내게 보냈다.

“혹시 열어 보기 전에 뭔가 언질 받은 건 없어?”

내가 아는 황태자라면 분명히 내게 조언을 남겼으리라는 확신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오늘 황비 전하를 뵙게 됐을 때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호언장담하시더군요.”

하녀의 말에 왠지 어깨가 잔뜩 올라 잘난 체를 하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흐음.”

나는 고심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하녀가 건네준 서류를 찬찬히 살폈다.

“안 궁금해?”
“궁금하죠.”
“보통 그럴 때는 궁금해도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나?”
“속마음을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보여주고 싶잖아.”
“제정신이라면 저 같은 하녀에게 황태자 전하의 서류를 보여주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묘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게 뭔가 재밌어 괜히 말을 걸게 됐다.

“시간이 없습니다.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시죠.”
“아니, 옷이야 금방 고를 수 있잖아.”
“하나하나 직접 입어 보셔야 합니다.”
“뭐라고?”
“목소리가 우렁차신 걸 보아하니 기운이 넘치시는군요. 앞으로 걱정이 없겠어요.”

이 당돌한 하녀 앞에서는 나도 순한 양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간 드레스 룸.

넓은 방을 수놓은 수많은 드레스를 보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에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나는 황비가 기다리는 방 앞에 서 있었다.

***

“미리 축하할 일이야. 레이터스 남작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지?”
“네, 편하게 대해 주세요.”
“카트린이 죽은 뒤에 이 작위 수여식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단다.”

저 말은 카트린이 죽은 시점에서 황녀의 수석 시녀를 따로 챙겨 줄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 바였다.

“그런데 황태자비 후보라니. 네 인생도 참 기구하구나.”
“기구한 팔자이기는 합니다만 지금의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네요.”

하찮은 하녀에서 황태자비에 언급이 될 위치에 올랐다.

그런 사람한테 보통 기구하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표현일까?

내 말대답은 그런 속뜻을 품고 있었다.

“참으로 당돌하구나. 이곳 황궁에서 내게 그리 말대답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냐?”
“과거 제 스승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몸입니다. 여자의 몸이라고는 하나 간덩이가 온실 속 화초들처럼 콩알만 하지는 않아서요.”

느피엘의 아름다운 얼굴이 구겨졌다.

두꺼운 화장에 틈이 생기니 그녀의 얼굴에서 숨겨져 있던 표독한 주름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후우, 빨리 끝내고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는 게 상책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안 그래도 황자가 마음의 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어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 그러셔?

확실히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황태자는 분명히 2 황자를 감시하기 위해 사람을 붙였다.

하지만 황비는 그 사실을 인지했고, 곧바로 2 황자를 방에 틀어박아 두면서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니?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것 같구나.”
“여전히 아름다우신 미모에 이목이 쏠려서요.”
“그런다고 네가 받는 작위가 더 오르거나 하지는 않는단다. 그런데 그런 식의 아첨도 할 줄 알다니. 황태자가 가르쳤더냐?”

느피엘은 내 어설픈 말재주가 우습다는 듯 코웃음 치며 은색 날개가 함께 하는 배지를 손에 들고 다가왔다.

“이것으로 너는 오늘부터 세난 레이터스 남작이다. 하지만 기억해 두렴. 아직 나와 황제 폐하는 널 인정하지 않았단다.”